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농촌복지는 지역에 거주하는 전 세대와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국가의 역할을 지금보다 더 확장하되 촘촘해야 하며 지역사회는 갈수록 파괴되는 사회적관계의 복원과 활성화를 통해 더불어 사람 살만한 농촌을 만드는데 일조해야 한다. 이것이 농촌복지의 본령이자 방향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가 1단계로 내려갈 무렵부터 현재까지 많은 분이 여민동락을 방문하셨고 또 전국 각지에 초청받아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그동안 연기되었던 일정들이 한 번에 몰리다 보니 정신없이 보내는 날도 많다. 농촌의 어려움이 갈수록 가중되고 그에 따른 다양한 혁신적 정책사업이 내려오지만, 현장에선 영 신통치 않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해오며 14년을 ‘버틴’ 여민동락의 사례에서 해당 지역 또는 분야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신다. 그중에 꼭 나오는 공통된 질문들이 있어 몇 가지만 이어서 적어볼까 한다.

여민동락 14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여곡절과 사연으로 하루하루가 녹록지 않았던 나날이었다. 거의 매년 여러 사건들로 공동체의 존망을 걱정했었다. 오죽하면 여민동락 10주년에 나온 책의 제목이 “기적 아닌 날이 없다”이겠는가! 물론 열정 넘치던 도시 청년들이 농촌 삶을 몸으로 살아 본 적 없이 어설픈 이론과 낭만으로 접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러한 고난의 과정이 지역 속에 연착륙하고 자생력을 기르는 양분이 되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순간순간의 결정 중에 실수와 실패도 참 많았지만, 전체를 본다면 “한 뼘, 한 뼘 나아지고 있다”고 긍정한다.

물론 처음 가졌던 ‘낭만’은 아직 유효하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주변의 동료, 이웃들과 협동, 연대하는 삶', '농촌에서 공익적 시민으로 사는 삶'이다. 매 순간 무수히 떨리는 나침반의 N극처럼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연속이지만 방향은 늘 한 곳을 지향하며 포기하지 않고 간다.

여민동락공동체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는 일터공동체다. 처음엔 생활공동체를 지향했지만 무수히 많은 스승과 선배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보고나선 우리 수준으론 어렵다 판단했다.
일은 함께하되, 주거지와 생활은 각자의 방식에 맞게 선택하고 조금 떨어져 살기로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초기에는 공동체의 토대가 매우 열악하여 강위원 초대 대표살림꾼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결사체와 같았다면 현재는 초기 구성원들이 각각의 사업단을 대표하며 그동안 축적해온 도덕적 신뢰와 정서적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여민동락을 공동운영하고 있다. 

또한 공동체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가족수나 여건을 고려하되 중소농의 연간 소득, 보건복지부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우리만의 농촌형 생활급여 원칙을 세워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공동체의 숙명인 갈등과 분란이라는 위험요소는 ‘경청과 기다림’을 포함한 생활약속 18가지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물론 삶에서 얻은 각성이 헌법이 되고, 성숙한 인격이 규칙이 되는 공동체로 진화해 가는 말 그대로 규칙이 없는 대 자유를 꿈꾸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최소한의 규칙정도로 삼고 있다.

여민동락이 가진 이러한 생각들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그때그때 강구한다. 초기엔 밤을 새우며 토론하거나 공부했지만 갈수록 식구들이 늘어나고 다양한 세대와 성향의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계속 변화해 왔다. 지금은 새로 합류한 구성원들에게 책과 교육을 추천하면 본인이 읽고 자신의 생각을 내부게시판에 올려 공유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인문학강의, 주간회의 강독, 다양한 공동체모임을 통해 우리들만의 생활규칙과 문화를 돌아본다. 물론 매번 문제점이 나타나고 때때로 흐지부지될 때가 있어 끊임없이 보완하고 다듬어 가고 있다.

여민동락의 사업이나 활동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대략적인 방향만 정했을 뿐 그때그때 지역 필요와 욕구를 파악하거나 현안이 발생하면 때마침 내려온 귀농귀촌인과 관계된 지역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 방식으로 일들을 추진해갔다. 우리가 가진 재능과 역량을 지역의 공적활동에 연결하며 선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지역일체형공동체를 지향한다.

여민동락은 시설과 기관 중심, 어려운 이웃을 돕는 정도의 협소한 의미의 복지활동은 최소화한다. 오랜 세월 각종 시련과 국가의 주류 정책에서 소외된 농촌은 도시에 비해 소득 불균형과 생활의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면단위 농촌에는 이제 기본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다. 당연히 거주비용은 증대되고 경제적 약자인 다수의 청년은 떠나게 되며 “절제의 달인”인 어르신들만 남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농촌복지는 지역에 거주하는 전 세대와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국가의 역할을 지금보다 더 확장하되 촘촘해야 하며 지역사회는 갈수록 파괴되는 사회적 관계의 복원과 활성화를 통해 더불어 사람 살만한 농촌을 만드는데 일조해야 한다. 이것이 농촌복지의 본령이자 방향이라 생각한다.

농촌은 인구감소와 과소화, 고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여민동락만의 힘으론 어림도 없는 것들이며 우리 또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지역사회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가 주민들 다수의 지혜를 모으고 있으며 이전에 없던 행정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묘량면의 건강한 인구구성과 더불어 사람 살만한 기본 토대를 구축하는데 전력투구할 예정이다. 10년의 구상과 실천계획도 세워봤다. 물론 지역사회와 함께 매년 다듬고 수정하여 실현 가능한 활동들을 해나갈 예정이다. 

여민동락은 여민동락대로 지속가능성과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논의하고 있다. 일명 “공동체 연금 또는 우리식의 공제조합”이다. 그런데 늘 그렇듯 이것 또한 가봐야 안다. 우리 같은 공동체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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