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높은 등급육 생산에 초점 두기보다
다양한 돈육 즐기도록 하는 게 먼저
소비자에 객관적 지표 제공해야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돼지등급판정이 돼지고기 품질 향상 등 가축개량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축산물품질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최근 5년 간 돼지고기 1+등급 출현율이 고작 1.3% 증가했으며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걷은 돼지고기 판정 수수료는 총 603억 원이지만 최고등급과 최하등급 판정을 받는 돼지 비율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됐다. 즉, 축산물 등급제 도입으로 품질이 향상됐다면 최고등급 비율이 늘고, 최하위등급은 줄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주요 지적사항이다.

물론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다르게 생각할 부분도 있다. 지난 10년간 수수료 약 600억 원은 보기에 따라 큰 금액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연간 60억 원, 하루 1600만 원 정도다. 연간 5조 원에 달하는 돼지고기 시장 규모로 보면 큰돈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사실 웬만한 도축장 1개소의 일일 돼지 도축물량이 1000~2000두 이상인 점을 보면 국내 전체 돼지 도축물량을 감안해 봤을 때는 오히려 매우 적은 돈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확히 말하면 축산물등급제는 높은 등급의 축산물을 생산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고급 세단과 경차, 상용차 등 차량의 종류마다 원하는 소비층이 따로 있다. 마찬가지로 축산물등급제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육류의 등급을 나눔으로써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식육을 신뢰하고 선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구매 지표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만약 돼지고기 등급제를 통해 1+등급만 생산토록 유도한다는 것은 마치 고급 세단만 생산·판매하도록 함으로써 경차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층은 차량을 구매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소고기를 예를 들면 1++등급 한우 암소의 경우 가격이 1000만원이 훨씬 넘는 고가이지만 수요층이 탄탄하다.

사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한우는 거세우 1+에서 1등급 사이이며, 최근 들어 고지방 식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마블링이 낮은 한우고기 소비층도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축산물등급제가 반드시 높은 등급육 생산만을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목표설정이 아니다. 국내 돼지고기 시장은 돼지고기 판매액의 60% 이상은 삼겹살과 목살에서 나오는 등 더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즉 삼겹살과 목살 생산량이 양돈 농가의 가장 큰 목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돼지고기 등급제는 품질등급 보다는 규격등급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소고기 등급의 경우 등심부위의 마블링이 가장 큰 품질지표가 되지만, 돼지고기는 도체중과 등지방 두께가 가장 주요한 평가지표가 되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수년 간 삼겹살 중심의 돼지고기 평가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이유도 이 같은 돼지고기 등급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함에 있다. 돼지고기 등급제도 상위 등급육 생산이 유일한 목표점이 돼서는 곤란하다. 다양한 형태의 돈육이 다양한 소비층과 시장을 형성토록 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많은 선택권을 줄 수 있도록 객관적인 지표를 제공하는 것이 돼지고기 등급제의 또 다른 목표가 돼야 한다.

국정감사에서는 ‘제주도 흑돼지의 90% 이상이 최하등급이지만 소비자는 제주도 흑돼지를 선호한다’며 돼지등급판정이 소비자 선호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고 설명했는데, 필자는 조금 다른 생각이다. 제주도 흑돼지가 최하등급을 받는 것은 돼지고기 등급체계가 99%의 시장을 차지하는 개량 돼지에 맞도록 체중과 등지방 두께를 중심으로 개발된 것이기 때문이지 제주도 흑돼지의 품질을 최하로 가치평가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현재 제주 흑돼지 등급체계가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조만간 해결될 것이다.

프랑스 와인의 경우 정부가 정한 지리적 표시 제도와 등급 제도를 따르는 와이너리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용인하는 이유는 프랑스 와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 흑돼지도 다양성 측면에서 기존 등급체계에서 평가 결과와 시장에서 가치평가 체계 모두를 존중함으로써 축산물의 다양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축산물등급제가 정착된 지 3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수차례 개정을 통해 우리 시장에 맞게 잘 정착됐다고 생각한다. 이제 축산물등급제는 우리 정부가 주도하는 하향식 형태의 개정보다는 시장과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상향식 방식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소비자와 시장, 축산업계가 요구하는 목소리를 세심하게 청취하고, 축산업의 발전과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축산물등급제가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준을 유지하고 개정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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