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비서관 줄줄이 ‘출마 사임’…‘늑장 출범’ 농특위 제역할 못해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대통령 국정운영 5개년 계획서
대선 당시 농정공약 실종
6차 산업·스마트팜 등
전 정부 답습 정책 전면 나와

문재인 정부 23개월 지나서야 
가까스로 출범한 농특위 
코로나·위원장 교체로 위축
중점 과제 내년 예산반영 안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4월27일 대선후보로서 농어업 정책을 발표한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10년 동안 우리 농민은 버림받아 왔다. 무관심, 무책임, 무대책 그야말로 ‘3무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현재 농어업·농어촌의 위기는 경쟁과 효율만 강조하고 추구해왔기 때문”이라며 “농정에 대한 국가철학과 기조를 바꾸겠다. 농업·환경·먹거리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지속발전 가능한 농업으로 농정의 목표와 방향을 근본부터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을 넘어 4년차를 지나는 지금, 농정개혁은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런 결과는 어디서 비롯됐는지, 농정개혁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 보았다.

 

◆계속되는 농민 홀대, 실패로 가는 농정개혁

 

문재인 대통령의 농정공약은 사실 농정 철학과 기조를 근본부터 바꾼다는 것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이전 정부의 성장주의, 생산주의, 개발주의를 답습한 내용도 함께 포함하고 있었다. 애초 농민시민단체 등 개혁진영이 요구하는 아젠다와 이전 생산주의 농정, 기업농정의 아젠다를 동시에 수용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문대통령이 농정의 근본부터 바꿔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한다고 공약하고,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설치, 직불제 중심 농정을 강조한 만큼 개혁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농정개혁은 출발부터 왜곡되기 시작했다. 정부 출범 직후 인수위원회 격으로 활동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과제’의 농업, 먹거리 분야에는 대통령의 공약조차 제대로 담기지 않아 비난을 샀다. ‘경쟁과 효율만 강조해온 농정에 대한 국가 철학과 기조를 근본부터 바꾸겠다’던 약속 대신 6차 산업, 스마트팜 같은 지난 정부들의 기업농 정책을 답습한 정책이 전면으로 나오거나 비본질적인 현안관리 나열에 그쳤다. 이 때부터 현장에서는 관료들이 농정을 왜곡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농업계의 시선은 대통령의 공약인 농어업특별기구 설치 여부에 쏠렸다. 이전 정부 농정에 익숙한 관료들이 농정을 개혁할 수 없고, 각 부처들의 관심도 없으니, 대통령이 직접 농업을 챙긴다는 약속대로 직속 특별기구를 통해 농정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특위는 관련법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청와대 내부에서도 무용론이 나오면서 공약 이행은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 사이 문재인 정부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하면서 5개월간 농정컨트롤타워의 공백이라는 사태가 벌어진다. 적폐청산과 농정개혁을 목표로 장관이 설치한 ‘농정개혁위원회’는 장관이 떠나면서 공중분해됐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국정연설, 대국민 담화에서 농업과 농민을 입에 올리지 않고, 농업개혁의 의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범 농업계는 농정공백 사태와 관련, 2018년 3월 농업적폐청산과 농정대개혁을 위한 국민행동’을 결성, 인사 실패에 대한 사과와 농정개혁을 위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지만, 어떠한 공식적인 답변도 받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파워엘리트들이 농업에 무관심한 사이 농정은 관료들이 장악했다. 농정개혁이 전혀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정권의 성장주의, 기업주의 정책들이 ‘지속가능’이나 ‘일자리’란 이름으로 표지만 바꿔 줄줄이 재등장했다.

농업 홀대와 농정개혁 실종을 보다 못한 농민시민사회 인사들이 국민농성단을 꾸려 9월 10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범농업계가 동참하면서 두 달 간 이어진 농성 결과 대통령 면담과 농특위 설치 법안 처리 등을 약속받았다.

농특위법은 2018년 12월 국회를 가까스로 통과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23개월만인 2019년 4월,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박진도 위원장 체제에서 농특위는 ‘농정 틀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30년간 우리 농정을 지배해온 ‘효율과 경쟁 중심의 생산주의 농정’을 ‘사람과 환경중심의 지속가능 농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을 공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2월에 열린 ‘2019 전국순회 타운홀미팅 보고대회’에 참석, “지속가능한 농정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농정의 틀을 과감히 전환하겠다”고 밝히며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올 들어 코로나 19 사태가 터지면서 농특위의 활동은 위축됐고, 5월에는 위원장이 돌연 사임하면서 6월말 정현찬 위원장이 취임할 때까지 농특위 활동은 공백을 겪는다.

농식품 재정구조 개편, 농정 추진체계 재편, 직불제 중심의 농정 방향 개편 등 그동안 농특위가 중점을 두었던 과제는 상반기 중 정부와 협의를 통해 내년 예산부터 실현됐어야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코로나19 추경을 편성할 때마다 농민들은 제외됐고, 한국형 뉴딜에서도 농업과 농민은 배제됐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 농정개혁은 실패의 길로 접어들어 가고 있다.

 

◆대선 공약, 얼마나 이행됐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가운데 일부는 이행되고 있지만, 많은 공약이 이행되지 않거나 왜곡되고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농민 중심의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새로운 농정은 지지부진하고, 이전 정부들로부터 이어져 온 시설과 투입재 중심의 생산주의, 기업주의, 개발주의 농정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 공염불=현재 공약이 부분적으로 지켜진 것은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 관련 공약 중 “쌀값 문제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공약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쌀값 회복을 강력 추진, 그 결과 20년 전 수준인 80㎏당 12만원대로 하락했던 산지 쌀값은 현재 19만원대로 회복됐다.

하지만 △쌀 목표 가격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인상 △대체작물과 사료작물 재배 △휴경 등 강력한 생산조정제 시행 등의 공약은 그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공익형 직불제 개편과 연동해 쌀 목표가격과 변동직불제는 폐지됐고, 쌀 시장 안정방안으로 자동격리제를 도입했으나 실효성이 의문이다. 쌀 생산조정제인 ‘논 타작물재배 지원사업’은 축소됐다.

또 농어업재해대책법과 농업재해보험법의 지원기준을 현실화하고 민간보험인 농어업인안전보험을 농어민산업재해보험법으로 개정, 공적사회보험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재해대책에 따른 복구비는 단가를 다소 높였다 해도 피해에는 턱 없이 못 미치고, 재해보험은 올해부터 보상기준을 오히려 축소해 공약이 후퇴했다. 농어민산재보험법 제정을 통한 국가 사회보험화는 재원 등의 핑계로 손대지 않고 있다.

▶공익형 직불제 확대 약속은 어디로?=현 정부가 성과로 꼽는 ‘공익형직불제 도입’은 원래 공약에서는 ‘공익형직불제 확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농가 소득보전에만 맞춘 직불제를 환경과 생태보전 같은 공익적 가치가 반영된 직불제로 개편하고 농업예산을 편성할 때 직불제 비중을 높여나가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의 생생지락’에는 “선진국처럼 직불제를 중심에 놓겠다. 공익형직불제를 확대하겠다. 정부 예산을 계속 높여가겠다”고 돼 있다. 현재 10종의 직불제를 개편, 주요 선진국 수준으로 직불제 비중을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공익형직불제만 도입했지, 예산 확대는 폐기했다. 당초 공익형직불제를 공론화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농정개혁 TF팀은 임기 내인 2022년까지 5조2000억원의 직불예산을 제시했었다. 선진국 수준으로 직불제를 확대한다는 공약대로라면 앞으로 기본형직불금은 물론 생태 환경 등 선택형공익직불금을 늘려나가야 하는데도 5년간 예산을 동결하고, 농업예산 구조도 그대로 둔 것은 공약 이행 의지가 없다는 얘기다.

▶이행하지 않는 GMO 표시제 강화=문대통령은 GMO 표시제와 식품표시제도를 강화하고, 학교 급식에서 GMO를 퇴출한다고 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2018년 GMO 완전 표시제 시행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21만 명이 넘는 국민의 지지를 얻자, 청와대는 “사회적 협의체를 통해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식품업계의 반대 속에 기존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경자유전 오히려 후퇴=문재인 대통령은 농지법 개정을 통해 경자유전의 원칙을 재확인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정부와 민주당은 태양광 설치를 위해 오히려 농지 규제를 완화했고, 최근에는 한국판 뉴딜을 앞세워 농업진흥구역에 영농형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 내용으로 농지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공약에 역행하고 있다.

대북 쌀 지원 등 통일대비 식량정책 추진, 식량자급률 목표 제고 및 농지보전제도 강화 공약도 있지만, 이것도 이행되지 않았다. 대북 쌀 지원은 한반도 정세에 따라 이행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만, 식량자급률 목표는 오히려 60%에서 55.4%로 하향되고, 사료용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32%에서 27.3%로 축소됐다. 밀은 15%에서 9.9%로 축소했지만, 현재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친다. 농업회의소 법제화는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계획만 난무하는 푸드플랜=농어민과 국민이 함께 종합 먹거리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공약에 따라 추진되는 푸드플랜도 왜곡 우려가 높다. 플랜을 행정이 주도하고, 특정 컨설팅업체들이 전국의 푸드플랜 용역을 독점하면서 붕어빵식 계획이 양산되고 주체인 농민은 소외된 채 통합급식센터라는 유통시설만 세우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기존의 관료주도 농정에 이어 ‘컨설팅 농정’이란 비아냥이 나온다.

▶창조에서 혁신으로, 이름 바꾼 스마트팜=스마트팜 혁신밸리는 원래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적시된 것이 아니다. 공약은 그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미래농업도 준비하겠습니다. 첨단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한 스마트농업을 지원하겠다”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농식품부는 2018년 4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스마트팜 확산방안’을 발표한다. 기존에 농가 단위로 추진됐던 스마트팜 보급 전략을 보완, 정책 대상을 청년농업인과 전후방 산업으로 확대하고, 집적화된 혁신거점으로 전국 4곳에 최소 20ha 규모의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 지 1주일 만에 전국 시도를 대상으로 공모절차에 들어가 8월에 2곳이 1차로 선정됐다. 이런 속도전은 6.13 지방선거 출마를 이유로 농식품부 장관이 3월 사퇴하고, 5개월가량 이어진 공백기에 이뤄진 일이다. 농민들은 이 사업이 시설업자와 운영업자들의 이익을 보장할 뿐, 생산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과 기업에 의한 농업의 수직계열화로 농민에게 피해를 준다며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농민들은 스마트팜 혁신 밸리가 박근혜정부가 시도하다 실패한 LG의 새만금 바이오파크 사업,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중단된 화옹지구 유리온실 사업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명박 정부의 ‘농업선진화’ 박근혜 정부의 ‘창조농정’이 ‘혁신’ ‘청년’ ‘일자리’로 이름만 바꿔 다시 등장한 것이다.

 

관료에 포획당한 농정으론 변화 어려워…개혁동력 다시 찾아야

정권 핵심층 농업에 ‘무관심’
농특위, 수장교체로 시간 허비
농식품부 반대도 개혁 걸림돌  


◆변하지 않는 관료사회, 개혁은 어떻게 무산됐나?

정권 핵심의 농업에 대한 무관심 속에 농식품부 장관과 농해수 비서관이 각각 3번이나 바뀌는 현실에서 농정개혁을 추진할 체계는 없었다. 정치인 출신이던 초대 장관, 2대 장관은 모두 선거를 이유로 재임 8개월, 1년여만에 선거 출마를 위해 장관직을 사임했다. 농민운동 경험이 있던 초대 농어업비서관, 2대 비서관도 같은 길을 걸었다. 결국 세 번째 장관은 농정관료 출신이 임명됐고, 농해수비서관은 농업관련 컨설팅업체 출신이 임명됐다. 이전 정부의 농정이 표지만 갈고 다시 등장하는 배경이다.

“대통령 공약사항이 있으니까 행정부는 하기는 해요. 하는데, 관료들이 한다는 건 ‘창조’를 ‘지속가능’으로 바꾸고 마는 거예요. 공약을 세워서 당선됐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행정부의 이행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압박을 해야 하는 건데, 그게 제대로 안되니까 관료들이 직무유기를 한거죠.”

농특위 한 분과위원은 농정개혁이 실기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올해 코로나가 터지면서 기후위기가 더 심각한 것을 알았을 때, 지난해 12월에 대통령이 제시한 5대 방향과 농특위의 12대 아젠다를 더 새롭고 가열차게 추진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하고 실기를 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가 고비였는데, 정치권 상황이 4월 총선에 이어 6월에 국회가 구성되고, 그린뉴딜 정국이 기재부 산자부 중심으로 확 가버리는 동안 농특위는 수장교체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면서 돌파구를 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농정관료들은 원래부터 개혁을 할 생각이 없다”면서 “농특위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면 청와대 농해수비서관실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농업계와 간담회도 하고, 의견수렴도 해서 반향을 일으켰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했다”고 평가했다.

농정의 중요 사안을 청와대 농해수비서관실과 농식품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대선캠프 출신 일부 전문가 그룹 중심으로 다루는 방식도 지적했다.  “현장과의 교감 없이 자기들 끼리 하니까 배척을 받는 거잖아요.” 농정틀 이행계획이나 농촌그린뉴딜을 몇몇이 만들다가 접은 것을 말한다. “저는 소위 엘리트 의식이 있다고 보거든요. 대중의 의지를 모아야 그나마 기재부에 대응할까 말까 하는데 그걸 모르는 거예요.” 몇몇이 주요 정책을 현장과 협의 없이 만드니까 농업계나 행정부 어느 쪽의 동의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농업계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다가 대선캠프를 거쳐 정부에 들어갔거나 농정에 관여하는 몇몇 인사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하고 있다. “몇몇은 농식품부 등 정부랑 회의를 하고 오면 농특위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정부 입장을 농특위에 설명해요. 농정틀 전환 실행계획이란 것도 보니깐 농식품부가 짠 그대로더라고요. 그러니 농특위를 해도 안되는거예요.” 한 농특위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런 행보에 대해 현장에서는 “관료사회에 포획됐다”고 평가한다.

이런 지형에서 농식품부는 농특위의 주요 개혁안을 반대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농협중앙회장 대의원 간선제를 전체 조합장 직선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농특위가 만장일치로 의결해 넘겼는데도, 농식품부가 국회 논의과정에서 조합 규모에 따른 부가의결권 도입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하는 바람에 법 개정이 무산된 일이 꼽힌다. 

농특위에서는 공익형직불제 예산을 문 대통령 임기 내 5조로 확대할 것을 주장하는데, 농식품부는 2조4000억으로 5년간 동결한 것, 농특위는 농지 전수조사를 얘기하는데, 농식품부는 예산과 인력을 이유로 반대하는 것도 그렇다. 농정개혁의 핵심사안마다 농특위의 개혁안이 농식품부의 반대라는 암초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농정개혁의 부진은 기존 농정을 배경으로 하는 농정관료들과 그 농정을 기반으로 하는 업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농특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공익형직불제 예산을 5조까지 확대하려면 농식품부 내부도 조정하고 조직도 개편해야 되는데 공무원들한테 부담되지 않았을까요? 기존 농정으로 먹고 살던 업자들도 농정틀 전환을 하면 안 되는거죠. 그러다 이런 국면이 되니까 그들이 농정개혁을 자연스럽게 엎어버린 거죠.”

농특위를 통한 농정개혁이 쉽지 않은 것은 자문기구라는 태생적 한계도 작용한다. 농특위의 의결사항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농특위의 구성이나 일부 위원, 분과위원들의 역할과 전문성도 한계로 지목된다. 본위원회는 정부 5명과 민간위원 24명 등 총 30명으로 구성됐는데, 일부 위원의 경우 무슨 기준으로 인선을 했는지, 대표성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출범 당시 최대 농민단체인 한농연과 전농의 대표가 빠졌다가 나중에 위원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일부 위원, 분과위원들의 자질과 태도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농특위의 한 분과위원은 “일부 위원들은 한국 농업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해만 대변하거나, 일부 위원들은 심도 있는 협의 보다 그저 자기 분야 얘기만 하다가는 경우가 있다”면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리더로서의 자질과 대표성보다 로비하는데 능한 민낯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전한다. 그는 “농특위에서 모든 개혁 이슈를 다 풀어헤치긴 했는데, 농특위 내외부에서 각자 목소리만 내는 바람에, 그것을 수습하고 합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위원장 공백이 생기자 관료들이 타이밍을 잡은 것”이라고 농정개혁이 물 건너가는 상황을 진단했다.

 

◆대통령 의지, 농업계 리더십 복원이 농정개혁의 열쇠

 

농특위를 통한 농정개혁, 농정틀 전환이 가능하려면 대통령의 공약대로 농업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과 농특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농특위 관계자는 “농정개혁이 가능하려면 자문기구인 농특위의 한계가 있는 만큼, 농정개혁과 농특위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과 지지가 필수”라고 했다. “애초 관료들로는 농정개혁을 절대 할 수 없으니까 농특위를 만든 거잖아요. 정부가 농업에 대한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농특위에 힘을 실어주는 길 밖에는 없어요.”

농특위를 견인하고 정부를 견제해야 할 농민단체, 시민사회의 리더십 복원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자성의 소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농정개혁이 실패하는 상황을 보고 농민단체도 자포자기한 측면도 있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도생하면서 무기력하게 대응해온 것도 농정개혁 실패의 요인이라는 것이다.

2년 전 가을. 청와대 앞에서 농정 적폐 청산과 농정 대개혁을 촉구하며 두 달 간 단식농성을 진행했던 유영훈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은 “알아서 잘 해주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적당하게 목소리 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농정개혁이 가능하려면 농민시민사회가 다시 연대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헌중 국민행복농정연대 집행위원장은 “현장의 힘을 보여주지 않고 앉아아서 기다리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며“자문위원회라는 농특위의 형식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면 농어업계와 시민사회 진영이 새로운 결의와 재정비를 통해 농특위를 견인해야 농정틀 전환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호중 농어업정책포럼 상임이사(경제학 박사)는 “농정틀 전환의 대통령 공약이 있고, 기후위기 대응도 있는 만큼 농정개혁을 국회가 앞장서서 이뤄내도록 하는 게 슈퍼여당의 책임”이라며 “농업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행동을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시민사회단체 결합, 공동 대응 필요”

◆김호 단국대 교수/인터뷰

김호 단국대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농업개혁위원장)은 농정개혁에 변함없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학자다.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매년 5월 경실련에서 문재인 정부 농정 평가 토론회를 해 왔지만, 올해는 3년 평가 토론회를 열지 않았다고 했다. “예전 정부 농정이 계속 이어지고, 새로운 게 없어서”다.

“농정의 흐름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농정의 연장선상으로서 시설설치 농정, 개발주의 농정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예를 들면, 스마트팜 밸리, 산지(중산간지대)와 농지에 무분별한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 것은 비농업부문의 대기업에게 일감을 제공해 주는 대표적인 사례예요.” 김 교수는 “농업인력 고령화와 농가부채의 증가, 농업의 느린 자본회전 주기, 낮은 수익률을 고려하면 대규모 시설 위주의 개발 농정은 농민의 소득증대보다는 설치산업 자본의 이윤을 창출해 주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익형 직불제 예산 동결과 관련, 그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선택형 직불제가 반드시 확대 추진되어야 하는데, 예산을 동결한 것은 대통령의 공약 실천 의지가 없는 것”이라며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매년 예산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할 뿐 아니라, 농업예산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무슨 플랜’, ‘무슨 계획’ 등 실천이 담보되지 않고 계획에 그치는 농정, 컨설팅 성과에 대한 평가도 없는 컨설팅을 위한 컨설팅이 난무하는 등 예산이 엉뚱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컨설팅해서 뭔가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형식적으로 컨설팅을 붙이고, 그게 보고서로 끝나는 겁니다. 현재도 법정계획으로 수립해야 할 계획이 많은데, 전부 계획서 짜놓고 캐비닛에 들어가 있어요. 여기에 푸드플랜이라고 또 계획을 세우는데, 그 계획을 주체들이 세우는 게 아니고 컨설팅 업자한테 맡기죠. 책임지는 건 없고요.”

경실련 농업개혁위는 올해 농지문제를 중점으로 다룬다고 한다. “식량안보와 식량자급률의 향상을 위해 농지의 보전은 핵심입니다. 경자유전의 원칙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비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예외조항의 폐지 또는 수정을 중심으로 농지법 개정안을 만드는 겁니다.” 그는 “정부 고위직과 국회의원의 농지 소유는 지도층으로서 무책임한 행위”라며 “이들의 농지소유 및 이용실태를 조사, 반농업적 및 반농민적인 실태를 찾아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농정 개혁을 위해서는 주요 농민단체, 시민사회단체가 결합, 하나의 대표적인 기구가 조직돼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농업은 시장개방과 기후변화, 세계적인 감염병 등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위기국면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각 단체의 조직이기주의로는 얻을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과거 UR 투쟁과 쌀개방 반대 투쟁 시에는 농민단체와 시민사회가 한 목소리를 낸 바 있는 만큼,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관철시킬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를 빌미로 ‘재난자본주의’가 대두되는데 대해서도 경계했다. 재난자본주의란 재난 상황을 기업(자본)이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현상이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농정 방향은 반인간적이고 반생태적인 산업문명에서 생명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농민단체와 시민사회가 단합해 국내외 자본의 지속적인 공략에 대응하는 정책 대안을 주장해야 합니다. 특히, 농촌의 상부상조 생활관습과 재난에 대한 연대와 협력을 기반으로 농촌공동체를 회복하고, 나아가 식품을 매개로 한 도농 공동체의 형성이 필요합니다.”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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