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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정부 양곡관리 중장기 계획 수립···식량안보 강화 서둘러야정부양곡 ‘특혜성 구조’ 실태진단 <하> 개선방향-정부양곡 개혁 로드맵 만들자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정부양곡 관리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로드맵을 구축해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나라미의 품질관 안전성을 확보하자는 농업계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현대화된 RPC 내부 전경.

농림축산식품부는 1990년대 초 양정개혁을 통해 쌀산업 구조개선을 추진해 왔다. 1992년 RPC 정책사업을 도입했고, 2007년부터 고품질쌀유통활성화 정책도 시행했다. 또한 양곡표시제를 강화하는 등 쌀 산지에서부터 소비지까지 쌀산업 기반을 구축해 왔다. 반면에 정부양곡은 낙후된 실태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저장창고의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다. 이 때문에 식량안보를 강화하면서 정부양곡을 개혁하는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산물벼 정부창고 이관·도정 때
상하차·운송비 이중으로 지불
연간 10만톤 RPC서 도정하면
매년 예산 100억 씩 절감 가능

정부양곡 품질·관리비 지적에
농식품부 “저온·특급 위주 계약
1급 미만은 가급적 보관 줄여”
곡물협회 “오래된 건물 많지만
시설·가공기술은 우수” 입장 


양곡 수매 RPC 도정 허용 등
한농연 실질적 제도개선 촉구 
기술력 높은 RPC 최대한 활용 
정부양곡 수준 제고 등 진단도


▲헛으로 쓰는 양곡관리예산 절감 가능=농식품부는 공공비축 쌀 34만톤과 ‘아세안+3 비상 쌀 비축제(APTERR)’ 1만톤 등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5만톤을 매입한다. 공공비축은 또 40kg 포대로 24만톤을 매입해 정부가 지정한 양곡창고에 들어간다. 또한 농협RPC와 민간RPC가 수확기에 공공비축 산물벼 10만톤을 반입해 저장하고 있다가 이듬해 정부의 관리방침에 따라 정부양곡창고 이관 또는 RPC에서 인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곡관리 예산이 엉뚱하게 사용되는 문제가 나타난다. 농협과 민간RPC에 보관되어 있는 산물벼를 정부양곡창고로 이관하고, 도정공장에서 나라미로 도정되는 과정에서 이중 물류비가 발생하는 것이다.

RPC 사일로에 있는 공공비축 산물벼를 정부양곡창고로 옮기는 상하차비, 운송비가 지급되고, 양곡창고에서 양곡도정공장으로 가면서 똑같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산물벼로 매입한 RPC에서 그대로 저장하면서 군관수용, 복지용 쌀로 도정해 공급하면 정부양곡창고로 옮길 때 발생하는 상하차비와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책정된 운송비와 상하차료 기준을 감안할 경우, 공공비축 산물벼 10만톤을 RPC에 그대로 두고 도정하는 방식으로 개선하면 연간 100억원에 육박하는 양곡관리 예산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다 RPC 사일로 저장에 따른 쌀품질 저하 방지 등의 효과를 감안하면 수백억원 대의 경제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김명환 GS&J 농정전략연구원장은 “농식품부가 RPC를 통해 산물벼로 매입한 정부양곡만이라도 RPC에서 도정하면 시중 유통 쌀과 동일한 품질의 나라미를 생산할 수 있다”며 “정부예산도 대폭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양곡 관리를 진작에 개선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 예산 쓰면서 개편 못하나=이처럼 당장 공공비축 산물벼 관리방식을 조금만 개선해도 국가 농업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우수한 품질의 나라미를 공급할 수 있는데도 실행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농식품부가 정부양곡 관리 체계 개선을 전혀 검토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92~1993년 양정개혁과 RPC 정책사업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정부양곡 문제가 대두됐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양곡의 품질과 관리비 예산절감에 대한 지적이 반복되자 지난 2018년에도 농식품부가 개편을 검토하다 돌연 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명환 원장은 “정부양곡 사업을 하는 대한곡물협회와 회원들은 강한 로비단체”라며 이들의 힘에 농식품부가 손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양곡유통업계에서도 “농식품부가 정부양곡 관리를 전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보관창고 운영자들에게 밀리기 때문”이라고 귀뜸한다.

▲정부양곡 관리 수혜자는 누구인가=정부양곡 도정공장을 지역별로 놓고 보면 독점 체제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정부 지정을 받은 양곡도정공장만 참여할 수 있다. 일부 현대화한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식품으로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는 낙후된 시설이다. 그렇다보니 인공지능(AI) 수준으로 발전한 RPC와 비교해 쌀 품질이 뒤떨어진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 농식품부의 2017년 연구용역에서도 정부양곡도정공장에서 나온 나라미에 대한 품질 불만족 실태도 조사된 바 있다. 공영방송인 KBS도 지난 9월 26일 쌀벌레인 바구미가 득실거리는 정부양곡 ‘나라미’가 70대 홀몸 노인에게 전달된 정부양곡 실태가 드러난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쌀 연구자들은 현행 정부양곡 관리체제에 대해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잔재”라고 비판도 가한다. 또한 정부양곡 도정공장 인수를 통해 여러 지역의 정부양곡을 독식하는 실태도 지적되고 있다. 대도시 인접 지역과 군부대, 교도소 등 군관수용 수요가 많은 시·군이 정부양곡 업자들 사이에서 ‘명당’으로 분류된다. 이 같은 문제에 따라 정부양곡도정공장 독점 구조를 전면 개혁하자는 대안이 강하게 제기된다.

일선 양곡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양곡 도정공장 사업자 중에서 다른 지역 도정공장을 인수해 3~4개 시군을 소유하고 있는 곳도 있다”며 “군관수용 수요가 많은 지역은 특히 인기가 있고, 이들은 더많은 정부양곡 물량을 확보하는데 몰두한다”고 현장 실태를 전했다.  

이처럼 정부양곡으로 자산을 불려온 업자들이 있는 반면 쌀값을 아끼기 위해 나라미를 구매하는 사회적 약자는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기초적인 생존권인 쌀마저 차별 받아야 하는 현행 정부양곡 관리체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과제가 제기된다.



▲문제없다는 농식품부와 곡물협회=농식품부와 대한곡물협회는 현재 정부양곡 나라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한다. 농식품부는 본보 보도에 대한 설명자료에서 “정부양곡은 지자체를 통해 저온, 특급 창고 위주로 계약 보관하고 1급 미만 창고는 가급적 보관을 줄이고 있다”며 “정부양곡 도정공장도 기계와 시설능력, 환경, 청결상태를 평가해 4개 등급으로 계약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곡물협회도 정부양곡에 대한 의견서에서 “RPC보다 규모가 작고 오래된 건물이 많지만 기계시설은 비슷하고 가공기술은 우수해 쌀 품질이 시중 유통 쌀보다 떨어지지 않는다”며 “정부양곡보관 창고는 건축연한이 오래된 곳이 많으나 수시로 보수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쌀관련 전문가, 양곡유통업계 모두 한 목소리로 정부양곡 도정과 저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개혁을 촉구한다. RPC 전문가들은 “정부양곡에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나라미의 품질과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며 “동시에 RPC 활용을 통해 경영을 더욱 활성화하면 쌀농가에 혜택이 돌아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양곡 제도 개선 촉구하는 농민단체=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이하 한농연)는 지난 9월 28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실질적인 정부양곡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한농연은 ‘정부관리 양곡제도의 근본적 개선을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나라미 품위 저하 문제가 수면 위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쌀 수요 확대를 목적으로 시행한 정부 관리 양곡 관련 사업이 복지 수요자 정책 불신과 국산 쌀에 대한 소비자 불신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정부양곡의 구조적 문제도 제기했다. 한농연은 “농업계에서는 저장 가공 시설 노후화, 비효율적 유통구조, 시장 내 불공정경쟁 및 구조조정 등의 정부 관리 양곡의 구조적인 한계를 개선해야 품질문제 뿐 아니라 일부 부도덕한 업주들의 도덕적 해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해 왔다”며 “그러나 정부는 규제 강화, 일제 점검 등 제도권 내에서 일시적 조치로 대처했다”고 꼬집었다.

한농연은 또 “정부지정 도정공장보다 전반적으로 월등한 시설 설비와 기술을 갖춘 RPC가 존재함에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공비축 산물벼를 수매한 RPC에서 도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면 정부 양곡관리예산을 효율적으로 절감할 수 있고, 정부양곡 품질개선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농연은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와 제도개선을 논의해야 한다”며 “포용 복지를 주창하는 현 정부의 복지정책 강화 기조에 부응하고, 쌀 수요 확대를 포함한 지속가능한 식량자급체계를 내실 있게 달성하기 위한 현행 양곡관리체계의 근본적 제도개선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양곡 중장기 로드맵 구축 절실=이처럼 농민단체와 쌀산업계 등 농업계에서 정부양곡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가운데 정부양곡 정책사업에 대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보관창고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편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온다. 그러면서 현재 정부양곡 관리사업에 참여하는 사업자들도 대비할 수 있도록 점진적 구조조정 방향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양곡을 시중 유통쌀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이른바 ‘정부양곡 개혁 중장기 로드맵’을 구축해 식량안보를 강화하면서 품질개선과 예산 효율을 높이자는 제언이다. 

정부양곡 저장시설이 아직도 시멘트벽돌과 블록으로 건축한 창고가 많은데, 온도와 습도 관리가 가능한 현대화된 저장창고를 국가 차원에서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양곡 도정을 양곡정책사업인 RPC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RPC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식품부가 RPC에 대해 매년 운영 실태를 점검하는 등 관리하고 있어 정부양곡 사업수행에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양곡 관리예산이 RPC에 투입되면 쌀산업과 쌀농가, 그리고 나라미 수급자에게 궁극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가장 큰 기대효과다.

김명환 원장은 “공공비축미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소비처 위주의 대규모 저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부양곡 관리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식량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며 “국가창고 중심으로 정부양곡 보관 체계를 구축하고 도정 또한 RPC로 전환해 정부양곡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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