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산 벼 산지동향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지난여름 폭우와 태풍에도 불구하고 가을 들녘에는 수확이 시작됐다. 10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김정중 씨가 올해 첫 수확하는 오대벼를 살펴보고 보고 있다. 김흥진 기자

햅쌀 수확 출발점 철원평야
긴 장마·연이은 태풍에 몸살
간신히 쓰러짐 피한 벼도
쭉정이 많고 수분함량 낮아
수확량 평년 못미쳐

햅쌀을 수확하는 현장의 농가들이 “벼 쭉정이가 많아”, “올해 헛농사 지었어”라고 흉년을 얘기하고, 수확을 앞두고 쓰러진 벼를 바라보는 농가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54일이나 지속된 최악의 장마와 연이은 태풍이 지나간 상처가 2020년산 쌀 생산 불안으로 확산하고 있다. 심지어 2년 연속 쌀 생산이 소비량보다 적을 것으로 우려되면서 식량위기 조짐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햅쌀 수확 출발을 알리는 강원도 철원평야. 그나마 태풍의 눈에서 멀리 떨어져 벼 쓰러짐 피해는 모면했지만, 54일이나 지속된 장마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태풍 하이선이 지나고 비친 가을 햇살 덕분에 수확에 나선 철원지역의 농민들은 평년보다 못한 수확량에 어두운 얼굴 일색이다.

철원 동송농협RPC에 산물벼를 트레일러에 싣고 온 한 농민은 “벼 이삭이 패고 난 직후부터 장마가 그치지 않아 제대로 여물지 않았다”며 “노랗게 물든 논도 벼포기를 들여다보면 아랫부분 이삭은 고사해 쭉정이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RPC 반입구에 쏟아 붙는 벼를 한 움큼 쥐며 “오대쌀 낱알은 통통해 보이는 것이 정상인데, 홀쭉해 보이지 않느냐”며 “쭉정이, 청취 등도 많이 섞인 것을 보면 평년보다는 작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동송농협RPC 관계자들도 올해 작황이 다소 저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보다 제현율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구한서 동송농협RPC 장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제현율이 1%포인트 가량 떨어지는 것으로 측정되고 있다”며 “9월 중순 수확이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판정해 봐야 올해 실제 작황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올해 신통치 못한 작황은 수확 직후 RPC에 반입되는 산물벼의 낮은 수분함량을 통해서도 판단됐다. 구한서 장장은 “9월 4일부터 산물벼를 받기 시작했는데, 건조작업을 하지 않은 물벼 수분이 평균 22~23% 정도로 측정되고 있다”며 “예년의 같은 시기 26% 안팎의 수분함량과 비교해 전반적으로 낮다. 쭉정이가 많고 논에서 과도하게 건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마기간 동안 도열병 피해로 고사한 벼 이삭이 섞여 있고 미숙립 같은 쭉정이 비율도 높아 평균 함수율을 끌어내리는 원인이 됐다.

전국 최대 벼 재배면적을 기록하고 있는 충남 당진시 지역은 지난 하이선 태풍으로 수많은 논에서 쓰러짐 피해가 터졌다. 특히 당진지역에서는 대부분 만생종을 재배하고 있어 이제 여물기 시작하는 벼가 쓰러져 농가들은 막대한 수확량 손실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당진의 한 수도작 농민은 “장마와 마이삭 태풍까지는 벼가 잘 그나마 서 있었는데 하이선이 지나면서 많은 비가 내려 여기저기 논에서 도복이 발생했다”며 “현재로선 어느 정도 수확할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쓰러진 논에 대한 보상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승석 당진해나루쌀 통합RPC 대표도 “당진에서 재배되는 만생종 벼의 30% 가량이 쓰러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며 “조생종 매입실적이 평년의 절반 수준으로 저조한 것을 보면 올해 쌀 수확량 감소가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농협 조합윈이 수매를 위해 미곡처리장 반입구에 산물벼를 투입하고 있다. 김흥진 기자

이처럼 전국 곳곳에서 장마와 태풍에 따른 흉년이 예고되는 가운데 산지의 양곡유통 관계자들은 올해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곡 소비량보다 공급량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쌀 공급 위기와 수급난 조짐이 되고 있어 농식품부가 수급안정 대책에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2019년산 쌀은 농협과 민간 재고가 이달 말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0월부터 2020년산 신곡으로 갈아타야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생산량 374만톤보다 올해 신곡 생산이 줄면 공급 부족사태가 수확기부터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조곡 벼값이 급등하는 반면 산지 쌀값은 상대적으로 오르지 않는 쌀유통 왜곡 현상 또한 더욱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

이에 따라 일선 농민과 양곡유통 관계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몇몇 나라에서 발생한 식량파동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며 “양곡관리법에 10월 15일까지 수급안정대책을 수립하라고 규정된 만큼 농식품부가 쌀 공급과 가격 등 현장이 신뢰하는 식량수급 대책을 세워 양곡시장 안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한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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