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식약처, 유통기한 대신 도입 
소비자 혼란방지 등 기대

유통매장 냉장관리 허술
우유 변질사고 우려 높아
국산 우유·유제품 불신 등
낙농가 반대 목소리 불구

식약처는 법 개정 일방통행
농식품부는 수수방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의 유통기한을 대신하는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낙농가들이 냉장관리·유통시스템 구축 등 사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추진하는 소비기한 표시제는 국산 우유와 유제품에 대한 불신, 소비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정부가 밀어붙이기 식으로 소비기한 표시제를 추진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안전과 낙농 기반을 위협하는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며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한 후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비기한 도입 추진=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6월 24일 ‘소비자 중심의 식품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방안’을 주제로 ‘식·의약 안전 열린 포럼 2020’을 개최했다. 소비자들이 그동안 식품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잘못 인식해 소비되지 않고 버려지는 문제가 야기된 만큼 이의 해소방안으로 소비기한을 도입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식약처는 유통기한을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 소비기한은 표시된 보관 조건에서 소비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식약처는 이번 포럼을 계기로 소비자 중심의 합리적인 방향으로 식품 소비기한 표시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포럼 이후 강병원(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을 7월 2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제식품규격위원회 및 선진국에서 유통기한은 소비자가 식품의 폐기 시점 등으로 오인할 수 있어 식품 섭취가 가능한 기한인 소비기한 표시제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또 식량자급률이 높은 선진국에서도 식량 폐기 감소 등을 목적으로 소비기한 표시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소비자 혼란 방지와 식품 안전 담보, 식품 폐기물 감소를 위해 소비자 중심의 소비기한 표시제로 개선하겠다는 개정 취지를 밝혔다.

▲낙농가 강력 반발=낙농육우협회는 9일 성명서에서 식품일자 표기 개선에 앞서 선진국 수준의 법적 냉장온도 강화, 냉장관리·유통시스템 구축, 적정 냉장온도에 대한 소비자 교육 등 사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해당 제도를 도입할 경우 소비자 혼란과 소비자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낙농육우협회가 인용한 소비자연맹의 조사 자료(2020년)에 따르면 유통매장의 법적냉장온도(0~10℃) 준수율은 70~80%에 불과하다. 또 유통매장에서 자체적으로 설정한 냉장온도와 냉장진열대, 냉장식품 표면온도 간의 차이도 큰 것으로 조사돼 적정온도 관리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고 가정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식품을 보관했지만 변질 등 문제가 발생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소비자 비율도 27%로 확인됐다.

특히 2018년 건국대학교 조사에 따르면 유통점 155개소 중 22.6%인 35개소가 법적냉장온도 기준을 초과해 우유·유제품을 관리하고 있다. 우유의 경우 냉장 여건에 따라 보존성이 짧아지거나 길어질 수 있어 지금처럼 완전하지 않은 냉장 유통 상황에서 유통기한 보다 긴 소비기한을 설정할 경우 우유 변질 사고가 빈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우유 변질 사고는 국산 우유와 유제품에 대한 불신과 혼란, 우유 소비 감소, 수입 유제품과 비교해 국산 우유·유제품의 경쟁력 악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유통기한 보다 늘어난 소비기한으로 인해 빈번한 식품 변질사고 발생이 예상되고 소비자 피해, 제조사와 유통업체 간 분쟁 발생이 우려된다”며 “결국 국산 우유와 유제품에 대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고 우유 소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유통기한이 길지 않고 신선한 식품이라는 국산 우유·유제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은 수입산 유제품으로부터 국산 우유·유제품 시장을 일정 부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소비기한 도입으로 국산 우유의 변질 사고가 많이 발생할 경우 유제품 수입을 더욱 증가시키는 등 유가공품 수출국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로 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 의견 외면하는 정부=낙농육우협회는 앞서 언급한 내용을 골자로 한 의견을 식약처와 농식품부에 전달했지만 식약처는 이 같은 의견을 외면한 채 법 개정만 밀어붙이고 있고 식품·낙농산업을 관장하는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농식품부는 부처 의견 제시와 함께 식약처와 적극적으로 부처 협의에 나서야 한다”며 “제도 도입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지 않은 채 소비기한 표시제를 시행한다면 소비자 안전은 물론 국내 낙농 기반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낙농육우협회는 법 개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식품 특성을 고려한 식품일자를 세분화해 제도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정책 판단, 현행 10℃ 이하인 법적냉장온도를 선진국 수준인 5℃ 이하로 조정, 냉장 온도 등에 대한 철저한 소비자 교육 등을 선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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