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생산농가 파산 위기…최대 2000억 피해 추정

[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내년까지 전망 불투명
2019년생 경주마 판로 막혀

경주마 입사 이뤄지지 않을 땐
농가 사육비 부담 고스란히
승마·고기용 전환도 어려워
사실상 폐기처분 불가피 ‘울상’
정부 매입·폐업 보상 등 촉구


경마가 중단됐다. 하지만 단순히 레저 스포츠 중단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경마 중단으로 인해 2만3000명의 종사자와 3조4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말 산업의 붕괴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축산업계 입장에서도 경주마를 생산하는 농가들이 파산 위기에 몰렸고 축산발전기금의 주요 재원인 한국마사회 특별적립금 적립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에 경마 중단이 축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두 차례에 걸쳐 진단한다.

▲경주마 생산농가, 파산 위기에 처하다=경주마 한 마리 생산에 소요되는 비용은 약 2400만~250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인건비와 종부료, 사료비 등을 고려할 때 연간 4억원의 비용이 경주마 생산에 투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음해 경주마 생산을 위한 씨암말 구매 등에 소요되는 1억~1억5000만원의 비용까지 계산하면 경주마 생산을 위한 연간 기본 소요 비용은 5억~6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비용을 투입해 경주마 생산농가들이 연간 생산하는 경주마는 약 1400마리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경마가 중단된 상태다. 실제 전국 3곳의 경마장(서울·부산경남·제주)에서 열렸던 경마는 2월부터 중단됐고 6월 19일부터 무고객 경마가 재개됐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9월부터 다시 휴장에 들어갔다.

이처럼 경마가 중단된 것은 물론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측되면서 농가들이 생산한 경주마의 판로가 막혔다. 특히 2019년에 생산된 경주마는 갈 길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3세 이상이 되면 한국마사회에서 신마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김창만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 회장은 “경주용 말은 태어나서 24개월 정도 기른 후에 경마장 입사가 가능하다. 2019년생 말이 올해 경매를 통해 팔려야 하지만 내년에도 경마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해당 말이 갈 곳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농가는 “3세 이상은 판매 방법이 없어 제값을 받을 수 없다. 결국 농가 입장에선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의 2020년 국내산마 경매 시행 결과에 따르면 2세마의 경우 5월과 7월 두 차례 실시했다. 그 결과 270두가 상장해 61두가 낙찰됐다. 낙찰률은 22.59%. 지난해 같은 기간 낙찰률이 31.25%인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여파로 경마 낙찰률이 10% 정도 감소했다. 평균 경매가격도 5월 3750만원, 7월 3610만원으로 지난해 5월 4038만원, 7월 3530만원 보다 하락했다. 오권실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 사무국장은 “말이 판매돼야 농가들은 사료비와 부채 등을 갚고 새로 경주마를 생산하는 등 순환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경마가 열리지 않으면서 마주들은 말 구매를 줄였고 가격도 떨어져 농가들의 피해가 적잖다”고 주장했다.

경주마 생산농가들은 경마 중단으로 2019년생 경주마의 입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최소 1500억원, 향후 미입사 경주마 사육비까지 감안하면 약 2000억원의 농가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경주용으로 생산한 말은 승마용 또는 고기용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어려워 사실상 폐기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소득이 급감한 경주마 생산농가들은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경주마 생산 붕괴까지 우려되고 있다. 김창만 회장은 “나도 15마리의 경주용 말을 생산하면서 말 생산비용으로만 4억5000만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했다. 여기에 약 10억원에 달하는 각종 대출금도 상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농가들이 피땀 흘려 일궈놓은 목장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점에 와 있다”고 하소연했다. 오권실 사무국장도 “농가들은 수의사 진료비를 지급 못할 만큼 자금의 융통성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주마 생산농가들의 요구사항=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는 지난 1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경마중단에 따른 현안 건의’를 제목으로 한 문서를 발송, 경주마 생산농가들의 재기를 위한 대책 마련을 건의했다.

생산농가들의 건의안에 따르면 우선 예비 경주마의 매각이 차단된 만큼 한시적으로 일정두수를 매입하고 경마장에 입사하지 못한 2세마의 산지 폐기, 폐업농에 대한 보상 등을 요청했다. 또 사료비와 진료비, 인건비 등이 연체되는 만큼 경마산업이 정상화될 때까지 농가들이 버틸 수 있도록 경영비에 대한 저리 융자 지원과 보조, 국산·외산 말을 분리한 경주 시행 등 국산 말에 대한 우대 정책, 조속한 경마 정상화 방안 강구 등의 대책을 촉구했다.

김창만 회장은 “농축산물의 경우 생산이 과잉되면 산지 폐기, 정부 수매 등 수급조절을 할 수 있지만 말은 그 같은 해법이 없는 실정이라 답답하다”며 “생산농가들이 1억원씩 쓸 수 있도록 경영자금 300억원, 2019년산 말 300두 매입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현우·강재남 기자 leehw@agrinet.co.kr



#현장 속으로/제주의 경주마 생산농가, 전영환 축산목장 대표

제주에서 경주마를 생산, 육성하고 있는 전영환 대표는 2019년생 경주마가 올해 안으로 경마장에 입사하지 못할 경우 농가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것은 물론 경마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말까지 경마장에 입사 못하면
농가 생계 위협, 경마산업 흔들릴 것” 

코로나19로 경마가 중단되면서 2019년에 생산된 경주마가 갈 곳을 잃게 될 위기에 놓였고 그 피해를 생산농가가 고스란히 떠안게 돼 경주마 생산농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제주에서 연간 13~17마리의 경주마를 생산·육성하는 축산목장 전영환 대표는 “경마 시장에서 볼 때, 2019년에 생산한 경주마를 올해 말까지 경마장에 입사 시키지 못하면 경주마가 ‘혹’으로 전락해 가장 바닥에 있는 생산농가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결국 경마산업은 무너질 것”이라며 경마 중단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 대표는 또 “2019년도 생산 경주마가 올해 말까지 경마장에 입사하지 못하면 한국마사회에서 신마로 받아주지 않아 경마에 투입될 수 없다”며 “경주마가 뛰지 못하면 잔존가치가 없어지는 셈”이라고 얘기했다.

경주마로 투입되지 못한 것에 대한 피해는 농가들이 떠안고 있다. 전영환 대표는 “지난해 퇴역경주마 도축으로 난리가 났는데 경주마를 팔지도 못하고 도축도 못하는 혹이 돼 농가가 그 피해를 그대로 떠안아야하는 상황”이라며 “승용마로 전환하려해도 2~3세 경주마는 사고발생률이 높아 7~8세 이전에는 승용마 활용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출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현 부채만 20억원 수준인데다 대출규제로 소득대비 대출이 이뤄지고 있어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경주마 생산농가의 경우 대출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경마 시장 내 생산자들은 피라미드 구조상 가장 밑바닥에 있어 경마 기반인 경주마 생산농가가 흔들리면 결국 경마산업 자체가 흔들리거나 붕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산농가 보호정책 급선무
국산마 고정적 경마비율 유지
혼합경주 줄여 외산마와 구분
마권 발매방법 다양화 모색을


전영환 대표는 농가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 및 보호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번 위기를 모든 농가들이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며 “최소한 농가들이 가족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폐업 지원금을 지원하고 국산 말에 대한 보호정책, 경마산업 내 생산농가 보호책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또 “무엇보다 생산농가들이 바라는 것은 농가들이 생산한 경주마를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이라며 “국산 말에 대한 고정적 경마비율을 유지하고 혼합경주를 줄여 외산마와 국산마를 구분해 경주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전 대표는 “온라인 마권발매를 제한하는 국가는 우리나라 뿐”이라며 “마권 발매 방법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고민해 장외 발매소 대신 소규모 발권 형태 또는 펍 등에서 마권을 판매해 하나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주=강재남 기자 kangj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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