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식량주권보다 공산품 수출이 먼저고
전근대적 소규모 가족농은 퇴출시켜야
돈도 안되는 농지 보전은 ‘어리석은 일’

내 이름은 드러버, 34살, 남아시아의 농업국가 대략난감국(大略難堪國)에서 온 유학생이다. 한국에서 서열 1위인 새벌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내 학위논문의 제목은 “한국 농촌마을의 고령화가 재벌 승계전략에 끼친 영향에 관한 빅데이터 계량 분석 연구”다. 그 어렵다는 한국어, 한국사, 한국 농업 등에 관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공부했다.

선진 농정의 모범으로 꼽히는 한국에서, 그것도 새벌대학교 농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새벌대학교 출신이라면 대략난감국 최고의 농업정책연구기관인 ‘난감농정연구원’의 연구원이나 ‘난감국립대학 농과대학’의 교수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다.

고향에서 20만 평 정도의 논과 3만 평의 과수원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부모님은 요즘에 신바람이 나셨다. 6년 전에 대략난감국 정부는 한국을 벤치마킹한다면서 과감하게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덕에 부모님은 한국에 쌀을 수출하는 판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재작년부터는 GM농산물 재배와 유통이 허용되어, 부모님께서는 GM벼를 재배하기 시작하셨다. 생산성도 높아졌고 돈도 더 많이 버신다.

처음에 어머님은 GM작물이 환경이나 인체에 해가 되는 것 아니냐며 재배를 꺼리기도 하셨다. 그러나 대략난감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GM작물의 우수성과 안전성을 홍보하였고, 교육부 장관도 나서서 GM농산물도 학교에 공급될 수 있게 정책을 마련했다. 그래서 부모님도 안심하고 GM벼를 재배하기 시작하셨다.

대략난감국에서는 ‘제1차 국토뉴딜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 일환으로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한국의 농촌개발정책을 본받아 전국 농촌 마을 가운데 3,000개를 뽑아서 건물을 짓는 ‘난감농촌마을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중이다. 그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 정부로부터 약 5년 동안 500억 퉁을 보조금으로 받는다. 대략난감국 화폐 10퉁이 한화 1원에 해당한다.

이 정책사업은 상향식 주민참여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무식한 농민이나 농촌 주민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 어려우므로 컨설턴트나 지방공무원이나 대학교수의 지도를 받아 일을 하게 했다. 이것은 한국의 지혜로운 사업추진 방식을 본뜬 것이다. 주민들은 무식하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일해야 효율적이라는 것을 한국 정부에서 배운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 농촌에서는 우리의 옛날 방식을 연상시키는 ‘마을만들기’ 또는 ‘사회적 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큰 건물을 짓자는 것도 아니고, 민주적으로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주민이 협동해서 농촌을 가꾸어 나가겠다는 것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글로벌 시대에 ‘로컬푸드’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도 일부 있는데, 한국 정부가 최근에 로컬푸드 정책을 채택한 것은 아쉽다. 하기사, 선진국 농정에서도 옥의 티는 있는 법이니... 우리 대략난감국에서는 그런 방식은 20년 전에 폐기처분한 바 있다.

한국 농정에서 배울 점은, 무엇보다도 농산물 유통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다. 아직도 시골마다 4일장이 많은 고국의 농정 책임자들은 빨리 한국에 와서 배워야 한다. 한국에서는 대형마트들이 유통기능을 한다. 소비자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양의 농산물을 신용카드로 편하게 구매할 수 있다. 선진국 농정은 소비자의 편리함을 먼저 배려한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면, 규격을 갖추지 못한 농산물을 찔끔찔끔 아르바이트 식으로 생산하는 소농들을 정리해야 한다. 고국에는 나이만 많은 전근대적 소규모 가족농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빨리 퇴출시켜야 한다. 어렵겠지만, 이 문제도 한국에서 교훈을 얻어 해결할 수 있다. 스마트팜 같은 자본집약적인 영농이나 대규모 전업농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농업 분야로 재취업시키는 강력한 농업구조개선 정책을 고국의 농정당국에 건의할 생각이다.

한국에서 정말로 배워야 할 점은 국민들이 참으로 국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이다. 농업생산 규모가 작은 한국은 공산품 수출로 경제적 활로를 뚫은 나라다. 식량자급률이 30%에도 한참 못 미치지만, 자유무역으로 식량안보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해 온 선진통상국가다. 물론, 일부 국수주의자들이 식량주권 운운하면서 비현실적인 주장을 일삼지만, 정부나 학계나 일반 국민 다수는 글로벌 시대에 잘 대응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근래에 한국에서는 에너지 정책 혁신을 위해 어차피 돈도 안 되는 논농사 때문에 농지를 보전하느니, 태양광발전을 하는 게 더 낫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서 농지에다가 발전 설비를 갖추게 규제를 완화하려는 법률 발의안도 제출되었다. 그런 법안을 준비하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심원한 안목을 지녔다. 누군가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농업생산 자체를 환경적인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한국의 정책당국과 주류 학자들은 그런 고리타분한 발상에 휘둘리지 않는다. 첨단 디지털 기술로 기후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탁월한 식견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유학 오기 한참 전 2000년대 초반에 한국에 이웃한 듕국이 ‘한국산 휴대폰을 수입할 테니 듕국산 마늘을 한국에 수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 때, 일부 마늘 재배 농가들이 반대한 적이 있다. 물론, 현명하게도, 포퓰리즘을 거부하고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국익을 위해 과감하게 중국산 농산물 수입 개방을 허용한 훌륭한 정치인들이 있었기에 반대를 누를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의 전문 분야만을 따지는 협소한 논리로 보면 농산물 수입 개방을 반대했어야 하는데도, 국익을 먼저 생각하기에 지혜롭게 침묵을 지킨 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의 역할도 큰 힘을 발휘했다.

고국으로 돌아가서 혹시 대학에 자리를 얻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국익을 우선 생각하는 한국 지식인들의 바른 태도와 품격을 먼저 배우라고 가르쳐야겠다.
 

* 이 글은 “김영민, ‘킨데쿤타’, <자색이 붉은 색을 빼앗다>, 동녘, 2001”을 흉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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