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공장식 축산’ 오명 속 양적성장 몰입
수입산과 품질 차이 없이 비싸기만
품질·맛 위주의 등급평가 서둘러야

국내 1인당 육류소비량은 1980년도에 약 11㎏ 수준에서 현재는 50㎏ 이상 수준에 이른다. 이는 돼지고기와 소고기, 닭고기만을 집계한 것으로 모든 축종을 합하면 거의 60kg에 육박한다. 이 같은 수치는 중국·일본보다 높고 캐나다의 육류 소비량에 근접한다. 뿐만 아니라 축산업 생산액은 1990년대 이후 연평균 6.7%씩 증가해 지금은 전체 농업 생산액의 약 4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축산업은 고품질의 영양소 공급원으로써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외식산업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끌어 왔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축산물은 생활습관병의 주요 원인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필자가 판단하기엔 축산업계의 이윤에 비해 책임져야 하는 사회적 책무의 무게가 다른 농업분야에 비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식육 도·소매업 종사자만 약 300만명에 이른다. 여기에 농장과 사료 및 약품회사, 식육관련 식당 등 관련 종사자를 더하면 500만명 이상에 이르는 거대한 산업이다. 축산업이 흔들리면 전체 국민의 10% 가량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산업에 대한 우리사회의 비판에는 관대하고 규모 면에서 상대적인 비교가 안 되는 작은 작물들은 우리 사회로부터 보호받는 경향이 강하다. 축산업계가 항상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축산업계 또한 우리 사회가 변화하면서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경제적·윤리적 책무를 게을리 한 책임도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경제 주체가 성장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축산업은 양적 성장을 지양하고 질적 성장을 실천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식육자급률 50%대가 오래전에 붕괴됐고 수입육의 시장 지배력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것은 국내 축산업의 경쟁력 하락뿐만 아니라 육류 소비량의 증가에 따른 수입량 증가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전 국토에서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육농가의 증가는 매우 제한적인 반면에 축산물의 생산량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다. 농가당 사육 두수가 늘어나는 것은 농가 소득 증대 측면과 규모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식육의 고품질화 측면에서도 실익을 따져볼 문제이다. 최근 유행처럼 번진 다산종 모돈의 입식이 국내산 돈육의 품질저하로 이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축산업이 양적 성장에만 몰입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더 큰 문제는 수입육의 품질도 예전 같지 않게 한국인의 기호에 맞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독일산 냉동 삼겹살을 대량으로 구매해 실험 후 남은 물량을 지인들에게 선물한 바 있는데 지인들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게 상당히 좋았다. 수입 냉동삼겹살과 국내산은 수배 이상 가격 차이가 있음에도 품질의 차이는 가격만큼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로 인해 필자는 다시 한 번 국내 양돈업의 위기를 느끼는 계기가 됐다. 수 십 년간 외쳐왔던 돈육의 품질 향상은 제자리걸음인데 반해 수입육의 품질 향상은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러므로 돈육의 품질이 현재 수준으로 계속 유지되면 머지않은 장래에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양돈산업은 삼겹살과 목살의 품질을 극대화 시키는 사육방법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우고기도 마찬가지다. 일본 고베산 와규의 경우 한우보다 마블링이 훨씬 좋고 부드럽다. 그러나 조리 후 전체적인 풍미는 한우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일본 와규의 마블링이 월등히 좋지만 한우고기가 풍미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것은 마블링이 소고기 품질의 절대 기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우도 마블링 개선 방식의 사육방법 뿐만 아니라 풍미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는 사육 방법의 개선이 요구된다. 또 유통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품질 또는 맛 위주의 축산물 등급평가 기준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생산자들에게 품질 향상에 나서라 하는 것은 실효성이 크지 않다. 정부가 나서서 체계적인 기준을 만들고 유통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생산자들이 따라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제 축산업계는 고품질 축산물 생산으로 이윤을 극대화 시키는 방식으로 전환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사육두수의 증가는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으로 정부와 축산업계 모두 이러한 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개선을 서둘러 주길 희망한다. 또한 동물복지 축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요구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며, 가축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은 결국 양적 성장 보다 질적 성장을 통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축산업의 질적 성장은 고품질의 축산물 생산뿐만 아니라 동물복지 축산의 완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해석돼야 하며, 이것이 우리 사회가 원하는 미래 축산업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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