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연안을 살펴보기 위한 노정

[한국농어민신문]

이홍훈 가옥. 1597년 6월 4일 합천에 도착하여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 장군은 7월 18일 칠천량해전 패전 소식을 접하고, 남해안 연안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남해 노량으로 향한다. 이홍훈 가옥은 남해 노량에 들렀던 장군이 다시 하동 옥종으로 되돌아 와서 3일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이 건물은 옛 집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는 두 개의 노정(路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동선은 선조 임금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의금부의 옥에 투옥되었던 장군이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의 백의종군을 명받고, 4월 1일 의금부의 옥에서 풀려나 경남 합천(율곡면) 도원수 진영으로 가는 길이다. 두 번째 동선은 6월 4일 합천에 도착하여 백의종군에 임하고 있던 장군이 칠천량해전 패전 소식을 접하고, 남해안 연안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하여 7월 18일 합천을 출발하여 남해 노량을 둘러본 후, 진주 수곡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두 번째 노정은 백의종군하기 위해 합천으로 갔던 길을 되돌아와 하동 옥종에 이른 뒤, 사천 곤명·곤양~하동 진교를 거쳐 남해 노량에 들렀다가, 다시 옥종-수곡으로 되돌아오는 동선으로 이어진다. 장군은 진주 수곡에 있는 손경례家에서 머물던 중, 8월 3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교지를 받으며 백의종군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백의종군하러 가는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는 지난 호에 소개하였던 ‘단성교’에서 그 노정을 마무리하였다. 단성에서는 단계-삼가를 거쳐 합천(당시 초계)으로 향하게 된다. 단성교를 지나면 백의종군로는 경호강변 적벽산로(중촌갈전길)를 거쳐 창안마을로 이어진다. 그런데 현재 이 길은 공사 중이라 적벽산을 올라 창안마을로 향하여야 한다. 합천에 도착한 이튿날(6월 5일) 이어해라는 사람의 집에 거처를 마련하고 백의종군에 임하고 있던 장군은 7월 18일, 이틀 전에 있었던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이 대패하며 궤멸상태에 이르렀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때 장군은 도원수와 의논 끝에 남해안연안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하여 송대립 등 9명의 군관과 함께 남해 노량으로 향한다.

노량에서 이틀을 머물며 거제 현령 안위, 경상우수사 배설 등을 만나 전황을 전해들은 장군은 곤양으로 돌아와 하룻밤을 머문다. 장군이 머물렀던 곤양 객사 터에는 ‘응취루’라는 누각이 복원되어 있다. 다음날 노량에서 작성한 공문을 송대립을 시켜 먼저 원수부로 보낸 장군은 자신도 옥종으로의 귀로에 오르는데, 이때 십오리원(곤명면 봉계리 원전마을)에서 배흥립의 부인을 만났다고 한다. 칠천량해전에서 크게 부상당한 배흥립을 데려가 함께 머물려던 장군의 계획이 미리 전해진 듯하다. 흥양현감을 지낸 배흥립은 장군과 함께 여러 해전을 함께 치렀던 인물로 장군과는 각별한 사이였는데, 이 내용에서도 그런 남다른 인간관계를 느낄 수가 있다.

남해안 연안을 둘러보고 오는 노정 대부분은 백의종군하러 가던 길을 되돌아오거나, 사천을 거쳐 남해바다를 다녀오는 길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지리산권 백의종군로’라 하여 길게 동선을 이룰 만한 길은 없다. 하지만 이 구간에는 백의종군 전 노정의 끝을 맺는 중요한 장소, 즉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 임명교지를 받는 손경례 가옥이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있는 이 집 인근에는 병사들을 훈련시키던 ‘진배미’가 있다. 그리고 덕천강 건너편 문암교 옆에는 강정(江亭.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이 있다. 이곳은 남해안을 둘러보고 온 장군이 도원수 종사관, 진주목사 등과 더불어 회의를 하던 곳이다. 그리고 옥종면 청룡리에는 장군이 머물렀던 이희만家, 이홍훈家 등이 있는데, 3일 동안 머물렀던 이홍훈 가옥은 옛터에 복원조성 되어 있다.

이번 호 백의종군로는 이홍훈 가옥을 출발하여 문암 강정-진배미유지-손경례 가옥을 순례하듯 둘러보는 코스로 이어보았다. 거리는 약 7km 남짓 된다. 이로서 전북 남원에서부터 경남 산청(단성) 단성교에 이르는 노정과, 단성-옥종-수곡으로 이어지는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답사를 마무리한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며 하동-구례-곡성을 거쳐 조선수군 재건의 대장정에 올랐던 장군은 40여일 후에 벌어진 명량해전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며 정유재란의 전개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올해 봄 희망을 이야기하며 걷던 섬진강변의 마을들이 이번 수해로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뭐라 위로의 인사도 드릴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먹먹하다. 부디 모든 분들이 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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