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이미 다수 FTA서 농업 희생
동시다발 관세철폐로 ‘본격화’  
성장 잠재력 큰 16개국 참여  
RCEP 발효 땐 더 큰 피해 불러
통합 원산지 기준 시행으로
식품 가공재료 수입 불지필 듯

아세안과 공산품 무역 흑자도
농산물 시장개방의 압박 요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정식 서명을 앞두고 있다. 세계 최대 메가 FTA(자유무역협정)로 불리는 만큼 RCEP이 발효되면 한국농업에 메가급 피해를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신남방정책에 따라 아시아지역 FTA를 확대하는 가운데 RCEP에 의해 통합 원산지 기준이 설정되면 식품산업의 수입산 중간재 비중이 더욱 높아지고 국내산 농산물 원재료 사용이  더욱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지역 FTA 추진 현황=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1월 4일 인도를 제외하고 15개국이 협정문 타결을 선언했고, 올해 협정문에 정식 서명하기로 참여국간 합의도 있었다. 

세계 경제에서 RCEP의 비중이 매우 높다. RCEP 참여국 전체 경제규모를 보면 인구 36억명으로 세계인구의 48%에 달하며, GDP 27조4000억달러로 전세계의 32%, 교역 9조6000억달러 등 거대한 경제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최빈개도국에서 선진국까지 다양한 경제발전 수준을 가진 16개국이 참여하고 성장 잠재력도 풍부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RCEP 참여국들은 코로나19 팬데믹에도 화상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6월 23일 RCEP 화상 장관회의에 유명희 통섭교섭본부장과 지난 7월 9일 RCEP 제31차 공식협상 화상회의에 여한구 통상교섭실장이 각각 참석해 참여국과 잔여 쟁점을 논의하며 연내 서명을 강조한 바 있다.

RCEP과 동시에 신남방정책에 따른 동아시아지역 국가와 FTA 확대도 전개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와 FTA를 체결한 국가는 아세안, 인도, 베트남, 중국 등이고, 지난 2019년 11월 타결된 인도네시아 CEPA는 발효를 앞두고 있으며 협상 중인 국가는 캄보디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이다.

▲농업 시장개방도 더 높아질 듯=이미 다수의 FTA에서 농업이 희생양이었다. 올해 출범을 앞두고 있는 RCEP과 아시아 지역의 FTA는 농업부문에 기존 FTA보다 더 큰 피해를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럼에도 2004년 칠레를 시작으로 미국, 중국 등 16건(56개국)의 FTA가 발효되면서 FTA에 대한 농업계의 피로도가 쌓이고 있는 상황.

하지만 통상전문가들은 FTA에 따른 농업부문의 피해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금까지 발효된 FTA에서 양허관세 대상 농산물의 동시다발적 관세철폐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RCEP과 아시아지역 FTA 확대로 열대과일을 앞세운 신선농산물 수입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아세안과 무역에서 큰 흑자를 내고 있는 것도 농산물 시장개방을 압박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는 FTA 체결국과 199억달러 무역흑자를 냈으며, 이 중에서 아세안에서 153억달러에 달했다. 기계류, 화학공업, 철강금속, 전자전기 등이 주 수출품목으로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농업부문 통상 전문가인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각 국가별 교역에서 상품수지에 대한 흑자 또는 적자 수치를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며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아세안지역에서 공산품으로 흑자를 내고 있어 FTA협상에서 농산물을 타깃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RCEP의 상품양허가 협상 초반기 때보다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농산물 개방도 또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19년 11월 19일 발표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잠정 타결:의미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RCEP 협정문은 상품, 서비스, 투자 등 20개 쳅터로 구성됐다”며 “상품양허는 FTA 기체결국간 90% 이상의 자유화 수준을 목표로 진행한 것으로 보이며, 미체결국간 및 후발개도국과는 이보다 낮은 수준의 양허안에 합의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통합 원산지기준이 초래하는 파장=특히 RCEP 협정에서 적용키로 한 통합 원산지 기준이 시행되면 식품가공 재료에 대한 수입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RCEP 참여국간 교역에서 역내 생산 원재료로 제조된 상품에 관세특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 사용이 늘어 우리나라 농업과 식품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GVC: Gloval Value chain)’ 후방참여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FTA가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농업과 식품산업 GVC 후방참여도가 상승해 왔으며, 이는 농산물과 식품 수출액 중에서 수입산 중간재 비중이 커졌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부가가치 기준 무역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농업과 식품산업 GVC 후방 참여도는 RCEP 참여국 중에서 세손가락에 꼽힌다. 

문한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RCEP의 농산물 개방도는 기존 FTA의 양허보다 소폭 높아진 것으로 전해 듣고 있다”며 “또한 RCEP 참여국이면서 우리나라와 FTA가 발효된 중국, 아세안 국가와 농산물 양허수준이 차이가 있는 것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