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김경욱 기자]

중도매인 간 형성되고 있는 암묵적인 카르텔이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 분산 역할을 더 확대하려는 중도매인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가락시장 경매모습으로 중도매인 카르텔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품위 좋아도 가격 낮아”
출하농가 애꿎은 피해 답답
좋은 물건 찾기보다
‘출하상품 나눠 갖기’ 의혹

채소부류 상인회 만연
경매에 새로 참여하려면
일명 ‘마당세’ 내야만 가능

물량 분산 등 제한적
정산기구 도입 되더라도
실질적 경쟁 촉발 의문

농산물 도매시장의 ‘중도매인 카르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도매시장 종사자 간 경쟁 촉진을 위해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대금 거래를 위한 정산기구 설립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정작 중도매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카르텔이 깨지지 않으면 실질적 경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카르텔은 분산 주체로서의 역할을 더 충실히 수행하려는 중도매인들에게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프리카 농가의 전화
강원도 철원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이 최근 신문사로 연락을 해 왔다. 가락시장에 파프리카를 출하하고 있는데 가격이 형편없이 나온다며 취재를 해달라는 부탁 전화다. 이 농민 말은 분명 주변 농가보다 더 품위가 좋은 물건을 보내는데 다른 청과법인(도매시장법인)으로 낸 이들보다 경매 가격을 더 낮게 받는다는 것이다. 

“가격이 더 잘 나오는 타 청과법인으로도 몇 번 내봤지만, 기존 거래선과 신뢰를 쌓아간다는 생각에 주 출하처를 바꾸지 않고 있다”는 그는 “문제가 중도매인에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물건을 사려고 경쟁을 해야 하는데 출하한 물건을 자기들끼리 다 찢어서 사간다는 생각”이라며 “담합을 했는지 차이가 나봤자 500원”이라고 덧붙였다. 

도매시장에서 경매가격이 형성되는 것은 해당일의 반입 물량과 소비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지만 이 농가의 하소연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중도매인이 복수의 도매시장법인과 거래할 수 있도록 1994년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지만, 거래금액 담보 문제로 복수 거래는 미미하다. 이렇다 보니 중도매인 간 경쟁이 활발하지 않고 중도매인 간 담합 얘기가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이에 정산기구를 설립, 중도매인이 도매시장법인에 담보로 얽힌 구조를 풀어야 실질적 경쟁이 일어난다는 주장이 10여년 전 부터 나왔으며, 최근 이러한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 중도매인 카르텔
하지만 정산기구가 설립돼도 중도매인들 사이에 형성된 카르텔을 깨지 않으면 실질적 경쟁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락시장 내 각 도매시장법인 별 중도매인들은 그들끼리 상인회나 상우회, 품목별 협의회 같은 친목모임을 구성해 보증금, 공탁금 명목으로 회비를 받으며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유통인 전언에 따르면 회비는 수백만원에 이르며, 이 상인회에 들어가지 않은 중도매인이나 매매참가인은 경매에 참여할 수 없도록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도매시장법인 내에 같은 품목에서도 상인회가 나눠져 있어 타 매장으로의 복수 거래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형성된 카르텔은 가락시장에 들어온 물량을 서로 조절해 가며 구매하고 결국 독과점 형태로 농산물이 거래돼 가격을 왜곡 시키는 빌미가 되고 있다. 

가락시장 유통인 A씨는 “흔히 상인들이 걷는 돈을 경매에 참여하기 위한 ‘마당세’라고 부른다”며 “공영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마치 중도매인 앞마당인 것처럼 자릿세를 받으며 다른 거래자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통인 B씨는 “과일은 거의 없는 반면 채소부류에 상인회가 만연해 있다”며 “구색 맞추기로 다른 품목을 사려면 그 품목 상인회에 또 가입해야 한다. 연말에 법인 관계자들이 해당 모임에 눈도장을 찍기 위하 참석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중도매인 단체 관계자는 “해당 품목 중도매인들이 법인들과 노력해 상권을 만들어 놨는데 다른 중도매인이 들어와 사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것”이라며 “요즘은 몇 몇을 제외하고는 상인회가 많이 약해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생산자·소비자는 물론 중도매인도 피해
중도매인 카르텔은 생산자와 소비자, 중도매인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앞선 파프리카 농가처럼 생산자는 제대로 된 가격을 못 받는 반면, 소비자는 그 가격으로 구매하지 못한다는 것. 가락시장 유통인 A씨는 “어떤 때는 충분한 물량이 없으니 날짜 별로 순서를 돌아가면서 구매하고, 물가가 올라 풀리는 비축물량 같은 경우는 돌아가면서 싸게 구매해 소비처에는 비싸게 팔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카르텔은 도매시장에서 더 활발하게 영업하려는 중도매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더 좋은 물건을 구매해 분산처를 확대해 나가려고 해도 구매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품목 다양화도 힘들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도매시장 경쟁 촉진을 위해 얘기되는 정산기구 도입도 사실상 이러한 중도매인 카르텔이 해소돼야 실질적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지적. 

가락시장을 관리·감독하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사적 모임에 대해선 어떻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발을 빼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한 도매시장 전문가는 “중도매인들이 자기들 상인회 외 사람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경쟁 회피적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선언적으로라도 법인과 중도매인들이 정산기구 도입을 통해 서로 경쟁해 나가겠다고 한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러한 카르텔이 차츰 사라질 것이다. 서울시공사도 명백한 농안법 위반이기에 관리 감독해 나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관태·김경욱 기자 kimkt@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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