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한국농어민신문]

잘 설계하면 작은 예산으로 큰 효과
준비되지 않은 보조사업자엔 ‘독’
자치력-행정지원 사이 균형점 찾아야

농업과 농촌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자생력이 떨어지니 보완책으로 행정 보조사업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아는 놈끼리 다 해 먹는다”, “미리 업체와 짬짜미하면 자부담도 필요 없다”, “귀농귀촌인들이 보조사업 다 가져간다” 등 다양한 말이 돌아다닌다. 대개는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말이고, 근거가 희박하거나 일부 사례에 국한된 말이다. 보조사업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오해에서 비롯한 말도 많다. 하지만 농촌에 누적되어온 비리를 반영하는 현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행정에서 임기제 공무원으로 8년, 중간지원조직에서 8년을 활동하다 보니 행정과 민간의 입장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그래서 ‘통역’하는 역할도 자주 담당한다. 하지만 보조사업은 행정과 민간이 직접 부닥치는 가장 첨예한 영역이라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 이미지 비판이 많다. 행정에서조차 보조사업의 전체 틀을 이해하고, 해석까지 딱 부러지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무엇보다 보조사업과 민간위탁을 구분할 줄 알고, 나아가 용역이나 사용수익허가, 대행 등과 구분하는 공무원을 만나기가 정말 어렵다.

농정 분야에서는 보조사업만 반복적으로 해오고 있다.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이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정의가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기에 그 경계가 모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을 잘 못하면 행정이 할 역할(공공사무)을 보조사업으로 둔갑시켜 민간에 ‘갑질한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농촌사회 발전을 위해 모여 좋은 일 하겠다는 민간단체에 지원하는 사업이 보조사업인지 민간위탁인지는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4년마다 열리는 지방자치 선거가 보조사업을 왜곡시키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단순히 행정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지침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꼬리표’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부정수급자를 가려내기 위해 꼼꼼한 체크 시스템이 작동되고, 이 때문에 선(善)한 보조사업 신청자들이 덩달아 고생해야 하고, 불필요한 서류 제출도 많아진다.

공무원은 복잡한 행정 절차를 밟으면서 이런저런 감사(감사원, 도청, 의회 등)까지 염두에 둬야 하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이러다보니 보조사업의 원래 취지는 차츰차츰 퇴색되고, 민원이나 갈등이 없도록 집행 절차에만 집중하게 된다. 민간에서 자주 비판하듯 보조사업이 그렇게 허술한 것도 아니고, 복잡한 절차나 서류가 많아진 것도 행정 공무원이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보조사업을 둘러싼 제도개선은 행정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민간도 적극 참여하면서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다. 행정과 민간의 관계에서 보자면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문화적 전통 속에서 다양한 문제가 극복될 수 있다. 보조사업이야 말로 민과 관이 직접 만나는 영역이고, 그래서 협치의 관점이 가장 필요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농촌의 초고령화 상황까지 고려하여 접근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몇 가지 개선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행정 사무 중에서 실효성이 떨어진 사업은 일몰(日沒)사업으로 과감하게 정리하면서 새로운 보조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선거를 거칠수록 보조사업 가짓수가 계속 늘어나니 업무량도 늘어나고 정책의 전문성도 높아지기 어렵다.

둘째, 보조사업 목록을 정리하여 자료집도 만들고 읍면을 순회하며 정기적으로 설명회도 개최해야 한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청각 자료도 만들고, 전화 상담창구도 개설해야 한다. 충청남도 감사위원회에서는 “만화로 보는 지방보조사업 안내서”(2020)를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최근에는 중간지원조직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동영상 자료도 많이 만들어 온라인상에 제공하고 있다.

셋째, 매년 말에 성과발표회를 개최하고 정책토론회도 수시로 개최하여 평가하고 보완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사업지침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정은 없다. 지역실정에 맞게끔 보완하는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넷째, 보조사업의 집행절차에서 각 단계마다 매우 세련된 기법이 동원되어야 정책 취지가 살아날 수 있다. 그래서 중간지원조직이 적절하게 등장하여 통역과 해석, 상호학습을 반복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사업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섯째, 각 보조사업 영역의 민간 당사자들이 모인 협의체도 필요하고, 또 읍면 단위의 주민자치회도 적절한 역할을 해야 한다. 민간도 공동학습을 통해 보조사업의 성격과 의미, 절차 등을 이해하고 당사자로서 개선방향을 찾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행정만이 사업지침을 작성하고 해석한다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사실 보조사업은 절차와 방식을 잘 설계하면 행정도 민간도 서로 만족하고 작은 예산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마을자치, 주민자치의 힘과 결합할 때 큰 힘을 발휘한다. 준비되지 않은 개인이나 마을에 보조사업이 지원되어 오히려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농어민(주민) 스스로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거나 무임승차하려는 보조사업자에게는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치력과 행정 지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을 때 보조사업도 약(藥)이 된다. 그래서 보조사업은 사업내용이나 액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절차와 방식, 제도적 환경이 더 중요한 셈이다. 코로나19 상황을 계기로 보조사업의 큰 혁신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