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새롭게 합류하는 분들에겐 귀가 닳도록 말한다. 최소 1~2년은 듣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며 그럼에도 불편함이 생기면 한발 물러서 기다리라고 한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기에 자신만만해 하지만 막상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도시민들이 각자의 이상과 낭만을 품고 여민동락에 찾아왔다. 모두 자유로운 영혼에 개성도 분명하고 고집도 세다. 대개 자신감도 넘쳐 농촌과 공동체에 잘 적응 할 것이라 말한다. 이런 깡촌에 그 정도 마음 없이 어떻게 제 발로 찾아올까 싶어 일단 환영하지만 농촌의 쉽지 않은 삶도 빠짐없이 알려준다. 그럴때마다 많은 이들이 농업, 농촌의 냉혹한 현실에 발걸음을 돌리지만 그럼에도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분들은 우리의 여건만 맞으면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다보니 여민동락이라는 울타리에 서로 기대어 사는 식구들이 15명에서 20명을 매년 유지한다. 처음 6명으로 시작했으니 없는 살림에 나름 대식구를 이룬 것이다. 물론 스쳐간 인연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 일면식도 없던 도시 사람들이 각자의 역사를 품고 농촌에서 뭔가 해보겠다고 모였으니 관계에서 오는 기쁨의 수다만큼이나 반목의 일상도 다반사다. 이런 것이 협동과 연대의 운영원리로 작동되는 공동체에선 당연한 보편적 삶의 과정임을 받아들이는 것도 꽤나 긴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여민동락의 문을 두드리는 분들 뿐만 아니라 수시로 공동체 식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중에 경청과 기다림은 매번 빼먹지 않고 이야기 하는 주제다, 특히 새롭게 합류하는 분들에겐 귀가 닳도록 말한다. 최소 1~2년은 듣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며 그럼에도 불편함이 생기면 한발 물러서 기다리라고 한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기에 자신만만해 하지만 막상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초기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한들 그것도 잘해야 본전이다. 농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결국 공동체, 지역주민과 마을의 역사와 현재를 잘 이해하려면 끊임없이 잘 들어야 한다. 듣고, 물어보고, 가능하다면 기록 하는 것도 좋다. 그들이 이루어 놓은 역사를 하루 아침에 이해할리 만무하고 전혀 다른 문화와 환경속에서 살아온 이들끼리 만들어가는 관계와 소통은 늘 불안과 충돌이 상존한다. 그러다보니 어쩔땐 사소한 것 하나 이해하고 합의 하는 것조차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결국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말고 별다른 방법이 없다. 경청이 다소곳하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 태도만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다. 머리로는 딴 생각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상대에 대한 이해이자 배려이며 존경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정보를 얻는 중요한 학습장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 되면 저절로 관계의 깊이는 깊어지고 넓어지며 나도 모르게 서로가 가까워지고 존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기다림이다. 처음 만난 지역주민이든, 협동으로 뭔가를 함께 추진하는 식구든 매번 불편한 일이 자주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눈을 마주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만 간극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대화 자체를 시도할 수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학교 살리기를 시작했을 때 지역에서 별의별 소리가 다 있었다. 그 중에 학교 살리기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기에 내가 눈엣가시였던 주민이 어느 날 아주 험악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목소리를 높이며 작은 학교 살리기의 폐해와 한계를 이야기 할 때 그 당황스러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내 생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었으나 그럼에도 결국 그 분의 말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물러서기로 했고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작은 학교 살리기를 추진하며 후일을 도모했다. 결국 4년 뒤 학교는 폐교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학생 수는 늘어났다. 그리고 작은 학교 살리기를 반대했던 그 분은 학교에 장학금을 주는 지역주민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공동체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자기 주장이 강하고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매번 생각의 다름과 욕심으로 끊임없이 크고 작은 갈등과 분란이 있었지만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수많은 이론서와 앞서 간 스승들의 이야기도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결국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기다림만이 사람을 얻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이 다르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잠시 물러서고 기다리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가랑비에 옷 젖듯 관계의 변화를 시도하는 일상적 노력만이 결국 사람을 얻는 과정이었다. 활동을 유보하고 돈을 못 벌지언정 사람마저 잃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20, 30대 젊은이들이 새롭게 합류했다. 그렇게 당부했건만 새롭게 합류한 젊은이들 간에 삶의 방식과 관계 맺기의 다름으로 갈등이 생겼다. 경청과 기다림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으나 어떻게 실천하는지 경험이 조금 부족했을 것이다. 먼저 경험한 선배들이야 늘상 있는 일이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여러 번 다독거리지만 결국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고 그렇게 떠났다. 우리도 그랬던 것처럼 선배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결국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실천을 하느냐에 달렸다. 경청과 기다림으로 얻는 삶의 지혜는 우리들도 죽을 때까지 성찰과 훈련으로 체득해야 할 부분이다. 농촌에서, 특히 공동체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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