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진천 강원도신농정기획단 연구원

농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7월 14일 발표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1930년대 세계경제대공황은 자본주의를 마비상태에 빠뜨렸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 자본주의를 회생시키고 혼란한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서, 과감한 자본주의 수정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바로 뉴딜 정책입니다. 사회수업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나시지요?

미국판 뉴딜은 ‘농업조정법’으로 개혁과 구조조정을 시도했습니다. 생산과잉을 조절해서 농산물가격 하락을 막고, 대대적 원조로 농민을 구제하고자 했습니다. 뉴딜의 다른 이름이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입니다. 농업과 농민을 잊지 않으려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딜(deal)의 기본적인 뜻은 배분입니다. 화투패를 나눠주는 것을 떠올리시면 쉽겠습니다. 그렇다면 뉴딜은 혁신적인 대응으로 새 판을 짠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딜러로 나섰습니다. 과연 ‘한국판 뉴딜’은 농업에 어떤 패를 나눠줄지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종합계획을 순서대로 살펴볼까요?

먼저 정책배경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극심해진 경제침체를 극복하고 경제구조를 대전환한다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책비전도 좋군요. 추격이 아닌 선도하는 경제로, 탄소의존경제에서 저탄소경제로, 불평등사회에서 포용사회로.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자하고 일자리 190만개를 창출한다는 데, 사실 너무 숫자가 커서 감이 잡히지는 않습니다. 일자리 190만개에 농업농촌 일자리는 얼마나 차지하게 될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정책방향을 3가지로 구분했군요. ①디지털뉴딜(경제전반의 디지털혁신과 역동성 촉진·확산) ②그린뉴딜(경제기반의 친환경·저탄소 전환 가속화) ③안전망 강화(사람중심 포용국가 기반). 그렇다면 짐작컨대 그린뉴딜에서 농업정책을 다루고 안전망 강화에서 농민의 삶의 질 문제를 다루게 되지 않을까요? 그린은 농업·농촌의 상징색 아니겠습니까?

그린뉴딜을 살펴볼까요? ㉮도시·공간·생활인프라 녹색전환 ㉯저탄소·분산형 에너지확산 ㉰녹색산업혁 신생태계구축. 어? 조짐이 이상한데요? 농업은 녹색산업 안에 포괄적으로 담았나요? 이런, 그것도 아니군요. 녹색산업 5대 선도분야는 ㉠청정대기 ㉡생물소재 ㉢수열에너지 ㉣미래폐자원 ㉤자원순환입니다.

제가 뭘 놓친 걸까요? 아! 그린뉴딜의 8개 세부과제를 훑어보다가 발견했습니다.[신재생에너지 확산기반구축 및 전환지원] 대목에서 마침내 ‘농촌’을 발견했습니다. 태양광(주민참여형 이익공유사업도입, 농촌·산단 융자지원확대). 이게 뭡니까? 설마 산 깎아내고 농촌마을 파탄내고 있는 그 태양광 말인가요? 그 안에 찔끔 농촌이 언급된 건가요?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직 페이지가 남았으니 인내심을 갖고 더 살펴보겠습니다. 아, 안전망 강화에 [농어촌·취약계층의 디지털접근성 강화] 대목이 있습니다. 도서·벽지 농어촌마을 1,200개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이네요. 통신망 구축은 디지털뉴딜 아닙니까? 그런데 정책 분류는 ‘사람중심’이군요. 시골 구석구석까지 통신망이 더 깔리면 농민에게 좋은 거 아니냐는 뜻인가요?

뒤에 이어지는 ‘한국판 뉴딜 10대 대표과제’에서도 농업·농촌은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월1~2회 열겠다는 다짐으로 종합계획은 끝나버렸습니다. 민주당과 추진본부를 만든다고도 합니다. 그건 알아서들 하시고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은 미국의 뉴딜정책에 버금가는 국가발전전략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90년 전 미국판 뉴딜에도 들어있던 농업·농촌 정책이 한국판 뉴딜에는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농업·농촌의 중요성이 퇴색한 건가요? 아니면 문재인정부의 시대인식과 통찰력의 수준을 보여주는 건가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은 그린뉴딜을 새로운 농업정책 제안으로 착각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저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말입니다. 저탄소·친환경 경제 추진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린뉴딜조차 농업·농촌이 없으니 이 정책은 근본을 완전히 헛짚었습니다.

정의당 농어민위원회의 논평을 인용해 재조합합니다. “농업농촌과 식량주권에 대해 실효적인 계획하나 없는 한국판 그린뉴딜은 성공할 수 없다. 태양광설치지원이나 유통 디지털화사업을 재탕삼탕 우려먹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한 환경친화적인 식량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을 위한 농정개혁의 목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농정분야 그린뉴딜정책이다.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농업판 그린뉴딜정책’을 새롭게 가다듬어 국민 앞에 정중히 발표할 것을 촉구한다.”

결국 농업·농촌이 배제된 한국판 뉴딜 계획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화투판을 상상해보면 농민은 잠시 광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저 외부인이라서 신나게 고를 외치는 남들의 등만 쳐다보는 신세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도 정부도 여당도 기업들도 자신들의 화투판에만 골몰하느라 뒤에 누가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들만의 화투판 녹색 담요를 엎어버리고 싶군요.

한국판 뉴딜은 이렇게 시작되나 봅니다. 일말의 기대를 갖고 중계를 해 드렸으나, 농민 여러분께 또 언짢은 소식만 전해드려 송구스럽습니다. 이번에도 딱히 별 볼일 없었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상 편파중계를 마칩니다. 같이 밭으로나 나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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