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15일 국내 한약재 최대 유통시장인 서울 제기동 약령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이 국내산 한약재를 판매하는 매장에서 당귀, 작약 등을 살펴보고 있다. 김흥진 기자

당귀·지황·천궁·작약 등
다음달 1일부터 제외키로

용도 전환·원산지 세탁 등
불법 유통행위 무방비 우려
한약재 수급 불안 걱정도

당귀 등 국내 주요 약용작물 4개 품목이 수입물품 유통이력관리에서 제외돼 농가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업 주체인 관세청은 불법 유통 적발 실적이 없고, 인력도 감소해 관리 품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해당 품목의 수입·소비량이 늘고 있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이미 4년 전 이력관리 품목에서 제외된 구기자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 한약재 불법 전용, 원산지 둔갑, 수급 불안 등 여러 우려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 6면

관세청은 행정예고를 거쳐 다음 달 1일부터 식품용으로 들어오는 당귀, 지황, 천궁, 작약 등 4개 품목을 수입물품 유통이력관리에서 제외키로 했다. ‘수입물품 유통이력관리’는 유통이력 신고 의무화를 통해 농산물 수입 후 용도전환이나 원산지 세탁 등 불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국내 유통단계에서 불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시 해당 품목을 신속히 추적, 회수·폐기할 수 있다.

약용작물 중에선 2010년 황기, 백삼, 구기자, 당귀가 처음으로 이력관리 품목에 지정됐고, 이어 2011~2013년엔 지황, 천궁, 산수유, 오미자, 작약이 추가됐다. 하지만 2016년 백삼, 구기자, 산수유, 오미자가 유통이력관리에서 빠졌고, 이번에 4개 품목이 추가 제외됐다. 특히 이번에 제외된 당귀, 지황, 천궁, 작약은 국내 5대 약용작물에 포함되는 대표 품목이다. 약용작물 중에선 사실상 유통이력관리가 가능한 품목은 황기만 남게 됐다.

임동욱 관세청 통관기획과 사무관은 “이번에 이력관리에서 제외된 품목은 유통이력관리 전체 품목 중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고, 그동안 수입신고 건수가 적거나 단속에 의한 적발 실적이 없어 관리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단속 실적이 없다 보니 어느 정도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또 올 10월부터 수산물 관리가 해양수산부로 옮겨가면서 관리 인력이 30% 줄어 기존 규모로 이력관리를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외된 품목 중엔 오히려 수입량과 소비량이 동시에 늘어나고 있어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립산림과학원 ‘2020산림·임업전망’에 따르면 4개 품목 중 재배 농가가 가장 많은 당귀의 최근 3년간 수입량은 2017년 356톤, 2018년 395톤, 2019년 497톤(추정)으로 증가세며, 2024년까지 당귀 수입량이 643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함께 산림과학원은 ‘당귀는 한약재로서 일정한 공급량이 필요한 품목으로 국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키도 했다.

특히 한약재가 주 유통되는 한약방에서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돼 있지 않은 상황에 수입산 유통이력관리까지 없어진다면, 식품용으로 수입 후 한약재(의약용품)로 불법 용도 전환은 물론 원산지 세탁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 4년 전 유통이력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구기자의 경우 수입량 증가는 물론 원산지 위반 사례가 횡행, 결국 올해 식약처에서 중국산 구기자 수입기준을 강화했다.

이력관리 제외 소식을 접한 약용작물 생산 농가들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백문기 한국생약협회장은 “약용작물 중에서도 뿌리작물인 당귀, 천궁, 작약 중심으로 원산지 표시 위반 피해가 가장 심하고 지금도 식품용으로 수입된 약용작물이 한약재로 전용돼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 유통이력관리 품목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줄이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최용칠 경북약용작물생산자협회장은 “당귀, 지황, 천궁, 작약은 약용작물 생산농가 생계와 직결된 품목으로 농가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주요 품목이다. 이 품목들이 유통이력관리에서 제외된다면 한약재로 불법 전용됨은 물론 원산지를 속이는 게 더 쉬워져 농가 피해가 가중됨은 물론 한약재수급조절관리위원회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며 “이력추적을 안 하겠다는 건 특정 수입·유통업체 편의를 위해서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내용을 파악한 약용작물 수급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이가인 원예산업과 사무관은 “식품용과 한약재용으로 모두 활용되는 당귀, 지황, 천궁, 작약 등 주요 약용작물이 이력관리에서 제외되는 건 문제가 있다”며 “농가와 함께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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