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은숙 경남도의회 농해양수산위원장

옥은숙 경남도의회 농해양수산위원장

[한국농어민신문]

팔자에 없는 감자 장사를 했다. 하루 만에 완판 됐으니 소질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사연은 이랬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겨우 24%인데, 100%인 쌀을 통계에서 제외하면 다른 곡물들의 자급률은 훨씬 낮다. 그동안 농업과 어업 등 1차 산업의 가치를 외면했던 나라들이 최근 뒤늦게 식량을 확보하기에 바쁘다. 농지가 부족한 국가들은 해외로 눈을 돌려 자국의 식량안보와 식량 무기화에 대비하는가 하면, 스마트기술을 1차 산업에 접목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R&D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식량 자급자족률이 곧 국력인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판국인데, 놀고 있는 농지를 활용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아니, 가장 근본적인 첫 단추일 것이다. 이 단추를 채우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지역별 공공급식 지원센터’ 운영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명칭이 다른데 거제시는 ‘먹거리통합지원센터’라고 이름 지었다. 거제에서도 총사업비 35억원(도비 22억7500만원, 시비 12억2500만원)으로 센터를 건립해 내년부터 시험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농산물의 가장 안정적인 소비시장은 학교급식이다. 초유의 코로나 창궐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또 학교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학교급식 시장은 흔들리지 않는다. 현재 학교급식의 식재료는 학교별로 입찰을 통해 유통업자로부터 공급받는다.

그러다 보니 지역농산물인지 아닌지, 우수농산물인지 아닌지를 세부적으로 알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지역 농축산어업 발전에는 전혀 이바지하지도 못한다.

한편 농민들은 수확기의 출하가격이 불안하다. 소농들은 더 심각한 문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은 겨우 28%에 그치는 반면, 농업 외 소득이 40%에 달한다. 즉 농민들에게 농업이 부업이 되는 서글픈 현실인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들에게 건강한 밥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급식 지원센터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공공급식 지원센터는 농민들과 주문생산 계약을 맺고 농민들은 로컬푸드 인증 기준에 맞는 농산물을 재배하여 건강한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납품함으로써 기본소득에 가까운 수입을 보장받는다. 더구나 기존의 버려진 농지들에도 영농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거제시 둔덕면의 옥동 마을 영농조합에서 올봄에 시험재배로 3000평 밭에 감자를 심었다. 학교급식 식재료의 납품이 목표였다. 첫 소출치고는 풍년이 들었으나 아직 ‘공공급식 지원센터’가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를 걱정하는 사태가 생겼다.

첫 농사부터 낙담할 것을 걱정한 필자는 밴드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호소했다. 그 결과 하루 만에 완판 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매일 감자만 먹고 살 일도 없는 분들이 고맙게도 서로 구매를 해준 덕택에 700상자를 모두 팔았다.

내년부터는 이 감자들이 모두 아이들의 학교급식 반찬으로 소비될 것이기에 매년 감자를 사달라는 민망한 부탁을 드리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팔자에 없는 감자 장사를 했지만,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이웃들이 있다는 행복을 느낀 가슴 벅찬 하루였다.

할머니가 키운 시금치가 손주의 학교급식 시금치나물이 되고 아버지가 잡은 생선이 아들의 학교급식 생선조림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

온 동네의 크고 작은 땅에서 농작물이 자라고 집마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농어촌을 상상한다. 1차 산업은 생명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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