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한국농어민신문]

대도시·수도권 중심 농정 매몰되지 말고
도시인재 유치 차원의 귀농귀촌 접근 등
농촌 스스로 대등한 관계 구축 노력해야


이번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농촌 사회의 여러 애로사항이 보도된다. 대도시 소비지 시장 판매를 겨냥한 대규모 단작(單作) 지대는 외국인 노동자 인력 공급과 농산물 판매 문제가 크다. 학생 중심의 단체관광에 의존하던 체험휴양마을의 타격도 심각하다. 또 학교가 문을 닫아 학교급식용 농산물을 공급하던 농민들의 애로사항도 크다. 이런 문제들의 공통적인 배경에는 대도시 의존증이 숨어 있다. ‘도시와 농촌의 불균등 발전’이라는 사회구조적 논리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 중인 상황에서 대도시 의존증이 얼마나 위험한지 재확인하는 셈이다.

우리가 학교급식에서 출발하여 로컬푸드, 푸드플랜 정책으로 확장되는 것을 지지하는 이유는 지역 내 먹거리 순환경제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취지가 있었다. 식량자급율을 국가 차원만이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식량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망을 지역 단위로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또 소농, 가족농을 보호하고 자치농정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농촌이야말로 고용효과가 크고 현장문제 해결에 능동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이런 방향성이 옳다고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된다.

생각해보면 한국 농촌 지자체는 인구수가 적다해도 3만 명 정도이고, 읍내 인구가 1만 명 이상이며, 농가율은 30~40%에 불과하여 도농통합 성격이 강하다. 농촌 지자체 내에도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부(소비처)가 있는 셈이고, 지역특화 농산물 몇몇 품목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 내에서 소비가 가능하다. 농촌의 부족한 일손도 읍내에서 상당부분 조직할 수 있고 일자리도 제공할 수 있다. 체험휴양마을도 마을교육공동체(마을학교) 활동과 읍내 소비자 그룹과 정기 교류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적절한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농촌 지자체는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하게 지탱할 수 있는 셈이다. 코로나가 아니라도 전쟁이나 지진, 원전 사고 등의 위기 시에도 이런 지역자급(먹거리, 사람, 돈 등)의 순환경제시스템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대도시, 수도권 지향적인 농정에 매몰되어 있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반성이 부족하다. 농업, 농촌의 장점을 잘 모르고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비대면 온라인 판매, 드라이브스루, 스마트팜 같은 기술지향적 대안이 넘쳐난다. 또 디지털뉴딜이니 그린뉴딜이니 이름만 바꾼 새로운 토목공사, 대규모 국비사업을 기대하는 눈치도 보인다. 근본적인 반성은 보이지 않고, 시대 유행에 따라가는 농정에 그치지 않을까 크게 우려된다. 이번 코로나 상황은 어쩌면 한국 농업, 농촌에 던져진 둘도 없는 기회일 수 있는데 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 강조되고 있지만 전통적인 도시-농촌 관점도 바뀌지 않고 있다. 도농교류는 상대방을 대상화하거나(시혜적) 화폐를 매개로 상품화하는(수단적) 전통적인 관점에 갇혀 있다. 서로가 가진 장점을 기반으로 대면적이고 인간적인 교류가 기반이 되어야 지속가능하고 대등한 관계가 된다. 농촌이나 도시나 마을공동체 활동의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그룹이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 진정성을 확인하고 오래갈 수 있다. 도시의 조직화된 소비자 생협이 먹거리를 매개로 농촌 생산자와 대면적이고 대등하게 교류했던 것이 도농교류 운동의 출발점이었다. 시장경제(화폐)를 매개로 교류하는 방식은 언제나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농촌 스스로 도시와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농촌의 장점을 확인하고 자부심과 자존심을 지키며 시장경제, 도시 소비자의 ‘종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당찬 선언을 해야 한다. 그래서 농산물 직거래나 농촌관광에만 머무르지 않고, 귀농귀촌, 공정여행, 농촌유학, 식생활교육, 도시농업 등 모든 정책 영역으로 확대하여 농촌의 장점을 유지하고 존중한다는 전제하에 도시와 교류해야 한다. 귀농귀촌 정책도 인구 늘리기 차원이 아니라 ‘도시민 인재 유치’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스스로 살 곳을 정할 수 있는 ‘선택적 거주의 시대’를 맞이하여 농촌은 도시민에 대해 더욱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농촌 입장에서 보자면 농촌의 장점을 응원하며 자주 방문하는 도시민이 더 필요하고(열 사람의 한 걸음보다 한 사람의 열 걸음), 또 이주해오더라도 지역주민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도시민이 소중하다. 무엇보다 도시로 떠난, 혹은 읍내에 사는 가족이나 친인척의 귀향(歸鄕)이 1순위 정책대상이 되어야 한다. 농촌은 도시민이 살아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하기 힘든 전혀 다른 공동체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의 다수는 읍면 소재지(아파트)에서 일단 멈춰야 하고 마을 안까지 곧바로 들어오는 것은 자제시켜야 한다. 정책도 매우 세심하고 세련되게 설계되어야 하고,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유연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도시와 농촌의 관계 설정은 간단하지 않고, 상생하는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토론과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그만큼 전문성도 필요하다.

대도시 서울과 지방 농촌의 대등한 협력관계 모색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고를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넘어 황망함을 느낀다. 박원순 서울시정(市政)을 통해 처음으로 마을공동체 활동의 정당성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대도시 서울의 비자립적 공간구조를 반성하고 농촌에 대한 지원도 공식화되었다. 25개 자치구와 농촌 지자체를 연계하며 도농상생 관점에서 친환경 학교급식 공급망도 시작되었다. 서울 사는 청년을 농촌으로 보내기 위한 노력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선진 정책들은 줄줄이 곤경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박원순 시장의 존재감은 농촌정책 영역에서도 크고 넓었다. 워낙 많은 일을 해온 분이라 시행착오도 있고 빈틈도 보인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을 내려놓고 이제는 평안한 영면을 기원한다. 남은 자들의 짐이 많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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