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우리 가족은 2009년에 장수로 내려왔다. 처음에 내려왔을 때는 그저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로웠다.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볕, 마당 가득한 풀 내음. 하나부터 열까지 농촌에 사는 것은 기쁨이었다.

한동안은 농촌으로 이사 온 우리를 보기 위해 친척과 친구들이 우리 집을 바삐 찾아와주어 심심한지도 몰랐고, 무엇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해 장수에서 처음 맞는 겨울을 준비하느라 보일러에 석유를 채우면서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의 난방비에 대해 생각을 했다. 온 가족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려면 두 드럼씩 한 달에 한 번은 석유를 넣어야 하나 싶었다. 농사일이 없어 수입도 없는 계절에 수 십 만원 하는 석유를 달마다 넣어야 한다니 이건 큰일이구나 비로소 농촌에 사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한 해 겨울을 나고 보니 해마다 겨울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촌에 살러 온 사람들이 난방 같은 것은 진작 좀 알아보고 왔어야지 하는 타박을 들어도 좋을 만큼 겨울을 겪어보고 나서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난방을 어떻게 해결하나 살펴보았다. 누구는 석유, 누구는 화목, 누구는 연탄보일러를 쓰고 있거나 석유에 다른 보일러를 연결하여 쓰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펠릿 보일러 바람이 불어왔다. 화목 보일러는 나무를 구할 방도가 편해 보이지 않았고, 가지고 와서 잘라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환경운동을 해온 탓에 나무를 쓴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펠릿은 유행으로 그칠 것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온수는 석유보일러로, 난방은 연탄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연탄보일러는 뜨끈한 방을 선물해 주었고, 연탄을 매번 갈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뜻함 앞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음 해에 연탄보일러는 부식이 되어 몇 년 주기마다 바꿔 주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난방을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하는 것이나, 석유-연탄보일러를 겸용하는 것이나 비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해 남편과 나는 앉아서 말했다. 앞으로 선거를 할 때 농촌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을 뽑자! 십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석유보일러로 돌아갔다. 몇 년이 지나 면사무소와 읍사무소가 있는 저 아래 동네에는 이제 도시가스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런데 나처럼 열 두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골마을에는 언감생심이다. 읍과 면의 중심으로 이사 가지 않는 한 도시가스쯤은 포기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장수에 사는 게 익숙해지고 이제 지인과 친척들의 방문도 줄어들기 시작하니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마음을 충전했지? 도시에 살 때에는 쉬는 날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을 가기도 했고, 극장을 찾기도 했다. 결혼하기 전 여느 연인들처럼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찾은 곳 역시 극장이었다. 맞아! 영화가 보고 싶어! 영화를 보려면 한 시간 이십분을 차로 달려 전주로 가야 했다. 농번기는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는 농촌에서 영화를 보겠다고 왕복 세 시간 차를 몰아 도시로 다녀오는 일은 물리적으로도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어 느날 규모는 90석 정도로 작지만 1관, 2관이 있는 개봉관이 장수에 생긴다고 했다.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와 ‘진짜 생기겠어’하는 마음이 교차하던 2010년 11월에 전국 최초로 군 단위 개봉관이 장수에서 문을 열었다. 굳이 전주나 대전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차로 25분 정도만 가면 개봉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영화를 언제 봐?", "우리는 영화를 못봐." 하던 아이들이 개봉영화 제목을 줄줄이 읊으며 영화를 보러가자고 했고 극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즐겁고 가벼웠다. 친척과 지인들이 놀러오면 ‘여기에도 개봉관이 있어’하면서 함께 영화를 보러갔고 농업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에는 작은 영화관이 이곳 농촌 사람들의 문화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작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함께 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곤 했다. 장수를 시작으로 작은 영화관은 점점 더 많은 농촌 지역에서 문을 열었고 농촌 사람들의 벗이 되었다. 그런 영화관이 경영난이 심각해져 문을 닫게 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농촌 작은 영화관 살리기 군민 주주되기 운동이라도 벌여나 하나 생각이 든다.

가끔씩 농업농촌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인터뷰 요청을 하신다. 농촌 인구를 늘리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물으실 때도 있고 농업의 지속가능성이나 푸드플랜에 대한 의견을 물으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결같이 농촌의 정주환경 개선, 문화적 소외 극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린다.

사람은 누구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갖는다. 농촌도 예외일 수 없다. 돈 잘 버는 농촌을 만들겠다는 선언적 구호가 전국에서 난무하지만 진짜 잘 사는 농촌의 배경에 무엇이 있어야할지 깊이 있게 고민하는 지자체가 없어 보인다. 젊은이들에게 농촌은 농사짓는다고 고생하시는 부모가 계실 뿐 정주환경과 문화가 0점인 지역이다. 여기에 머물러 살자고 할 수 있을까? 마음먹고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탈농할 이유가 넘쳐난다. 농민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갖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 농촌의 정주환경과 문화적 충족을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을 기울이는 것, 어쩌면 이것이 먹거리 정의 출발선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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