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가, 생태와 소농을 살리라 외칠까요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2018년 4월 진행한 한국농어민신문 창간 특별대담에서 ‘지속 불가능성’이라는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는 서구식 근대문명의 대안으로서 ‘농본주의’를 역설하며, 한국 사회와 농업 전반에서 양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좇고 있는 세태를 비판했다.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 담은
녹색평론 7~8월호 유작으로

본보와도 인연 남달라
창간 기념 대담 등 참여
농민공동체 복원·농본주의 역설

지난 6월25일,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주 도착한 녹색평론 7~8월호(통권 173호)는 시대정신을 이끌어 왔던 위대한 사상가의 마지막 유작이 됐다. 지난 두 달 간 정성으로 만들었을 책을 받아들자 선생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듯해서 한 참 생각에 잠겼다.

“이제 누가, 미친 성장과 개발을 멈추고 생태와 소농을 살리라고 외칠 것인가? 왜 시대에 필요한 분은 이렇게 일찍 가시는가?” 복잡한 마음으로 한참 만에 봉투를 뜯어보았다.

늘 책의 권두에서 시대의 화두를 던져 주었던 선생의 칼럼이 이번 호에는 중간을 지나 뒤쪽에 실려 있었다.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이란 제목의 이번 글은 지난 3개월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칩거생활 중 생각나는 대로 독백하듯이 적은 단상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글 중에는 “불안의 시대에 우리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데 동아시아의 ‘인명재천’ 철학보다 더 좋은 약이 있을까”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자신의 죽음을 미리 미리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그간의 깨달음도 적혀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람들의 곁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암시라도 하신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다.

고 김종철 선생은 생태사상가이자 실천적 민주주의자였고, 무엇보다 농업, 농촌, 소농을 가장 중시한 농본주의자였다. 선생은 “인류사회가 직면한 가장 긴급한 위기, 즉 기후변화로 대변되는 생태위기에 일단 국한해서 말한다면, 서구 근대문명은 ‘지속 불가능성’이라는 근본적 결함을 내포한 문명으로, 조만간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대안을 찾을 것인가? 

선생은 ‘농본주의’를 이 세상이 지속가능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물질의 막힘없는 순환을 근본 토대로 하는 영속적인 생존·생활방식, 즉 일찍이 《4천년의 농부》(1911)의 저자 프랭클린 H. 킹이 입이 마르도록 찬양했던 동아시아 특유의 친환경적 농사 원리를 적극 되살리고, 어느새 희귀종이 되어버린 농민과 농촌을 다시 소생시키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녹색평론 2018년 3~4월호).

그러나 아무리 순환적 삶의 질서의 회복과 흙의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회로 방향전환을 하자면, 우리의 집단적 삶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 즉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내가 되풀이해서 강조해왔던 것은 그 때문이다.”(김종철,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선생은 한국농어민신문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그는 지난 2008년 4월 본보 창간 28주년을 기념해 김성훈 당시 상지대 총장(전 농림부 장관)과 가진 대담에서 “농업을 단순히 산업적으로만 접근하게 되면 농업은 피폐해지고 농업의 미래는 없어진다”며 “농업을 살리려면 소농·가족농을 살려 농민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 10년 뒤인 2018년 4월 다시 본보와의 창간 특별대담에서도 ‘농본주의’를 역설하고 농촌을 살릴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가장 쉬운 방안이 농민 기본소득이라고 했다. “농민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농민들도 자급 중심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농민 스스로 협동조합도 만들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농촌, 농업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도 줄 수 있고요.” 선생은 2019년 11월에는 ‘농민기본소득 추진 전국운동본부’의 명예고문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일찍이 세계 전역에서 풀뿌리 공동체와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을 통해 소수 기득권층의 배타적인 이익실현을 도모하는 ‘세계화’ 및 ‘경제성장’의 논리를 거부하고, 진정으로 인간다운, 지속가능한 공생(共生)과 자치의 논리를 설파해온 그다. 좌우를 막론하고 이 사회의 지성 중에서 김종철 선생처럼 농업·농촌·농민(소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애정을 보여준 이는 없었다. 이제 선생의 역할을 다시는 누가 대신할 수 없기에, 선생이 떠난 빈 자리가 더욱 허전하기만 하다.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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