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강재남 기자]

한·필리핀 FTA 조속 타결 합의
바나나 농가 피해 불 보듯
기후변화로 지난 5년 사이
재배면적 14배·생산량 20배↑  
망고·블루베리·용과 등도 비상


정부가 필리핀과 FTA를 조속히 타결키로 합의해 바나나 등 열대과일의 국내 과일시장 공략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제주지역 농민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지역에서 생산되는 아열대작물은 지난 2018년 기준 바나나 630.2톤, 망고 309.5톤, 블루베리 319.8톤, 용과 58.9톤, 구아바 1.8톤, 아떼모야 1.6톤 등이다. 이 중 바나나 재배농가수와 면적은 지난 5년 사이 14배 이상, 생산량은 20배 이상 증가했다. 기후변화로 제주지역이 점차 아열대기후로 변화하면서 제주지역 농민들은 바나나, 망고, 용과 등 다양한 아열대작물을 재배, 농정당국에서 관련 작물 개발과 보급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6월 22일 한·필리핀FTA 수석대표 화상회의를 통해 조속한 협상타결을 합의해 제주지역 아열대작물 전환 농가들 사이에서는 지난 1980년대 파인애플과 바나나처럼 수입농산물 시장개방으로 경쟁력에서 밀려 농사를 포기해야 했던 사례가 다시 재현되지 않을까하는 우려하고 있다.

2015년부터 서귀포에서 바나나를 재배한 A씨는 “제주농업 변화를 모색하던 중 열대작목을 도입하면 수입 대체효과도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며 “정부가 필리핀과 FTA를 체결한다면 제주산 바나나뿐만 아니라 아열대 작물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귀포에서 바나나 등 열대작물 농사를 짓는 B씨도 “한·필리핀FTA 추진은 한창 붐이 일고 있는 열대작물 생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현진성 한농연제주도연합회장은 “바나나 등 열대작물 재배가 초기인 상황을 등한시 한 채 FTA를 조속히 체결하려는 정부의 행태로 파인애플과 바나나 농사를 포기해야 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이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한 쪽에서는 아열대작물 재배를 지원하고 한 쪽에서는 수입개방 정책으로 농민 피해만 양산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며 “제주도가 아열대작물을 육성을 위해 지원하는 노력도 한·필리핀FTA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가들의 우려에 제주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아열대작물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마땅히 권장할 작목이 없고 아열대과일 수요가 한정적이라 무작정 농가 보급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다만 제주에서 생산되는 바나나와 망고 등 아열대작물은 이미 수입이 이뤄지고 있어 한·필리핀FTA로 값이 싸져도 국산을 선호하는 수요층이 급격히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강재남 기자 kangj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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