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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과‘순박’사이

[한국농어민신문]

이진천 강원도 신농정기획단 연구원

생산중심 농정이 순박한 농민 외면
영악함만 추구하는 편협함으로는
전인적인 미래 농민 만날 수 없어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순수하며 인정이 두텁다’는 뜻의 순박(淳樸). 만일 순박한 천성을 타고난 데다 마음도 잘 지켜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귀인이다. 순박함이라는 품격은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쉽사리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닐 터.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잘 닦고 덕을 눌러 쌓는다 한들 어렵다.

최근 술자리 대화를 옮긴다. “어제 참 순박한 농부를 만났네요.” “무슨 소리요? 세상에 순박한 농부가 어디 있다고.” “단언할 필요 있나요?” “정말 없거든요.” “형씨도 밭에 엎드려 땀 흘리다보면 몸과 마음이 순해지고 정화되지 않던가요?” “몸과 마음에 골병이나 들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팍팍하군요.” “순박 말고 각박해지지나 않으면 좋겠소.”

둘 다 맞다. 농사는 흙과 생명을 마주하는 노동이다. 그러니 농사지으면 몸 건강해지고 마음이 순해지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또한 농사는 엄혹하고 무정한 시장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그러므로 농사지으면 몸  상하고 마음을 잃게 되는 것도 냉정한 진실이다.

둘 다 틀렸다. 두 개의 상반되고 이질적인 들녘의 진실은 기묘하게 공존한다. 누구든 하나만을 선택하거나 한쪽으로만 치닫는 일은 불가능하다. 중용(中庸)하기는 더 어렵다. 농민은 그 중간에서 기우뚱한 균형이라도 잡아보려 비틀비틀 애쓴다. 농사의 양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고집을 부린다면 엉거주춤 설 수조차 없다.

순수가 어린아이의 것이듯, 순박하다는 이미지는 오롯이 농민의 것이었다. 옛 농민은 순박할 수밖에 없었다. 농약도 비료도 기계도 없던 시절의 농사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라는 술어와 정확히 부합했다. 농촌마을 인심도 순박할 수밖에 없었다, 옛 농민은 큰바람과 가뭄에 귀한 농사를 망칠까 두려워 하늘에 빌었다. 하늘은 ‘순수하며 인정이 두터운’ 사람을 돕는다고 했으니, 하늘에 잘 보이고자 서로서로 도왔다. 농심은 천심을 따르는 순박한 마음이었다.  

오늘 순박한 농민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순박한 농민의 시대는 아니다. 영악(靈惡)은 ‘이해가 밝으며 약다’는 뜻. 돈이 되나 안 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익을 극대화하는 약은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민은 배길 수가 없다. 하늘에 기대던 농사는 시장과 소비자에게 기대는 농사로 바뀐 지 오래다. 농민에게 영악함은 생존을 위한 필수 덕목이다. 성공여부를 떠나서.

농민 각자는 순박과 영악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을 잡아보려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농정의 경우는 어떨까? 농정은 순박과 영악 사이에서 어떤 태도일까? 귀농·창업농·후계농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다. 제목만 훑어보자.

성과창출을 위한 농업경영 전략, 농장별 경영진단도구의 활용, 경영개선을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 농업경영장부의 이해, 회계장부 작성법, 농업세무상식, 농업과 노무관리, 외국인 근로자의 채용, 농식품 시장의 이해, 농산물 브랜드 마케팅 이해와 전략, 품목이론 및 실습, 창업을 위한 벤치마킹, 창업아이템 발굴과 전자상거래 및 SNS 홍보 활용방안, 농식품 가공 사례, 스마트팜 및 농지은행, 창업자금 피해사례 및 각종 지원제도 등등.

오늘의 농정은 새내기 농민들에게 영악함을 미덕이자 경쟁력이라고 권한다. 잘 배워둔다면 나름 도움이 될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이제 순박함은 하등의 쓸모가 없는 가치인 것인가? 이제 우리 시대의 농민상(像)은 오로지 영악한 농민이란 말인가? 진정 순박함은 청년들에게 가르칠 덕목이 못 되는가?

청년농 육성·지원정책에는 교육이 의무든 자율이든 연결되어 있다. 청년농들은 교육의 실효성과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강사나 교육내용이 부실한 측면을 지적하고, 더 다양한 교육을 요구한다. 영악해지라는 경영일변도의 교육이 잘못은 아니더라도, 너무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청년농들은 농업농촌 인문학에 대해 묻는다. 농업철학, 농민의 역사, 농촌사회학 같은 땅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싶지만 가르치지 않는다.

생각해 보자. 청년농 한 사람에게 기성세대들이 건네는 말이 영악해지라는 것뿐일까? 사실 기특한 청년농 아무개가 정녕 순박한 농민으로 마을과 논밭을 지키며 잘 늙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런데 속내와는 다르게 여전히 영악함의 길만 권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편협한 관성과 허위다.

순박함은 농업농촌의 공익적·다원적 가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농업농촌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서 제시하며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공감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농업과 ‘순수하며 인정이 두터운’ 농촌에 대한 정감과 연결된다. 너무 추상적인 소리라고 할 테지만, 현실에서는 사실상 돈 되는 농업이 더 추상적이다.

순박한 농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순박함을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생산중심 농정이 순박한 농민을 주목하지 않을 뿐이다. 농정 패러다임 전환이 생산에서 사람 중심이라고 했던가? 영악함만 추구하는 편협함으로는 전인(全人)적인 미래 농민을 만날 수 없다.

알뜰한 농업경영체이면서 동시에 순박한 농민일 수 있다. 농민은 장부 작성과 경영마인드의 성실함을 영악하게 좇아야 하는 존재이면서, 흙과 빛과 바람과 물과 계절이라는 천지자연의 성실함을 저절로 좇게 되는 순박한 존재다. 사람은 경제적 존재이자 영적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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