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농업정책에서 쌀 비중을 축소해선 안 된다는 진단이다. 쌀이 지닌 유무형 가치와 역할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적 정세와 여건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식량안보의 중심인 쌀산업을 재정립하고 정책적 비중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양곡정책과 쌀산업 전문가, 현장농가의 제언이다.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문병완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장(보성농협 조합장), 유광연 전 한농연 인천광역시연합회장(쌀농가)을 각각 만나 쌀산업 대안에 대한 고견을 듣고 이들이 제시하는 양곡정책과 쌀산업의 발전방향을 정리했다.
 
◆쌀산업 현실을 진단한다면

쌀산업이 총체적 위기라는 게 공통의 진단이다. 정부 정책에서 쌀이 뒷전으로 밀리고 농협과 민간 양곡업계가 쌀산업을 떠안으면서 외형적으로 평온해 보여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지로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쌀산업 현실 진단에 대해 양승룡 교수는 “대한민국 쌀이 위기시대”라고 정리한다. 이어 “쌀은 주곡으로 식량안보 측면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현재 쌀산업이 벌거벗은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상황에서 국제적 여건 변화가 쌀 등 식량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농업현장에서는 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쌀의 역할에 비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광연 쌀농가는 “최근 쌀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일반 공산품과 비교해 결코 비싸지 않고 지난 20여 년 간 오른 것도 아니다”라며 “20kg 한 포대 가격이 4인 가족이 외식 한 번 하는 것보다 저렴한데 쌀값이 비싸다고 얘기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문병완 협의회장은 “UR과 WTO 협상을 거치면서 농업정책 전환기를 맞았고, RPC 정책사업으로 쌀산업에서 농협의 역할도 커졌다”며 정책에서 쌀의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처럼 각 분야 전문가에서 쌀의 비관적 현실 제기되고 있는 것은 쌀농가 경영안전 장치였던 목표가격과 변동직불금이 폐지됐고, 쌀농가 규모화 등 경쟁력 대책, 쌀품질고급화 정책 실종, RPC 현대화 예산 축소 등 쌀관련 정책사업 곳곳에서 예산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쌀만은 시장개방에서 지키겠다던 정부가 관세화를 통한 완전개방으로 전환하면서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현실은 쌀 정책이 축소된 근거로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와 현장농가는 쌀이 가지는 유무형 가치를 감안해 농업정책과 정부예산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유광연 쌀농가는 “정책에서 쌀의 비중을 낮추게 되면 채소와 과일은 물론 축산 등 다른 품목으로 전환할 것이고 그러면 모든 농축산물 품목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우려가 높다”며 “쌀만의 문제가 아닌 농업 전반의 문제로 증폭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쌀에 대한 정부 예산을 축소하게 되면 쌀농가와 쌀산업이 그동안 쌓아온 경쟁력이 후퇴하게 될 것”이라며 “쌀만큼은 규모화를 지속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승룡 교수 또한 현장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는 “식량에서 차지하는 품목별 역할과 칼로리 공급 비중, 그리고 농업소득 등 종합적인 관점으로 보면 쌀이 가장 중요한 위치”라며 “쌀은 농업소득과 농촌지역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쌀에 농업예산이 편중돼 있다는 제기에 대해 “농업예산 각 부문별로 정량적이고 개량적 분석 없이 단순 비율만 놓고 쌀의 비중이 높다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최근 농업정책의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고 뜬금없는데 다각적이고 철저한 선행 분석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병완 협의회장은 “한국 농업의 근간은 논농업으로 쌀이 핵심”이라며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또한 쌀농사에 뿌리를 두고 있고 논농업이 위축되면 농촌지역 소멸과 지역경제 위축 등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기 때문에 쌀에 대한 정책과 예산 비중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쌀산업에 대해 현장 농민과 전문가는 더 이상 쌀이 위축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쌀이 지닌 유무형의 가치와 역할을 재평가해 정책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쌀값 안정 왜 중요한가

2005년 이후 수확기 산지 쌀값을 보면 80kg을 기준으로 2016년산이 12만9807원으로 가장 낮았고, 2018년산이 19만3568원으로 가장 높았다. 매년 수확기마다 큰 가격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까지는 변동직불제를 통해 변동폭이 심한 쌀가격에 대응해 안정적인 쌀소득 기반을 제공했지만 올해부터는 이 같은 안전장치가 풀어졌다는 평가다.

문병완 협의회장은 “공익직불제와 쌀산업을 분리해서 판단해야 하고 쌀과 관련해서 어떠한 규제가 있는지 점검해 현실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며 “농업환경 변화에 쌀정책도 현실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광연 쌀농가는 “매년 편차가 심한 가격변동 정말 문제인데 가격이 높든 낮든 간에 농가들은 쌀을 판매해야 한다”며 “농협RPC가 민간 양곡업자를 철저히 견제하면서 선제적으로 수확기 조곡 가격 안정을 이끌어야 쌀농가 소득이 보장된다”고 지적했다.

양승룡 교수는 “그동안 쌀 목표가격과 변동직불금이 있어 가격변화에 대응할 수 있었고 그나마 쌀농가들은 안정적인 기조로 경영을 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변동직불제가 중단돼 앞으로 가격변동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가 수요량의 일정 수준을 초과해 생산되거나 산지 쌀가격이 평년 이하로 떨어질 경우 쌀 시장격리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일정 부분 찬성하고 있지만 시장격리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양승룡 교수는 “쌀가격과 농가 경영안정 측면에서 보면 시장격리가 기존 변동직불보다 효과적일 수 없다. 목표가격이 설정된 변동직불제는 쌀농가 소득지지에 바로 작용하지만 시장격리는 우회적이면서 확신도 할 수 없다”며 “더구나 시장격리는 매년 수확기마다 상황이 다르고 쌀농가에도 좋지 않은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시장격리와 함께 철저한 생산조정이 병행되지 않으면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양승룡 교수는 “변동직불제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쌀 선도거래 또는 선물시장 등의 기능을 도입해 수급과 가격안정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농업현장의 유광연 쌀농가도 생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국의 논을 대상으로 일정 비율을 휴경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10%의 논을 10년마다 휴경 또는 타작물(잡곡, 조사료 등)을 재배하도록 하고 휴경면적에 대해서는 쌀소득에 준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생산조정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생산조정으로 쌀가격이 안정되면 쌀값 안정을 위한 시장격리와 보관관리비 등 정부예산을 절감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고품질쌀이 쌀산업 대안인가

고품질쌀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모두 공감했다. 향후 쌀은 물론 식량에 대한 국제적 여건 변화에 대비해 탄탄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 선택을 받기 위해서도 중요한 정책이라고 봤다.

문병완 협의회장은 “그동안 양곡표시제가 강화되고 식미가 떨어지는 다수확품종을 공공비축미에서 제외하는 등 고품질쌀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며 “앞으로 고품질쌀 생산과 함께 시장에서 차별화되고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 비중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RPC 통합과 노후 시설 현대화, 건조저장 시설 확충 등 고품질쌀 유통기반을 구축해 왔는데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이 축소되고 있어 문제”라며 “RPC 노후 시설 개보수와 수확 후 관리를 하는 DSC 등에 대한 예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승룡 교수 또한 “쌀 품질고급화는 우리나라 쌀산업이 지향해 나갈 방향”이라며 “인공지능 RPC가 개발되고 있다는데 품질고급화 기술에 대해 정부와 농협이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광연 쌀농가는 “쌀품질을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서는 품질에 따른 차등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제현율 기준으로 등급을 분류하고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에서 더 나아가 농가가 신뢰할 수 있는 품질기준을 정립하고 품질이 좋은 쌀이 더 높은 가격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농식품부·농협에 당부할 것은

유광연 쌀농가는 “농업에서 쌀농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쌀을 위축시킨다는 것은 농업을 포기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농민과 농업 내부를 약육강식 환경으로 만들지 말라”며 “농협 또한 쌀 판매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조합원 농가들과 협력하고 호흡을 맞춰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완 협의회장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재난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식량안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며 “쌀 주곡에 대한 식량안보를 확보하면서 소비 다변화를 위한 연구개발과 쌀 탄수화물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쌀의 이미지 개선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양승룡 교수는 “쌀산업은 RPC와 직접 연관돼 있어 여러 여건상 RPC 구조조정을 통한 규모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농식품부의 정책방향이 쌀정책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다방면의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여러 각도에서 검토하면서 정책을 다듬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끝>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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