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농특위 회의서 '시기상조' 발언
“불붙는 법 제정 여론에 찬물”

농어업회의소전국회의 규탄
농협중앙회에 공식사과 요구


21대 국회 시작부터 농어업회의소법안이 발의된 데 이어 최근 농민 단체들도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를 위한 추진 논의에 돌입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농협중앙회가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모처럼 결집되고 있는 농업계 여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 시범사업에 참여해 온 지역 농어업회의소들이 구성한 농어업회의소전국회의(전국회의, 회장 김제열)는 18일 ‘농어업회의소를 반대하는 농협중앙회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에 따르면 지난 12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가 주관한 ‘농어업회의소 추진협의회 1차 회의’에 참석한 농협중앙회 미래경영연구소 관계자가 “상부의 지시를 받고 왔다. 농협중앙회는 농어업회의소의 법제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두 번에 걸쳐 밝혔다는 것이다. 이 회의는 앞선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추진 과정에서 농업 단체 간 의견이 조율되지 않고 있어 농업계가 농어업회의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양한 의견을 반영한 법제화를 준비하자는 차원에서 마련한 첫 번째 자리였다. 이 자리의 공개 발언에서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들의 전언도 다르지 않았다. 한 농민 단체 관계자는 “회의 시작 후 참석자들이 순서대로 인사말을 하는 과정에서 농협 관계자가 ‘농어업회의소 법제화에 대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반대 입장을 낼 것 같다. 농협중앙회 내부적으로는 법제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식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회의 초반부터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히는 바람에 일부 참석자들의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다른 관계자는 “농어업회의소 법제화에 대해 생각이 다른 농민 단체들이 참석해 의견을 모아보기로 했던 의미 있는 자리였는데, 농협이 힘을 빠지게 만들었다”고 했다.

전국회의에 따르면 농협이 밝힌 법제화 반대 이유는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는 시기상조이고 기존의 농협과 농민단체로 충분하며 농협과 사전 합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럽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직접 민주주의 가능한 토양이 아니다 △대의기구라는 표현은 위헌적 소지가 있다 △농협이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회비는 반드시 내야 하는가 등의 충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전국회의는 성명에서 비판했다.

전국회의는 이 같은 발언과 태도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 있는 답변을 농협중앙회에 요구했다. 전국회의는 △첫째 농민이 민주주의 역량이 안 된다는 농민 폄하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하라 △둘째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를 반대하라고 지시한 윗선이 누구인지 밝혀라 △셋째 농어업회의소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라 △넷째 문재인 정부의 농정개혁에 참여하라 △다섯째 농협중앙회장의 면담을 공식 요청한다고 성명에서 알렸다.

전국회의는 “이번 사태는 농협 내부의 뿌리 깊은 오민과 독선이 수면 위로 드러난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비단 농어업회의소 문제뿐만 아니라 농민조합원을 바라보는 시각, 농협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농협이 근본적으로 쇄신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는 농협 관계자의 발언이 개인적인 의견일 뿐 중앙회 차원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농협중앙회는 입장 자료를 통해 “농어업회의소의 설립 필요성과 법제화 취지에 공감한다”며 “다만 시범사업에서 나타난 문제점들(대표성 확보 미흡, 농업 관련 기관의 사업 중복 문제)을 고려해 입법과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9일 오전 농특위에서 열린 2차 회의에 참석한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이 같은 입장을 설명했다.

하지만 농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 농업계 관계자는 “농협 내부에서는 예전부터 농어업회의소 설립이 농협의 기득권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반대 기류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공식석상에서 대놓고 얘기한 적은 유례가 없는 일로 알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농정개혁 과제에 포함돼 있는 농어업회의소 법제화에 대해 농협 내부에서 기득권에 기반한 시각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법제화 과정은 물론 법제화 이후에도 우려가 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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