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수확 앞둔 김제 ‘참조은밀협동조합’ 가보니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 지난 5일 수확을 앞둔 전북 김제 진봉면에 위치한 우리밀 밭에서 신정애 대표, 조찬권, 이한섭, 김현중 이사(왼쪽부터)가 냉해로 말라버린 밀 이삭을 살펴보고 있다.

재고 문제로 파종 거의 못해
지난해 자급률 1% 아래로 뚝
“계약물량 100톤 늘렸는데…”
생산량 줄어 못맞출까 걱정

밀산업협회 회원사 재고 물량
흉작에도 여전히 1만톤 달해 
“정부 수매는 임시방편 불과
자급률 제고 장기 계획 세워야” 


“2017년 우리밀 재고 여파가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냉해로 수확량이 반토막이 났는데도 우리밀이 판로가 없어 남아돈다는 말입니다. 재작년에도 재고 문제로 농가들이 밀 파종을 거의 못 해 밀 자급률은 다시 1% 아래로 떨어졌어요. 이렇게 2년 동안 흉작이 이어진다면 우리밀 생산기반은 더 흔들릴 거에요.”

전북 김제 진봉면 일대 20만㎡(6만평)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는 신정애(63) 참조은밀협동조합 대표는 밀 수확을 일주일 앞둔 지난 5일 이 같은 우리밀 농가의 현실을 전했다. 50명의 농가로 구성된 참조은밀협동조합은 우리밀 주산지인 김제 서부 지역 진봉면, 성덕면, 만경읍 일대에서 우리밀을 재배하고 있다.

대부분 농가와 수매업체간 계약재배로 이뤄지는 우리밀은 지난 10년간 1%의 자급률을 벗어나지 못하는 등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참조은밀협동조합은 2014년까지만 해도 계약재배로 700~800톤 가까이 생산을 했지만, 소비 부진으로 지난해 계약물량이 200톤까지 줄었다. 그나마 올해는 작년보다 100톤 증가한 300톤(75ha)으로 수매계약 했지만, 냉해로 생산량이 절반 아래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농가들은 오히려 계약 물량에 못 미치는 생산을 우려하고 있다.

냉해 피해 농민들은 지난겨울 기온이 높아 웃자란 밀이 올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밀 이삭이 얼어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탓에 이삭을 비벼도 쭉정이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김현중(53) 참조은밀협동조합 이사는 “올 봄철 강수량이 줄면서 말 품위가 안 좋아 1등급은 거의 안 나올 것 같다”며 “보통 냉해 피해는 한 지역에서만 발생하는데, 밀 품종이 금강으로 단일화가 되다 보니 냉해 피해도 전국적으로 같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남 지역 밀 냉해 피해 상황 역시 비슷했다. 지난 8일부터 수확을 시작한 천익출 우리밀농협조합장은 “올해 냉해 피해로 전남 지역 밀 생산량이 20~30%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생산량이 줄어도 우리밀 재고가 남아돌아 우리밀 수급은 부족하지 않다는 게 우리밀 업계 의견이다.
 

▲ 냉해 피해로 밀 이삭 절반이 쭉정이가 된 모습이다.


국산밀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밀 재배면적은 5903ha, 생산량은 2만3000톤으로 추정했다. 특히 지난 2017년 밀 재고 증가 여파로 2018년 농가들이 밀 파종을 못 하면서 2019년 밀 생산량은 1만6000톤으로 하락, 밀 자급률이 0.7%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산밀산업협회 회원사들의 재고 물량은 1만톤(2017년산 1000톤, 2018년산 3800톤, 2019년산 5000톤)에 달한다.

신정애 대표는 우리밀 재고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원인으로 정책의 연속성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신 대표는 “10년 전 정부에서 우리밀 자급률을 1%에서 10%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을 때 우리 밀 농가들도 지역에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밀 자조금도 내고, 우리밀 체험장도 조성하고, 판로도 마련해보겠다고 방배동에 짜장면 가게도 시도했었다. 그런데 상황은 더 안 좋아졌고, 자급률이 1%도 안 되는 0.7%에 이르렀다”며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 연속성이 없어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 몫으로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정부가 100억 원의 예산으로 수매업체들이 비축한 밀 재고 1만 톤을 특별 수매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신 대표는 “정부가 수매 비축을 해서 시장 격리를 했다면, 수매업체들은 다시 농가와 계약 재배를 이어가야 하는 데 정책 효과가 생산 농가들에 까지 미치지 못했다”며 “결국 정부도 재고 물량 처리하는 것에만 예산을 세웠지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한섭(66) 참조은밀협동조합 이사는 “작년에 밀 1등급 수매 가격이 4만2000원에서 3만9000원으로 떨어졌지만, 이 가격이라도 농가에선 밀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만 한다면 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밀 농가들이 계약물량이 없어 밀 파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 같은 문제는 결국 밀 농가들이 보리로 옮겨가 올해 보리 생산 과잉이라는 문제로 튀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신정애 대표는 “올해는 냉해로 밀 생산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렇게 밀이 2년 연속 흉작이 되면 우리밀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올해부터 시행하는 밀산업육성법에 따른 공공비축밀 계획이 나온다면 정부에서 의지를 갖고 2022년 밀 자급률 9.9% 달성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