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농촌에서 여전히 행정은 주민들의 의견 몇 마디 듣는 것을 협치라 하고 우리를 동원 대상이라 생각한다. 물론 예전에 비해 조금은 나아졌지만 어떠한 권한도 없는 위원회나 협의회 정도가 그나마 현실의 농촌에선 행정이 초대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최대한의 협치 방식인 것이다.

여민동락 설립 후 참 많은 일들을 했다. 당장 지역에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어 노인복지센터를 시작했고, 지역을 좀 더 알아가면서는 어르신 일자리와 소득 창출을 위한 농장과 떡 공장을 운영했다. 지역 내 유일한 구멍가게가 사라지면서 마을가게 동락점빵도 만들었고, 비슷한 시기 면지역의 유일한 학교가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된다 하여 작은 학교 살리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젊은 학부모들과 깨움 마을학교도 운영한다. 어느 날 이런 활동을 통해 만나 새롭게 인연이 된 사람들을 세어보니 이곳으로 이주했던 귀농·귀촌인이 어른, 아이 합해 60명이 넘었고 작은 학교 살리기로 통해 만난들도 40명에 육박했다.

이처럼 함께 한 동료들과 지혜를 모으고 좌충우돌하면서도 지역의 현안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갈 때 마음 한 켠에 생긴 자부심이 그 다음 활동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10년이 흘러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니 현실의 농촌은 여전히 암울하고 과연 우리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많았다. 당장 이곳의 인구 수만 봐도 그렇다. 2007년 첫 이주 당시 2150명에 육박하던 묘량면 인구는 작년 말 1800명 아래로 내려갔다. 전체 인구는 평균적으로 1년마다 30명씩 감소하나 50대, 60대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줄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고령화율은 높아져 간다. 대신 45세이하 인구는 해가 갈수록 줄고 작년 기준으로 면 인구의 23% 밖에 되지 않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50년 예상되는 한국 인구 피라미드가 역삼각형 모양인데 이미 이곳은 딱 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인구는 더욱 심각하다. 작년 기준으로 지역에 거주하는 20대 농업경영체는 2명, 30대 농업경영체는 5명 정도 밖에 없다. 당연히 대부분은 60대, 70대다. 젊은 사람들이 사라지는 농촌에서 과연 희망이란 게 자라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막막했다.

이러한 연유로 2017년 여민동락 설립 10주년을 맞이하여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는 것과 함께 새로운 10년의 활동 방향을 정했다. 그때 우리가 세웠던 구호가 “세상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세상으로”다.

우리 힘만으론 이러한 문제를 절대 풀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표현이었다. 그동안 여민동락 방식의 사회적관계망 구축과 문제 해결을 넘어 지자체와 지역주민들 모두의 지혜와 힘을 모아 이 난국을 풀어가겠다는 우리들의 약속이자 실천방향이었다.

현재 농촌이 처한 현실은 매우 복잡하고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아무리 많은 국가재정을 쏟아 부어도 어느 한 주체로는 절대 풀 수 없다는 것이 10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우리의 결론이었다. 활동의 주축이 될 주민들과 행정이 협치를 통해 방안을 마련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협치의 문화 속에 강화된 풀뿌리 주민력이 농업, 농촌의 위기를 풀 열쇠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은 신뢰에 기반한 파트너십 구축이 가장 중요한데 여민동락은 그동안 행정과 파트너십을 맺고 제대로 일을 추진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늘 어르신들이 중심이었고 작은 학교 살리기를 통해 만난 젊은 학부모들이 주요 파트너였다. 물론 우리들의 활동을 격려하며 지원해 주던 지자체 관계자도 일부 있었지만 중심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게 마음먹는 다고 그냥 될 일이 아니다. 농촌에서 차지하는 행정의 위상과 역할은 차치하고 그동안 현장에서 일을 추진하는 당사자들 간에 갖고 있던 편견과 오해를 풀고 각자가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만으로도 몇 년이 걸린다.

얼마 전 여민동락 초창기 공동체 식구들의 역량강화 교육를 해주셨던 리더 한 분을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 정말 전사 같았다고... 그런데 많이 유해졌다고~~~.” 하하하 맞다. 일부러 좋게 표현해주셨지만 우리들의 눈빛과 표정, 말 한마디에는 늘 비장함과 칼날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오해로 여민동락은 기피대상 1호였는데 만날 때마다 목은 빳빳하고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사람들이니 곱게 봐줄 리가 없었다.

또한 협치와 자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다르다. 지방자치 30년에 “연방제에 버금가는 자치분권”을 천명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농촌에서 여전히 행정은 주민들의 의견 몇 마디 듣는 것을 협치라 하고 우리는 동원 대상이라 생각한다. 물론 예전에 비해 조금은 나아졌지만 어떠한 권한도 없는 위원회나 협의회 정도가 그나마 현실의 농촌에선 행정이 초대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최대한의 협치 방식인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협치와 그러한 토대 속에 강화된 주민자치로 만들어가는 지역 활성화를 꿈꾸며 시작한 기초생활거점육성사업 추진이 어느덧 3년차에 접어들었다. 무수히 많은 만남과 소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10년 안에 주민들과 행정이 동등한 관계에서 각자가 가진 역량과 권한을 발휘하면서 풀뿌리 주민자치와 협치를 이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주어진 일정들을 소화한다. 그 날이 좀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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