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문 대통령 공약, 국정과제 포함
남원에 공공의대 설립
민주당 당론으로 추진했지만
자유한국당·의사협회 발목
법안심사 대상 오르지도 못해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 등 골자
‘인구소멸위기지역 특별법’ 발의
21대 국회서 논의 본격화 기대


농어촌의 정주여건을 비롯해 농촌 주민들의 삶의 질, 인권 문제와 엮여있는 부분이 보건의료 분야다. 20대 국회에서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취약한 농어촌 등 지방에 공공의료를 전담하는 의대(대학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야당과 대한의사협회의 반대로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공공의대 설립 추진이 포스트코로나19 대책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농어촌 지역의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한 입법화 작업이 21대 국회에서 더욱 요구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지방자치단체 또는 국가가 공공보건의료 분야에 종사할 의료인을 양성할 수 있는 의과대학(대학원) 설립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가 학업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하는 대신 졸업 이후 일정 기간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관련 법안들(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 5건)이 발의됐다. 이들 법안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취지는 대체로 비슷하다. 의사인력이 수도권에 집중되고 의료취약지 근무기피 현상 등으로 농어촌을 포함한 지역의 공공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것.

공공의대 설립은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남원 서남대 폐교 대안으로 전북 지역의 현안이기도 했다. 2018년 4월 당정 협의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남원에 공공의대 설립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입법화 기대가 컸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법안소위)에서 계류되다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과 대한의사협회의 반대가 가장 큰 이유. 자유한국당은 법안 처리를 막겠다는 방침을 당론으로 정하고 법안 심사를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시급성과 예산 등을 감안할 때 최선이 아니다”라는 것이 표면적인 반대 이유. 하지만 정략적인 ‘발목잡기’ 행태가 뚜렷했다. 간사단 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법안 심사 대상에 오르지 못해 법안소위에서 두 차례 밖에 논의하지 못했다. 이 중 한 번은 2020년 2월 19일 20대 국회 보건복지위 마지막 법안소위에서 ‘기습’ 상정한 것이다.

이 회의에서 당시 미래통합당 간사인 김승희 의원은 “공공의료는 필요하다. 보강돼야 된다. 그러나 지역의 공약으로 인해 그것을 가지고 집어넣는, 밀어 넣기는 안 맞다는 것”이라며, 회의 진행에 비협조적으로 나서 파행 직전까지 갔다.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은 김승희 의원을 향해 “어떤 당의 지역 공약이라고 반대하고 있는데, 그게 당리당략적이지 않나”라고,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기가 김승희 의원 사무실이냐”라고 쓴 소리를 뱉었다.

대한의사협회의 반대도 거셌다. 협회는 “필수의료 분야의 정상화 없이는 아무리 별도의 의대를 만든다고 해도 공공의료는 확충되지 않는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공공의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에 대해서도 의사협회는 5월 29일 성명서에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산술적인 통계에 불과하다. 오히려 의료이용의 지표인 외래진료와 입원치료는 OECD 국가 가운데 단연 1위”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치권 유·불리 또는 의사 기득권 등의 이해관계를 떠나 농어촌 지역의 의료 취약 문제는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도농 간 의료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농어촌 의료공백으로 인해 농어민 삶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한참이다.

국토연구원이 올해 3월 발표한 응급의료 서비스(종합병원·응급의료시설·소방서 등 3개 시설)에 대한 농촌과 도시의 격차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등 대도시 및 지역 중심도시 주변은 취약인구비율이 낮은 반면 농촌, 산간, 일부 해안지역은 취약인구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별·광역시도, 특별자치시를 제외한 152개 시군(75개 시, 77개 군)의 취약인구비율은 종합병원의 경우 시가 26.3%인 반면 군은 85.2%, 응급의료시설은 시 20.5%·군 60.3%이며, 소방서는 시 6%·군 28.9%로 나타나 격차가 뚜렷했다.

국토연구원은 “정량적 격차뿐만 아니라 농촌은 소수의 취약인구가 넓은 지역에 분포하며, 도시는 반대로 많은 인구가 좁은 지역에 분포해 도농 간 응급의료 서비스 지원 전략의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2018년 농어업인 등에 대한 복지실태 조사보고서’에서도 2017년 농촌 내 의료기관은 도시의 12.9%에 불과하다.

최근 공공의료 분야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관련 입법 논의가 21대 국회에서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관련 법안이 발의돼 눈길을 끈다. 6월 1일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구소멸위기지역 지원 특별법안’은 △인구소멸위기지역 지정 △대통령 소속의 인구소멸위기지역지원위원회와 지자체 인구소멸위기지역지원지방위원회 설치와 함께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지역 거점 의과대학과 부속 종합병원 설치 근거를 담았다.

서 의원은 “해당 지역의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임으로써 지역의 인구유출을 완화하고 인구유입을 늘리기 위한 국가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끝>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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