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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시선] 4차산업 혁명으로 농촌을 살린다고?이상길 논설위원, 농정전문기자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농업의 주체는 농민이고, 농촌지역의 주체는 농촌주민이다. 농업과 농촌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 변화의 주체도 농민이어야 하고, 삶의 방식도 농민이 결정해야한다. 하지만, 세상이 여러 번 바뀌었다는데 농촌주민들은 농촌정책에서 한 번도 주체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광범위한 참여도 어려웠다. 오히려 시대가 변화할 때마다 국가의 필요에 의한 정책으로 삶의 환경과 방식의 변경을 강요당해 왔다.

경제개발의 시기에는 국가가 증산과 새마을 운동을, 시장개방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는 경쟁력 강화에서 6차산업화까지 다양하게 강요하더니, 저성장 시대가 되자 성장동력을 찾는다며 4차산업 혁명, 스마트농업을 들이댄다. 정부는 늘 농민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기 보다는 ‘국익’이니 ‘시대적 대세’니 하면서 정책의 영향과 결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을 강제하고 관철해왔다. 물론 이런 패턴은 농민뿐만 아니라 극소수 기득권을 제외하고,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서민들이 비슷하게 당하는 일이다.

4차산업 혁명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흐름이지만, 근래 혁신성장, 미래 성장, 일자리 창출이란 명분으로 그럴싸하게 재포장되고 있다. 4차산업 혁명은 사회적 합의와 준비가 없을 경우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고, 소수에 의한 독점과 양극화 심화라는 부작용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세상이 셧다운 되고,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국난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포스트 코로나’의 선봉으로 호명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성장’을 내세워 해왔던 패턴과 똑 같이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과 규제완화가 추진된다.

농업분야에서도 뒤질 새라 “빨리 4차산업 혁명을 농업 농촌에서 구현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곰비임비 부르댄다. 일부 식자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위해 ‘Untact(비대면)’, 4차산업 혁명, 온라인유통, 데이터, AI(인공지능), 스마트농업, 자율주행 농기계, 로봇, 한국판 뉴딜, 원격의료, 에듀테크 등을 농촌에 도입하자고 큰 소리를 낸다. 그린뉴딜이라며 농촌태양광, 스마트축산을 꼽는다. 코로나로 인해 도시민들이 농촌에서의 삶을 ‘내 삶의 버킷리스트’로 삼고 있으니 국민을 위해 생활환경과 문화여건을 개선하자는 ‘농촌 유토피아 구상’까지 제시된다.

이들 논의는 시기상 필요한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 내용과 방식이 주로 그동안 비판받아온 신자유주의, 성장 지상주의 농정과 일맥상통한다. 그간의 농정이 실패한 것은 정부의 정책이 농민의 관점이 아니라, 농업생산성 증대를 통한 국제경쟁력 향상이라는 성장주의 관점에서 추진됐기 때문이다.

농촌 붕괴를 막는다고 추진하는 농촌 개발정책의 경우 농촌주민의 역량에 의한 내생적(내발적) 방식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설을 지원하거나, 외부자본에게 규제를 풀어 지역자원을 내주는 외생적 방식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대책으로 나열되는 4차산업 혁명, 스마트농업은 농촌주민들의 요구가 아니라 외부적 관점, 도시적 관점으로 농업과 농촌을 바꾸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관점의 혼란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예외가 아닌듯하다. 지난 4월29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제4차산업혁명 시대의 농업․농촌 대응전략 연구(2/2차년도)’(김연중 외)는 농촌 생활환경 개선 방안으로 4차산업혁명 기술 접목을 제시했다. 연구에서는 농촌거주자 308명과 도시민 500명을 조사한 결과, 농촌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4차산업혁명 기술 적용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70%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4차산업 혁명 시대 농촌 인프라 구축을 위해 ‘스마트농촌법’을 제정할 것을 주문하고, 각 분야의 협업과 통합 관리를 위한 위원회 구성, 다부처간 협업을 위한 사업단 구성, 스마트시티와의 연계 추진을 제안했다. 연구진은 이와 관련, ‘4차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농촌’이란 영상보고서도 제작했다.

헌데 이 보고서와 영상을 접한 이들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한 농촌개발 전문가는 “농촌 생활환경 개선에 4차산업 혁명 기술을 접목하자는데 왜 도시민은 500명이고, 농촌거주자는 308명만 조사했지요? 농촌 주민이 더 많아야 되지 않나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요즘 농업분야에서 포스트 코로나라고 해서 4차산업 혁명이니, 언택트니, 뉴딜이니 하며 난리도 아닌데, 모두 농업 농촌의 주체인 농민의 요구와는 상관 없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 연구의 관점은 귀농·귀촌을 촉진하기 위해 도시민을 위한 농촌을 만들어주겠다는 인식을 기저에 깔고 있는 듯하다”며 “농촌을 상품화·대상화하는 것은 비농업계와 신자유주의 경제진영의 논리인데, 농업·농촌의 싱크탱크라 생각했던 농촌경제연구원의 이 연구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통상 농촌정책은 농촌주민이 살만하고, 살고 싶은 공간이 마련되면 도시민도 농촌으로 온다는 인식이 기본 관점인데, 반대로 이 연구는 도시민을 위한 공간이 조성되면 농촌주민에게도 좋다는 논리로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포스트 코로나 논의를 보면, 코로나로 인해 당장 신음하는 농민들과 농촌경제 회생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과도, 식량안보나 농가소득 안정,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농정 핵심과도 동떨어진 내용이 많다. 4차산업 혁명, 스마트농업, 그린뉴딜이란 이름으로 농민, 농촌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도시가 농촌을 소비하고, 자본이 농촌자원을 수탈하는 방식을 코로나 대책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포스트 코로나 논의는 농업 농촌의 주체인 농민, 농촌주민의 현장의견이 중심이 돼야 한다. 농민의 삶이 빠진, 농촌의 내생적 발전에 대한 철학이 없는 논의는, 이 위기와 전환의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농민과 농촌주민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고, 농촌다움과 지속가능성을 파괴하는 위험천만한 결과를 불러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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