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정말 돌이켜보면 온통 안 될 수밖에 없는 이런 여건에서 어떻게 10년을 버텼는가 싶지만 “포기하면 안되는 이유를 찾고 희망을 꿈꾸면 방법이 보인다”는 삶의 단순한 진리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었던 동락점빵 식구들과 지역 젊은 조합원들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면단위까지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은 대형마트 이용과 급속히 가정 안방까지 들어온 온라인 쇼핑으로 농촌에서는 구멍가게 하나 차리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당연히 이문이 남을 만큼의 규모가 안되기 때문에 영리기업은 적당한 수익모델을 만들기 어렵고, 국가는 근본적으로 작동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사회적 경제조직인 여민동락 주도의 ‘마을기업’이었다. “사회 구성원 간 상호 협력과 연대를 통해 공동의 이익과 사회적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경제활동”이라 정의된 사회적 경제, 뜻을 같이 하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사고’를 치고 어르신들과 함께 협동으로 수익을 창출하여 지역의 현안을 풀어가는 이 방식이 아니고선 답이 안보였다.

물론 기존에 있었던 것(이동만물상과 일본사례)과 없었던 것(사회서비스 범주)을 융합했기에 오해와 실현가능성을 두고 말들이 있었다. 어르신들이야 “그래 좋제. 한 번 해봐. 나는 살랑께”했지만 다른 젊은 사람들은 “그것이 장사가 되겄소. 다 읍 마트에 간디”하며 타박도 했다. 당시 심사 받을 땐 좌장께 “그것이 무슨 사회적 경제냐”며 힐난도 받았지만 농촌의 현실이 그러하니 물러설 수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영광읍 마트와 같은 가격에 드리고자 생산공장에 직접 전화를 걸어 우리의 뜻을 전달하고 납품을 요청하는 배짱도 부렸지만 친절하게 거절 당했고 중간 도매상을 통해 납품 받은 소주가격이 영광읍 마트보다 비싸다며 “너희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호통 쳤던 애주가 어르신 덕에 한 달간 대책을 마련하느라 문을 닫기도 했다. 사회적가치 실현과 수익 창출의 조화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마침 이곳으로 귀농한 여성이 내가 해보겠다며 나섰고 별다른 지원 없이 홀로서기 한 2012년, 매출 1억이 조금 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물론 여민동락공동체가 간접적인 도움을 주긴 했지만 본래의 취지도 달성하면서 급여도 가져가고 빚도 없이 운영한 것이다. 가능성을 본 우리는 바로 이때부터 지역사회 리더들과 젊은 주민들에게 동락점빵을 더욱 더 홍보했고 협동조합 교육을 추진하여 2014년 중순에 동락점빵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재탄생했다.

새롭게 시작한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 초창기에는 조합원들의 열정과 마침 시작된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의 도움으로 2년간 가파른 매출 상승과 함께 조합원도 200명, 300명으로 급속히 늘었다. 언뜻 보면 탄탄대로를 달릴 것 같은 이런 성장에 일부 식구와 조합원들은 뭔가 될 것 같은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지만 내부적으론 걱정이 많았다.

동락점빵은 사실 모든 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조합원이 늘긴 하는데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니 조합원 수의 가파른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필품 매출 상승은 느렸다. 또한 어르신들이 거의 대부분 이용하는 이동점빵은 말 그대로 생활복지서비스다. 굳이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0.4명의 인건비밖에 나오지 않으니 다른 곳의 수익금이 이 활동으로 환원되는 구조다.

결국 아무래도 씀씀이가 큰 젊은 조합원들의 가입과 이용률을 높이는 것이 해결책인데 이것조차도 쉽지 않다. 가장 많은 70대 조합원수의 1/6밖에 안되지만 연간 이용금액은 6배가 많은 40대 조합원들이 동락점빵 매출의 일등공신이다. 그런데 변변한 물류창고도 없는 4평 매장에서 공급할 수 있는 물품의 수가 읍 마트에 비할 바가 못 되기 때문에 애정어린 그들이라도 이중으로 장을 봐야하는 수고로움을 오래도록 감내하기가 어렵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장과 물류공간 확보를 수차례 시도했으나 조합의 특성상 재무구조가 빈약하여 의미 있는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웠고 시골 땅을 협동조합이 매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정말 돌이켜보면 온통 안 될 수밖에 없는 이런 여건에서 어떻게 10년을 버텼는가 싶지만 “포기하면 안되는 이유를 찾고 희망을 꿈꾸면 방법이 보인다”는 삶의 단순한 진리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었던 동락점빵 식구들과 지역 젊은 조합원들의 힘이 아닐까 싶다.

여민동락은 위기에 빠진 농촌을 살리는 길은 이웃과 이웃이 서로를 살피고 살리는 공동체성의 복원이라 여긴다. 오 래전 농촌의 바탕에 있었지만 점차 희미해지는 협동과 연대를 통해 주민들 스스로 이뤄가는 풀뿌리 자치의 구현으로 농촌이 살아나는 기적을 맛보고 싶은 것이 우리의 희망인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우리의 끈질김을 응원하며 늘 힘을 실어주는 주민들, 그리고 매번 “여민동락이라 내가 갈아주는거 알지!”하며 꼬깃꼬깃 1000원짜리를 꺼내는 어르신들과 담장 너머 들리는 점빵 소리를 반기며 얼른 들어오라는 어르신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다가 2년 전부터 학교와 경로당에 먹거리를 납품하면서 매출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오랜시간 여민동락의 지역 활동에 지지를 보내주었던 젊은 조합원들의 이용률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2017년부터 주민들과 함께 시작한 10년의 지역 활성화 구상과 활동도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에 더 큰 사명과 기회를 부여하고 있어 그동안 유보되었던 공간의 확보도 조금씩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역시 희망을 꿈꾸니 방법이 보인다.

2022년 주민들과 이뤄가는 풀뿌리 자치의 든든한 뒷배경이자 선순환경제의 기지로 우뚝 설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 그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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