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 농산물 가격 폭락에 따른 대책의 하나로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도입 요구가 크지만, 관련 내용을 담은 법안이 정부 반대에 부딪혀 20대 국회에서 결실을 맺지 못했다. 지난 5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농산물 가격보장제도 마련! 냉해피해 보상! 코로나19 대책 마련!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이 ‘농산물 가격 보장’ 피켓을 들고 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흔히 ‘농안법’이라고 부르는 이 법률은 농수산물 수급 및 유통 분야 전반의 제도적 근거를 담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총 29건의 법률 개정안(대안 포함)이 발의됐으며, 2016년 11월, 2017년 3월, 2018년 12월, 2019년 8월 등 총 4차례 개정을 통해 12건이 입법에 반영됐다. 나머지 법안들은 이해당사자 간 의견 대립, 예산 및 정책 여건 등의 이유로 계류 중이다.


주요 농산물 기준가격 이하 때
차액 생산자에 지급하는 방식 
일부 지자체 시행하고 있지만
열악한 재정 탓 취지 못살려

예산당국 번번이 ‘반대’ 표명 
“정부 시장가격 개입 신중해야”
농정당국도 ‘재정 부담’ 난색
과잉 생산 등 우려 신중론

농민단체 도입 요구 높은데도
입법 논의 지지부진 ‘도마위’
21대 국회, 논의 재개 속도
제도 도입 법안 발의 준비 중


이 가운데 주요 농산물의 최저가격보장제 도입 근거를 신설한 개정안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제주 서귀포) 의원(2017년 9월)과 서삼석(영암·무안·신안) 의원(2019년 3월)이 각각 20대 국회 전·후반기 1건씩 대표 발의한 개정안으로, 두 개정안 모두 농산물(지역특화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실시 및 중앙정부의 지원 근거를 담았다.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란 주요 농산물의 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 그 차액을 생산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앙정부의 지원과 관계없이 지역특화 농산물에 대해 자체적으로 정한 기준가격 이하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질 경우 차액의 일부를 보전하는 최저가격보장(보상)제를 이미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재정 상황이 열악하다보니 농산물 가격 안정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농업인의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제도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고, 제도 확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 근거를 입법화하는 것이 개정의 핵심이며, 개정안의 발의 이유다.

입법화 논의 과정에서 정부는 ‘불수용’ 입장을 피력하며 난색을 표명했다. 개정안을 발의한 두 의원들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2019년 정기국회에서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에게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의 도입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그럴 때마다 ‘반대’ 의견이 되돌아왔다. “정부가 시장가격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이다.

예산 당국은 물론 농정 당국 역시 같은 입장. 특정 품목 대상의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가 과잉생산을 유발하고 막대한 재정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이재욱 농식품부 차관은 2019년 11월 13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에서 “제도를 도입할 경우 대상 품목으로 생산이 집중되면서 연쇄적으로 시장의 기본적인 기능이 무너지는 것들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크다”면서 “제도 도입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를 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책 여건을 고려할 때 현행 제도와 부딪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2017년 11월 29일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당시 김현수 농식품부 차관(현 장관)은 “내년(2018년)이 되면 정부가 하고 있는 채소류 생산안정제가 고추·마늘·무·양파·배추 등 5대 품목이 다 들어간다. 생산안정제의 경우 최저가격을 과거 평년 5년 가격의 80% 정도를 보장을 해 주는 대신에 만약에 과잉이 되면 산지 폐기 등 수급 조절의 의무를 준다”면서 “정부가 이 제도를 하고 있고 저희들 생각으로는 좀 더 농업인 입장에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최저가격보장제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욱 차관은 2019년 11월 18일 법안심사소위에서 “WTO의 감축대상 보조 부분도 관련이 있고, 또 특정한 품목에 만들어졌을 때 다른 품목들의 요구를 정부가 현실적으로 거부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이유도 꺼냈다.

이처럼 정부의 완강한 태도에 가로막혀 개정 논의는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대상 품목, 기준 가격, 차액의 얼마를 지원할 것인지 등의 세부 사항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여기에 여야 파행이 빈번해지면서 법안 심사를 위한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서삼석 의원은 2019년 11월 18일 법안소위에서 농식품부 관계자들을 향해 “객관적 데이터나 근거도 없이 과잉 생산을 유발한다고 하고 있고, 농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농림부가 과다한 재정 소요라는 표현을 쓰면 되겠나”라며 “큰 기업에게는 공적자금도 갖다 주는데 농민들의 생산비 보장을 못한다고? 못한다는 것까지도 좋다. 그런데 해 보려고 노력도 안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의원은 또 “정부가 채소 생산안정제의 확대나 보완을 얘기하고 있는데 금년에 (여러 차례 관련 조치를 취했는데) 양파와 마늘 가격이 안정됐나”라며, 정책 당국의 의지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도입 논의는 21대 국회에서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 발의가 일찌감치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윤재갑 더불어민주당(해남·완도·진도) 당선인이 1호 법안으로 ‘기초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를 준비 중이다. 농민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21대 총선 농정공약 요구사항에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농민 단체 관계자는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무, 배추, 양파, 마늘 등 채소 품목의 시세가 연쇄 폭락하면서 현장 농민들이 국회 앞에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20대 국회에서 최저가격보장제 도입을 위한 입법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면서 “21대 국회에서는 정부 당국이 최저가격보장제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논의에 적극 나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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