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등이 2019년 11월 28일 국회 기자회견을 열고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의 보류를 비판하며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지만, 해당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사진 출처-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600여건의 농업 관련 법안들이 임기 만료로 폐기될 수순이다. 비록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20대 국회가 풀지 못한 지점들을 21대 국회에서는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농업인들의 염원이 크다. 계류 법안들을 다시 한 번 꺼내봐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한국농어민신문은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농업 관련 중요 법안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를 살펴본다. 두 번째는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개정안이다. 

“농협 개혁의 첫걸음 직선제”

민간 진영 적극적 요구에도
농식품부 부정 견해 등 부딪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해

김현권 의원 “농식품부가 농락”
좋은농협운동본부·정명회 ‘규탄’


농협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44건 발의됐다. 이 중 27건이 처리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계류법안 중에 농협중앙회장의 직선제 도입, 연임 여부 등 민감한 사안들이 있어서다.

중앙회장 선출 문제는 단순히 선거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농협 지배구조 전반과 관련돼 있다. 농협 개혁의 첫걸음을 중앙회장 직선제라고 보는 민간 진영은 직선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반면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 등은 원론적이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가 민간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정부와 농협 입장을 원만하게 조율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20대 국회 임기 중 막바지에 차기 농협중앙회장 선출(2020년 1월)도 있어 직선제 도입, 연임 허용 문제를 두고 대내외적인 관심이 컸던 상황이었다.

중앙회장 선출은 초기에 대통령 임명제로 시행되다 1988년 전체 조합장에 의한 직선제 방식으로 변경됐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대의원회 간선제로 바꿔 현재까지 오고 있다. 현행 간선제를 다시 직선제로 되돌리자는 내용의 농협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11월 대표 발의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주요 내용은 △중앙회장 선출을 위한 직선제 도입 △농림축산식품부에 농협발전위원회 구성 △중앙회의 경제사업 이관 기한 연장 등이다. 이후 2017년 5월(황주홍·직선제 도입), 2017년 8월(이완영·연임 허용), 2018년 3월(박완주·직선제 도입 및 연임 허용) 관련 개정안이 차례대로 발의됐다.

결론적으로 직선제 도입 등 개정 논의는 변죽만 요란했을 뿐 ‘공수표’로 전락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2019년 7월과 11월 등 여러 차례 논의를 진행했지만, 상임위 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연말 개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며 자동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물리적으로 논의 시간의 한계도 분명 있었지만, 책임론을 따진다면 농식품부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직선제 도입에 대해 원론적으로는 찬성 입장을 냈던 농식품부가 2019년 11월 13일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차기 중앙회장 선거를 위한 12월 초 법 개정이 실무적인 판단에서 힘들 것으로 보인다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더 나아가 △부가의결권 적용 △위탁선거법 개정 △중앙회장 권한집중 방지 방안 등 3개 선결과제를 명확히 하며, 이 3가지가 모두 이뤄져야 직선제 수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덧붙여 논란을 자초했다.

부가의결권은 조합이 조합원 수에 따라 중앙회 총회 및 대의원 선출 시 1~3표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부가의결권은 2009년 간선제로 바뀌면서 삭제됐는데, 직선제 도입을 위해서는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법 개정 등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뒤늦게 전면에 부각한 것이다. 당시 소위에서 김현권 의원은 “지금 농식품부의 입장 발표는 입장 선회로 이해된다. 명백히 부처가 위원들을 농락하고 있다”며 “그동안 농식품부는 직선제를 수용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연말에 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숱하게 얘기해 놓고 이제 와 가지고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장난치는 것이냐”라고 질타했다.

이어 11월 18일 법안소위에서 농식품부가 부가의결권에 대해 부칙에서 규정으로 정하고 법 시행 이후 세부 도입 방안을 마련하자는 수정 의견을 내놓기는 했지만, 부가의결권과 연임 허용 문제 등과 맞물려 법 개정에 미온적인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반대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와 농협조합장 ‘정명회’ 등은 2019년 11월 28일 국회 기자회견을 열고 “부가의결권을 선결 조건으로 주장하며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무산을 사실상 주도한 농식품부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9월 24일 농특위 2차 본위원회에서 농식품부 차관이 참가한 가운데 선결조건 없는 중앙회장 직선제 개정에 찬성해놓고도 국회 법안심사과정에서 계속해서 선결조건 운운하며 직선제 개정에 제동을 걸어왔”다며 “뿐만 아니라 농식품부가 부가의결권 도입에 진정성이 있었다면 실제 이를 도입하기 위한 세부방안 마련 등 입법 준비도 했어야 하지만 지난 1년간 농식품부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농식품부가 직선제를 반대하기 위한 명분용으로 선결조건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나 의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농협 조합장들이 모인 정명회의 국영석 회장(완주 고산농협 조합장)은 “농협법 개정이 무산된 상황은 농식품부가 부가의결권 적용 등 이런저런 이유를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며 “21대 국회에서는 토론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농업계 의견을 모아 세부적인 안을 만들어 이를 국회에 제안하고, 반드시 법 개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언론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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