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의 전국 투표율은 66.2%로 28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과 참여 속에 치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농업계에서는 2000년대 들어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안았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한 농민 후보들은 줄줄이 낙선했고, 농업계 비례대표는 단 1석도 배출하지 못했다. 농업계 비례대표가 나오지 않은 것은 2000년대 들어 18대 국회에 이어 두 번째다. 거대 양당 체제로 회귀하며 그나마 농민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소수정당들의 입지도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농업의 정치적 위기”라는 진단이 의미심장하다. 총선 대응에 미흡했던 농업계의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각당 당선권 밖 ‘생색내기 배치’
농어업 비례대표 1석도 안 나와
농민 대변 소수정당 입지도 ‘뚝’

코로나 사태 속 농업의 역할
스스로 제기하지 못하고
현안별 갈라진 농민단체 등
“내부 들여다봐야” 진단 주목


▲부진한 성적표, 이유와 진단은=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농업 홀대’, ‘농업 패싱’이라는 반응이 많다.

고문삼 한국농업인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직능별 대표로 참여하는 비례대표의 경우 각 정당이 농업 분야를 홀대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먹거리의 중요성을 얘기하지만, 정작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에 대한 배려는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임영호 한국농축산연합회 회장도 “정당들이 한 표라도 끌어 모으기 위해 당장 눈앞의 선거 현안에만 매몰됐다는 점이 아쉽다. ‘인재영입’을 통해 청년, 장애인, 변호사 출신 후보들을 당선권에 배정했지만, 농업 분야는 당선권 밖에 배치해 생색 수준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이번 총선에는 세대별·직능별 대표성을 띤 후보자들이 다양했지만, 농어업 분야 후보자들은 당선권 밖으로 밀려났다. 아예 배정하지 않은 정당(미래통합당)도 있었다. 청년, 장애인, 시민사회단체, 언론, 법조, 의약, 소방공무원, 전직 고위 관료, 전 국회의원 등 다양한 후보군 중에 농어업 비례 후보자가 설 자리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농어업 분야를 비경쟁 부문이 아닌 일반경쟁 부문으로 분류하면서 다른 분야의 후보들과 경쟁을 펼쳤는데, 인지도 등에서 큰 차이가 벌어져 선거인단 등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데 한계를 보였다. 농업계 비례대표가 나오지 않은 것은 2000년대 들어 18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가 두 번째로 기록됐다.

이런 가운데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농업계 ‘내부’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진단이 주목된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는 “농업의 정치적 위기”라며 “처음에는 농업에 대한 무관심, 맹탕 등의 표현을 했는데, 근본적으로 농업계의 정치력이 굉장히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농업의 정치력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봤다. 

김태연 단국대 교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원인을 찾았다. 김 교수는 “총선 과정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해 농업 문제를 제대로 이슈화시키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에서 농업이 무슨 역할을 할지에 대해 농업계 스스로 제기하지 못했다”면서 “‘농업 홀대’라고 얘기하기보다는 농업이 어떻게 필요한 것인지 정치권과 국민에게 다가가 설득하려는 노력을 농업계가 하지 못한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농민 단체도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김제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총선 결과를 보면 농민들이 농업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접근한 것처럼 보인다”며 “농민들이 힘을 모아야 하는데 현안별로 단체 간의 목소리가 갈린다. 총선을 앞두고 단체들이 연대해 대응하지 못한 측면도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고문삼 상임대표는 “농업을 실질적으로 챙기는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데 농민단체의 힘을 모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임영호 회장은 “농민 단체들이 결집되지 않다보니 선거판에서 이용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적 힘 모을 제도적 방안 마련…단합된 목소리도 필요”

거리 투쟁 등의 방식 아니라 
농업회의소 같은 제도 마련을

‘농민=피해자’ 프레임 벗어나
농업·농촌의 장점 이해시켜야

부문별·직능별 구분 추천 통해 
농업 비례 후보 당선권 배치를


▲21대 총선이 농업계에 던진 숙제는=이 같은 진단은 21대 총선이 농업계에 던져준 과제들이다.

농업의 정치력 회복을 위해서는 제도적인 틀 속에서 실질적인 실행 방안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양승룡 교수는 “농업의 정치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농민단체들의 거리 투쟁 등의 방식이 아니라 제도적인 틀 안에서 공고한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테면, 농업회의소는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정치력 회복의 실천방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또 “농업계의 단합된 목소리가 필요하다. 쌀 정책이나 직불제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정치적인 힘을 갖지 못하고 정부가 하는 대로 무기력하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농민 단체들이 모여서 문제를 논의하고 의견을 단일화할 수 있는 창구나 기구 같은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연 교수는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경제발전과 수입개방으로 농업농촌 분야의 피해가 크고 농민들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보조를 해줘야 한다’는 식의 지금까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농업과 농촌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리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농업개혁위원장인 김호 단국대 교수는 선거제도의 후속 보완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준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됐지만, 거대 양당들의 꼼수로 취지가 왜곡돼 소수정당들이 피해를 본 것 같다. 제도 개선 작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후보 선출과 관련해서도 “선거인단을 확대해 선출할 경우 농업 분야는 당 내 입지가 좁고 농업 인구 역시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농업 분야의 불이익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부문별, 직능별로 구분해 농업계에서 추천하는 인사를 농업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권에 전략 배치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봤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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