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집합·강의·주입식 교육은 줄이고
평생학습·주민자치 관점 부각 시켜야
사실 농촌 주민에 배울 것 더 많아

농촌에 ‘역량 강화’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행정의 정책사업을 새롭게 시행할 때마다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로 계속 확대되어 왔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이런 교육이 없어 일부는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일부는 환호하기도 한다.

마을회관이 폐쇄된 탓도 있지만 교육의 필요성을 주민들이 크게 느끼지 않는 상황에서 ‘불려가야 하는 자리’가 너무 많았던 탓이 크다. 이런 교육을 여러 번 반복하면 실제로 역량이 높아지는 것인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언젠가는 달라져 있을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농촌 활동을 하면서 들은 말 중에 “농민은 말로 설득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느껴야 행동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크게 남았다. 말로 설득당하는 사람은 지식인이고, 농민은 철저하게 실사구시(實事求是)가 몸에 밴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마을공동체 활동이나 6차산업, 도농교류, 귀농귀촌 등의 정책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현재와 같은 교육방식으로 주민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실천해보고(몸을 움직여보고) 그 결과가 필요하다 느끼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며, 또 보람도 있을 때 정부 정책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적어도 이제는 주민교육의 관점이나 방법론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주민교육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집합식, 강의식, 주입식 교육은 최소한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컨설팅 기관을 통해 바쁜 농번기에 재미없는 강의를 듣게 만드는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한가한 겨울철 농한기는 예산 시기 때문에 맞지 않다 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은 사업지침 때문에 할 수 없다 하고, 교육 마친 후에 다시 찾아와 달라 하면 돈이 없다 하고. 정책이 현장에 부합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역량강화사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사실은 농촌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더 많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슬로건이 슬로건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소위 전문가도 공무원도 컨설턴트도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이런 점에서 주민교육은 항상 상호교육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많이 배운 전문가라는 이유로 주민들 앞에서 일방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책의 흐름이나 지침 해석, 타 지역 사례 등 잘 하는 부분이 있을 뿐이다. 정책이 아무리 필요성이 높고 중요하다 해도 현장 주민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정책이 시행되는 현장의 복잡한 상황은 주민들이 훨씬 잘 안다.

이런 점에서 주민교육이란 용어보다 평생학습이나 주민자치란 관점이 더 중요하다. 주민들이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 공부하고 실천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을 행정은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주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고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자치역량을 키우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다. 농촌 현장 가까이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권한과 책임을 읍면으로, 주민으로 이양하는 자치분권이 더욱 강력하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지난 3월 25일에 농촌정책 측면에서는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다. 농식품부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 5개 부처가 '지역사회 중심의 정책 연계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것이다. 재작년 9월에 3개 부처가 먼저 체결한 '지역사회 중심의 자치, 돌봄, 재생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에 교육부와 농식품부가 추가로 참여한 셈이다. 이를 통해 그 동안 ‘정책 칸막이’에 갇혀 있던 주민자치회, 마을교육공동체, 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 도시재생, 사회적농업 등의 공공서비스를 서로 연계할 수 있는 계기가 강화되었다.

농식품부가 사회적농업 영역만 협약에 참여하여 아쉽지만 앞으로 농촌정책의 전체 영역으로 확장돼 중앙부처 내부의 협력체계가 더욱 강화되기를 바란다. 이를 계기로 농촌정책이 주민자치회 전환과정과 함께 하고,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과도 협력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읍소재지의 도시재생과 중심지활성화 사업도 어떻게든 연계해볼 수 있게 되었다. 농촌복지가 보건복지부 통합돌봄 정책과도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정책 전환이 단순히 선언에 끝나고 말지, 농촌정책의 획기적 전환점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금의 농촌 상황을 극복하는 데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이런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읍면 주민자치(위원)회의 역량에 달려 있다. 농촌정책이 주민자치회와 만나 사회적경제(농업), 푸드플랜, 농촌복지, 마을교육공동체 등 다양한 정책 영역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모든 읍면마다 발전계획을 주민 스스로 수립하고, 주민총회를 통해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필요한 예산은 주민참여예산제로 확보할 수 있다. 이런 방향의 역량강화 교육(학습)이 이제는 꼭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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