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동락점빵’의 백미는 단연 이동점빵차량 운행이다. 개조된 탑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주2회 묘량면 42개 자연마을을 돌며 주요 거점에 작은 장터를 여는 것이다. 마을 어귀에 가까워지면 녹음된 방송을 튼다. “동락점빵 차량이 왔어요….”

묘량면에는 나름 유명한 ‘빵’이 있다. 방송과 신문에도 제법 나왔고 여러군데서 벤치마킹하러 많이 다녀갔다. 어떤 지자체는 이미 다른 이름으로 비슷한 사업을 시작했다.

그 이름은 바로 ‘동락점빵’이다. 여민동락을 방문하는 위쪽 도시 사람들은 대부분이 묘량의 특산품 또는 여민동락이 개발한 신제품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동락점빵에는 무슨 속고물이 들어가나요?” 묻기도 해 이제 소개를 시작하면 처음부터 이야기한다. “점빵은 먹는 빵이 아니고 구멍가게의 남도지방 사투리입니다.”

이곳은 유달리 과소화가 심각해 막걸리 한 병 사먹기 힘든, 참 살기 팍팍한 곳이다. 젊은 사람들이야 차가 있으니 읍내 대형마트도 마음 먹으면 바로 갈 수 있고, 수시로 온라인 쇼핑도 하지만 어르신들에겐 언감생심이다. 교통 불편, 거동 불편으로 읍에서 장 한번 보고 들어 오려면 한나절이 순식간에 지나고 좀 욕심을 부렸다간 가지고 들어올 일이 갑갑하다.

어르신들 수다의 주요 소재인 옛날 옛적 이야기를 듣다보면 여기도 있을 건 다 있었고, 각종 이동판매차량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보충했다. 또한 교통이 조금 불편해도 몸이 건강하니 인근 바닷가에 가서 백합도 잡아먹곤 했다는데 이젠 자식들이 오지 않는 이상 가긴 어려운 일이 되었다.

과학과 도로망이 발달하고 인터넷이 생기면서 세상은 좀 더 편해진 것 같지만 농촌은 갈수록 소외되고 떠나는 자, 남는 자로 갈리면서 관계는 끊어지고, 결국 무얼 해도 지속하기 어려운 그런 곳이 되고 말았다. 답답한 마음에 시범이동 5일장이니 뭐니 하면서 여민동락 경차가 발이 되어드리고 심부름꾼도 자처했지만 인력과 재정의 한계로 갈수록 아쉬움만 더했다.

개조된 탑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묘량면 42개 자연마을을 도는 이동점빵차량. 마을 어귀에 자리를 잡은 이동점빵차량은 삼삼오오 나오신 마을어르신들로 금세 시끌벅적한 마을 장터가 된다.

어떻게 하면 옛날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르신들의 일상에 활기를 불어 넣고 좀 더 여유롭게 자기 삶을 선택하며 살게 할까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소재지 유일한 구멍가게마저 사라졌고 결국 젊은 몇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기초 생필품과 먹거리를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공급하는 사회서비스형 유통사업단 ‘동락점빵’을 만들었다.

‘동락점빵’의 백미는 단연 이동점빵차량 운행이다. 개조된 탑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주2회 묘량면 42개 자연마을을 돌며 주요 거점에 작은 장터를 여는 것이다. 마을 어귀에 가까워지면 녹음된 방송을 튼다. “동락점빵 차량이 왔어요. 두부, 콩나물~~~ 필요한 것은 다 있으니 경로당 앞으로 나오세요.” 차량 위 스피커에서 큼지막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 삼삼오오 경로당 앞으로 마을어르신들이 나오신다.

곧바로 시끌벅적한 대화가 정신없이 오고간다. 따발총마냥 서 너 가지 물건을 연달아 부르며 돈부터 꺼내는 어르신부터, 저번에 산 물건이 별로였다느니, 명칭과 용량까지 알려주면서 다음번엔 이걸로 갖다 달라는 사전 주문까지 각양각색이다. 초창기엔 하도 정신이 없어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이제 능숙한 점빵 담당자는 하나하나 차분히 응대하며 계산기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다.

사람이 없을 땐 한 마을에 최소 5분 이상은 기다린다. 거동이 불편하니 집에서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고 보행차를 끌고 나오는 시간이 솔찬하다. 마을 뒷산이나 근처 텃밭에서 일하고 계실 땐 마음이 급하다. 집에 가서 현금을 가져와야 하는데 울퉁불퉁한 흙바닥에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외상이다.

당연히 오래된 점빵 차량에 무슨 전산 시스템이 있을 리 없으니 치부책에 어르신 성함이랑 구매 물품을 빠짐없이 적는다. 말 그대로 옛 방식이지만 포인트도 적립돼 어르신들이 더욱 꼼꼼히 체크한다. 연말에 5000 원짜리 동락상품권으로 발급되니 놓칠 수가 없다. 만에 하나 10초라도 빨리 출발하면 점빵 매장의 전화기가 불이 난다. “그세 못 참고 갔냐”며 빨리 돌아오라고 타박하신다.

물론 이동점빵은 생필품과 먹거리만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스레 어르신들의 일상을 여쭙고 시시때때로 수다에 호응하며 점빵 차량을 세워놓고 장단을 맞춘다. 그동안의 호의에 답례를 한다며 같은 마을 젊은 주민 집에 소주 한 박스를 몰래 갖다 놓으라는 특명도 받고 마을 곳곳에 쌓인 빈 병을 팔아 마을기금으로 돌려 드리기도 한다.

무슨 종이딱지를 조용히 주면서 “이게 뭔 말인가?” 물어보는 어르신을 안심시켜드리는 일, 일주일간 못 딴 병 뚜껑을 열어 드리는 일, 한 두가지가 아니다. 거동이 많이 불편한 독거어르신 댁에 방문할 땐 좋아하시는 우유와 계란을 넣어드리며 집안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노인복지센터 사회복지사를 연결시키기도 한다. 벌써 동락점빵 10년차다. 시작부터 별의별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지역의 젊은 이웃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요즘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풍경이 조금 바뀌었다. 어르신들의 감염 위험 때문에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문이 모두 잠기면서 개별 구매가 많이 늘었다. 이동경로도 어르신들이 서 너 명씩 모여 있는 햇볕 잘 드는 곳, 마을 사랑방, 정류장으로 조금씩 수정되고 있다. 또한 최근 도시의 손자녀가 코로나를 피해 시골로 내려오면서 갑자기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몰려오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들이라 조금은 당황스럽고 이마저도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몰라 우선 지켜보고 있지만 예사롭진 않다. 나름 시골살이 13년째, 암울하지만 예상되는 경로를 밟아가던 농촌의 현실을 대비해 이것저것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준비를 좀 더 빨리 앞당기라는 것인지, 전혀 다른 모색을 하라는 것인지 헷갈리고 있다. 늘 위기는 사회적 약자들과 취약한 곳을 가장 먼저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던가!

어찌되었든 10년간 무너지지 않는(?) 마을기업으로 연명 중인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다음번에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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