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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 특별대담] “지금 농업 문제는 생산량 부족 아니라 농민들 가난한 것”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ㆍ고성진 기자]

▲ 강단에서 농민과 농촌의 중요성을 설파해왔던 이영석·윤석원 교수는 현장 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판매’라면서 정책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개방농정이 본격화된 지 40년. 대한민국 발전의 근간이 되어온 한국의 농업·농촌은 심각한 고령화와 과소화로 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농정 틀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집권 4년차인 지금 실질적인 농정 개혁은 갈 길이 멀다.

한국농어민신문은 창간 40 주년을 맞아 평생을 연구자와 대학교수로 지내다 퇴임 후 농촌으로 내려가 지금은 ‘농부’가 된 학자 두 분을 모셨다. 남원에서 오미자 농사를 짓는 이영석 전 한국농수산대 교수와 양양에서 사과 농부로 사는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농어민신문과는 독자로, 필자로 인연을 맺어왔다. 

두 분은 농업 현장으로 내려가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이고 싶었으나 농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또 정부의 농업정책이나 학자들의 이야기가 농업 현장과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일시 : 2020년 3월 18일 수요일 오후 2시
장소 : 한국농어민신문 3층 회의실


 

▲이영석 전 한국농수산대 교수   
이영석 전 한국농수산대학 교수는 전남대학교와 독일 하노버대학에서 공부했고, 1983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근무했다. 한국농수산대학의 3년제 과정 설치와 장기 현장실습, 전교생 해외연수과정 개발 등 개교 준비 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다. 이후 공통 교양과에서 ‘농업경영학’을 가르쳤다. 2011년 퇴임 후 전북 남원으로 귀농, 오미자농사를 지으면서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맡고 있다.


사회=이상길 한국농어민신문 논설위원

‘평생 해왔던 말, 실천해 보자’
농촌 내려와 친환경농사 도전
고단한 현실 뼈저리게 깨달아

농민에게 필요한건 ‘경영’인데
정부 정책은 여전히 ‘생산’ 초점
현장과 괴리된 학문풍토 문제

사회(이상길 논설위원)=이영석 교수님은 1980년 창간된 농산물유통정보지를 1호부터 스크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한국농어민신문 40년의 의미에 대해 짚어주시죠.


▲이영석=당시 스크랩은 내가 필요해서 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초반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보니 다들 아무 계획 없이 농사를 짓고 있는거에요. 그때그때 농산물 가격에 따라 대박도 쳤다, 깡통도 찼다 하는 식이였죠. 영농계획을 세우려면 가격정보가 필요한데 당시 대한민국에는 가격정보가 없었습니다. 그때 유일한 가격자료가 농산물유통정보였어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안하니, 민간에서 하는구나’ 했죠.

-정확도는 어땠습니까.

▲이영석=비교해 볼 자료가 없으니 믿을 수밖에요.(하하). 어쨌든 그나마라도 있어서 중요한 근거자료가 됐습니다. 농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확한 정보,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은 지금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유통정보를 농가에 제공한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원=초창기 유통정보지는 4/6배판, 타블로이드판으로 나왔었죠. 이후 한국농어민신문으로 거듭나면서 지난 40년간 한국농정에 대한 비판과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균형감각을 가지고 합리적인 대안 제시에도 앞장서 왔고요. 저도 필자로서 10여년 참여하면서 거의 한 달에 1~2번씩 글을 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마흔살이 된 한국농어민신문의 창간을 축하드립니다.

-두 분 교수님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도 같이 계셨고, 각각 한국농수산대와 중앙대에 계시다가 귀농하셨습니다. 농과계열 교수님 중에서는 거의 드문 일인데요. 귀농을 하게 되신 계기를 먼저 이영석 교수님이 설명해주시지요.

▲이영석=우리 중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서 농업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농업 선생님이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해주셨어요.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힘에는 돈에서 나오는 금력, 그 다음이 권력,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실력, 이 세가지가 있다. 그런데 권력은 누구하고 나눌 수가 없고, 금력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 참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력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고, 누구한테 빼앗길까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실력을 쌓아라.” 그 말이 제게 딱 꽂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대를 갔던 건 그 농업 선생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독일로 건너가 원예경영학을 전공할 때는 돌아와 농사를 지을 요량이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집안에 농사지을 땅 한 필지가 없는거에요. 그래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들어가게 됐죠. 이후 최양부 박사(전 청와대 농림해양수석비서관)와 함께 우리나라 유일의 농군사관학교인 ‘한국농업전문학교(현 한국농수산대학)’ 설립의 밑그림을 그렸고, 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귀농을 한 건 원래 농사짓는 게 꿈이기도 했고, 내가 유난히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선생이었거든요. 학점도 잘 안주고. 현직 때 그렇게 입으로 떠들었으니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헌데 오미자 농사 8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헤매고 있습니다.

-윤 교수님 퇴임식은 저도 갔었는데요. 40년 동안 농정 비판과 대안 제시에 앞장 서 왔는데, 농민 현실은 더 어려워졌다면서 농민 팔고 호도하는 ‘기생충’이 될게 아니라 농촌으로 들어가는 게 옳다라는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윤석원=제가 농업경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평생 농업·농촌·농민이 소중하다, 이게 없으면 나라꼴이 안 된다고 얘기해 왔어요. 그걸로 먹고 살았죠. 그러니 적어도 은퇴한 이후에는 농촌에 가서 사는 게 옳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사람 설득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에 사실 처음엔 귀촌이 우선이었고, 귀농은 가볍게 생각했어요. 바다가 보이는 쪽에 땅이 나서 샀는데, 그게 600평이나 되는거에요. 기왕 귀촌을 했고 땅도 있으니 농사도 한 번 지어보자, 그렇게 된거죠.

-작년 봄에 알프스오토메 사과농사를 냉해로 망치고, 올해부터는 시나노골드랑 부사를 심으신다면서요?

▲윤석원=뭣도 모르고 농사일을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농사일이라는 게 적당히가 안 되더라고요. 친환경 농사짓기가 다른 것보다 수월할 거라는 말에 알프스오토메를 선택했는데, 처음엔 쑥쑥 잘 컸죠. 3년 만에 열매를 따서 200만원 벌었어요. 그런데 지난해 냉해를 입은거에요. 한순간에 꽃이 다 떨어지더라고요. 나는 그게 냉해인지도 몰랐어요. 그렇게 3년 공 들인 게 망하고 나니까, 마음이 떠나서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방제도 안하고, 전지도 안하고 내버려뒀더니 벌레가 나서 난리가 났죠. 화학비료, 농약 안 쓰고 농사를 짓는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되게 어려운 일인지 알겠더라고요. 친환경농업을 직접 해보니 농사지어 먹고 살겠다는 이에게 친환경농업을 권하기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애로사항입니다.

-이영석 교수님도 남원에서 친환경으로 오미자 농사를 짓고 계시죠?

▲이영석=2011년 정년퇴직 후 내려와 북사면 비탈밭 2000평에 오미자를 심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유기농을 계획하고 무농약으로 시작했죠.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제 영농기술은 많이 터득했는데, 여전히 판매가 문제에요. 오미자가 특용작물로 한참 잘 나갈 때 오미자작목반을 만들고 오미자청으로 가공, 브랜드화해서 수출도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조직화가 쉽지 않더라고요.

-마을기업도 만들지 않으셨나요?

▲이영석=귀농 2년차인 2013년에 이장과 주민들에게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흥부마을 휴양체험사업을 맡게 됐어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70억 원을 들여서 권역단위 개발사업을 해 놓은 건데 다목적 회관만 근사하게 지어놓고 운영이 안되는거에요.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2015년 행안부 마을기업 사업을 유치, 마을에서 생산되는 들깨 전량을 수매해 들기름과 생들기름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3년 만인 2017년 첫 출자배당(3%)을 했고, 그때부터 매년 2.5%씩 배당을 하고 있어요. 매우 더디게 가고 있지만, 마을기업은 ‘대박’이 아니라 마을과 함께 꾸준히 살아남는 게 목표에요. 공장에서 전량 수매해 주니까, 농민들도 힘 닿는 데까지 농사를 지어요. 지난 5년간 들깨 재배면적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도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강의실에서의 농업경제학과 농사를 지으면서 경험하는 농업경제학은 다를 것 같습니다.

▲윤석원=제가 1970년대 대학을 다닐 때는 농업경영학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9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서 박사학위를 받고 들어오는 교수들 주전공이 대부분 농업경제학인거에요. 그러면서 학문의 주류가 농업경영학에서 농업경제학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의 농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영’이거든요.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어디다 어떻게 팔 것인지, 이게 다 경영학에서 다루는 분야죠. 경제학, 특히 미시경제학은 현장과 하나도 맞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기생충’이라는 표현을 쓴 건 그 때문이에요. 맞지 않는 학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걸 가르쳐 먹고 살았거든요. 농민들은 금년 봄에 뭘 심을지, 가을에 가격은 어떻게 될지, 당장 그게 고민인데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거죠. 최근의 공익형직불제도 마찬가지에요. 현장에서 듣고 있으면 먼 나라 얘기같이 들려요. 정부는 나름대로 노력해서 좋은 정책이라고 내놓는데, 왜 농민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중앙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시피 주립대에서 공부한 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거쳐 1988년 중앙대에 부임, 28년간 재직했다. 지난. 2016년 정년 2년 반을 남기고 조기 퇴임해 현재 강원도 양양 로뎀농원에서 친환경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 중앙대 산업과학대학 학장, 한국농업정책학회 회장, 경실련 농업개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중소농 농산물 잘 팔아주는 시스템 구축이 가장 필요”

돈벌이·교육 가능해야 귀농
시장서 ‘을’처지 벗어나려면
각자도생 말고 조직화해야

‘농지·농협·농정’ 3농문제 해결
수도권 개발사업 중단해야
도시·농촌간 균형 발전 가능

-경영학 전공자로서 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영석=100% 동의합니다. 경제학은 모든 것을 제3자의 시각에서 보지만, 경영학은 당사자의 시각에서 보는 학문입니다. 농민들 입장에서 경제학은 제3자를 위한 학문이지, 농민을 위한 학문이 아닌거죠. 예를 들어 정부 입장에서 유통은 ‘원활한 수급’이 목적이지, 그 과정에서 누가 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는 두 번째 관심사항이에요. 하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이익을 많이 남겨 파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영체로서 계속 존립하고, 성장·발전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농업경영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이 없어요. 지금 농업의 문제는 농산물 부족이 아니라 농민들이 가난한 게 문제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죠. 경영학적 관점에서 ‘농가가 뭘 어떻게 해야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느냐’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나 지자체의 귀농정책에 대한 생각은 어떠십니까?

▲윤석원=제가 63세에 귀농을 했는데 노인회 소속이 아니라 청년회 소속이더라고요. 과소화,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에 귀농귀촌이 늘어나고 젊은이들이 들어오는 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요. 하지만, 귀농한 사람은 농촌에서 10년이 지나도 귀농인입니다. 그만큼 섞이기가 어렵다는 얘기죠. 농촌 내부의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또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농촌에서는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 수가 없어요. 제 주변에도 농사지으러 내려왔다가 투잡, 쓰리잡 뛰면서 죽을 고생 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호미 한 번 안 잡아본 청년들한테 컴퓨터로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다면서 ‘스마트팜’을 하면 된다고요? 농사가 그렇게 쉽게 될까요? 제 생각에 귀농귀촌은 우리나라에서 출산율 높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입니다. 자기 아들 보고 농사지으라고 권할 자신 없으면, 남의 아들한테도 함부로 농사지으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죠.

▲이영석=귀농정책을 추진하려면 장래 우리가 원하는 농업·농촌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밑그림이 필요한데, 지금 정부 정책은 사람들이 내려오니까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줄 것인가, 뒤쫓아가는 느낌이에요.

제가 볼 때 귀농이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돈벌이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각자도생’으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시장경제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조직화’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상업자본에 빼앗긴 농산물 가공, 유통, 판매를 다시 찾아오면, 가공 전문가, 포장 전문가, 수출 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그 자리에 귀농귀촌인력이 들어갈 수 있죠. 그렇게 농촌에서 농가와 비농가가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농정이 4년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다고 보십니까?

▲이영석=크게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사람 중심의 농정을 천명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농업의 다양한 기능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익직불제 외에 ‘사람 중심 농정’을 실현하는 구체적 정책수단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농정 기조를 바꾸는 일은 임기 5년을 다 써도 모자란데, 이를 자문할 농특위 출범이 너무 늦었다는 점에서 아쉽습니다. 개혁 방안이 나올 때쯤이면 차기 대통령 선거가 코앞일 텐데 이렇다 할 농정의 변화가 가능할지 회의적이죠.

▲윤석원=사실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동안 농정의 변화를 요구하던 사람들이 청와대나 농특위에 많이 들어가 있음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결국은 관료집단의 타성이 관철되고 있다고 봐야지요. 무슨 얘기를 해도 정책이 크게 바뀌지 않고, 여전히 스마트팜 얘기가 농정의 주축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현장에서 가장 심각하게 느끼신 문제가 있다면요?

▲이영석=지금 농민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욕 상실과 패배감입니다. 현재 농촌에 남아 있는 고령농가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거든요. 하우스 농사도 지어보고, 포장 개선도 해 보고, 전자상거래도 해보고, 온갖 마을사업들도 다 해봤는데, 돌이켜보니 나아진 게 별로 없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패배감이죠. 그러니 아무리 지원을 해 준다고 해도 뭔가 새롭게 투자할 의욕이 없습니다. 있는 것이나 지키면서 조용히 살다 가면 되지, 이렇게 되는거죠. 매년 농업예산 불용액이 상당한 건 이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산당국에서는 돈을 줘도 못 쓰면서 왜 예산을 더 달라고 하냐는 이야기가 나오는거죠.

▲윤석원=이웃에 10년이 넘게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민이 있는데 이태 정도만 수익을 보고 거의 수익을 못 보고 있어요.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온 40대 부부 두 쌍은 농사는 농사대로 지으면서 살림이 안되니까 낙산해변에서 치킨집을 해요. 4명이서 뺑뺑이를 도는 거죠. 농업으로 먹고 살려고 어렵게 귀농했는데, 현실은 이런 거에요. 우리가 30~40대한테 농사지어서 살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겠느냐. 그걸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이대로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 돌아가시면 마을은 소멸위기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규모가 있는 농가는 살아남겠지만, 중소농·고령농은 사라집니다. 제가 사는 지역도 밭농사의 2/3는 그냥 놀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현장에 있으면 그런 위험이 피부로 느껴지죠.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농민에게 꼭 필요한 농업정책은 무엇일까요?

▲윤석원=농사를 지으면서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예전에는 농정의 최우선 과제가 뭐냐고 물으면 농정철학이 바뀌어야 한다,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건 학자들이나 하는 소리입니다. 농민들한테 가장 필요한 것은 생산한 농산물을 잘 팔아주는 시스템이에요. 대농들은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판로가 있지만 중소농은 힘듭니다. 중소농이 생산해 낸 농산물을 팔아주는 것에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하라고 주문하고 싶어요. 공익직불제 확대도 필요하고, 농민수당 도입도 좋지만, 제일 앞순위는 ‘팔아주는 시스템 구축’입니다. 팔 데만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낮없이 농사를 짓는 게 우리나라 농민들입니다.

▲이영석=우리 농업의 문제는 농산물은 충분한데 그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가난하다는 데 있습니다. 농민들의 생산기술 수준은 다른 나라에서 배우러 올만큼 상당히 높습니다. 하지만 농산물 시장에서 농민들은 ‘을’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농산물을 생산 공급하는 다수의 농민들이 소수의 유통업체에 적절히 맞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거죠. 결국 해법은 출하농민들의 조직화라고 생각합니다. 조직화를 통해 농민들의 시장교섭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지 않으면 어떠한 노력이나 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농협 개혁이 중요하겠군요.

▲이영석=그렇죠. 농협이 유럽의 농협들처럼 제 역할을 했다면 지금 농가소득이 30% 정도는 더 올랐을 겁니다. 독일의 협동조합에는 3가지 원칙이 있어요. 첫째. 전량납품의 원칙. 이걸 안 지키면 조합원에서 제명시켜요. 둘째. 전문가 경영의 원칙. 조합일은 농민이 아니라 전문가가 합니다. 대신 인사권을 농민조합원이 갖고 있기 때문에 조합의 경영진은 조합원에게 충성하죠. 마지막으로 생산조정의 원칙. 자기의 생산계획을 조합에 제출하고 조합에서는 그걸 종합해 판매계획을 세우고 생산 조정도 합니다. 그래야 다같이 삽니다. 그런데 우리 농협은 산지시장을 민간유통업체 벤더들에게 다 뺏겨버렸어요. 그래놓고 엉뚱하게 소매시장에서 하나로마트 사업을 하고 있죠. 

우리도 독일의 농협처럼 농협 임직원에 대한 임면권을 농협의 주인인 조합원이 갖도록 하면 농협 임직원들이 조합장이나 중앙회장이 아닌 조합원들에게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를 통해 경제사업, 특히 공동판매사업이 지역농협의 핵심사업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윤석원=그동안 농협개혁위원회를 2번 참여해봤는데, 될 듯 될 듯하다가 끝에 가서는 결국 안 되더라고요. 그만큼 농협의 힘이 셉니다. 농협중앙회장을 뽑는데 누가 나왔는지, 무슨 주장을 하는지 조합원인 농민들은 모르잖아요. 그런 협동조합이 어디 있습니까. 현재의 농협은 조합원하고는 별개의 조직이나 마찬가지에요. 오만가지 사업을 다 하면서 자기네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죠. 오죽하면 농협 개혁을 하느니 아예 다른 조직을 만드는 게 더 빠르다는 얘기가 나오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나둬서는 안되죠. 이대로 두면 중소농, 고령농은 거의 없어질테고, 농촌은 소멸위기로 갈 수 밖에 없으니까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윤석원=더 늦기 전에 3농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농지, 농협, 농정, 이 세 가지를 바로잡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농업은 어렵습니다. 농지와 관련해선, 최근 농지 전수조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충분히 조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비농업인 농지 소유 문제와 투기 수요를 근절해야지요. 농협은 개과천선을 하든지, 정말 아니면 새로운 무엇을 만들던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고요. 농정은 현장을 잘 모르면서 스스로 엘리트라고 착각하고 있는 관료 집단의 혁신이 시급합니다. 하나 더 얘기하면 학계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농업경제학 뿐만 아니라 농업경영학, 농촌사회학도 정책에 반영이 되어야죠. 이게 안 되면 정책에 대한 다양한 평가, 다양한 시각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이영석=제 생각에 이제 농업·농촌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고 봅니다. 때문에 비농업부문의 해법이 필요한데요. 먼저 전국의 농어촌 주민들의 삶의 질이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질 때까지, 대도시(특별시와 직할시), 특히 수도권의 모든 개발사업을 중단해야 합니다. 모든 개발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면 수도권은 ‘과밀이 과밀을 해소하는 단계’에 이를 것이고, 농어촌 지역엔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둘째. 국회 양원제 도입을 검토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면 농민을 대변할 국회의원은 안 나와요. 지역 대표를 한 명씩 뽑든. 과도기적으로 시·군의회 의장을 당연직으로 하든 ‘상원’을 두고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는 의안을 붙여서 농민 목소리를 반영하라는 겁니다.

셋째. 읍면장 직선제를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시장군수가 임명해 2년 정도 있다가 돌아가는 임명직 읍면장으로는 지역 발전이 어렵습니다. 지역 주민 손으로 직접 뽑은 선출직 읍면장이라야 연임도 할 수 있고, 더 책임있게 지역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윤석원=이 선생님 말씀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제 국가 균형발전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균형 발전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도시와 그 주변 농촌지역이 활성화되어야지, 농촌은 제껴놓고 혁신도시 만들어서 공공기관 이전하는 방식은 결국 도시 하나를 더 만드는 것뿐입니다. 땅값만 올려서 부동산 공화국이 되는거죠. 농촌을 어떻게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바꿀 것인가를 고민할 때입니다.

정리=김선아·고성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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