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 농정전문기자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전쟁과 다름없다. 심지어 새로운 세계대전이라고도 한다. 코로나 19 유행으로 ‘팬데믹’(pandemic)이 선언된 이 세상의 모습이다. 만남과 접촉이 끊어지고, 의심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봉쇄와 격리, 타인에 대한 배제와 회피가 일상화됐다. 한 겹 마스크 속에서 빛나는 눈빛들은 경계와 불안으로 빛나며 드라마에서처럼 ‘타인은 지옥이다’를 외치는 듯하다. 거리엔 사람이 줄었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사회, 경제가 모두 멈춰 섰다.

농촌의 피해도 크다. 졸업식, 입학식이 취소되고, 개학이 미뤄지자 농산물 판로가 막혀 깊은 시름에 빠졌다. 농촌의 축제 또한 모조리 취소되고, 찾는 발걸음도 드물어 농촌관광은 중단되다시피 했다. 감염을 막기 위해 경로당과 마을회관, 노인복지회관, 노인대학, 경로식당, 공중목욕장 등 노인시설이 모두 ‘셧다운’되면서 고령 독거노인들은 끼니마저 위태롭다.

이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 지는 아무도 속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힘을 합쳐 대응해야만 어느 시점에서 종식되리라는 점이다. 도를 넘는 불안이나 근거 없는 낙관보다는 서로 조심하고 이해하면서 이 불편과 불안의 시간을 넘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그리고 이 세계는 이대로 좋은지, 지속 가능한 지, 어떻게 가야 하는 지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도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 대해서는 벌써 많은 이들이 시장과 사회 시스템을 얘기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나타난 변화는 비대면과 회피다. 실행 가능한 영역에서는 재택근무, 온라인 강의가 진행된다. 무인화, 자동화, 디지털 경제에 관심이 쏠린다. 사람이 몰리는 방식의 대형마트와 쇼핑몰 같은 방식은 몰락하고 유통은 온라인으로 재편되고 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이른바 4차산업 혁명이 떠들썩하게 조명된다. 만남과 모임을 통한 사람들의 전통적인 관계방식, 그리고 그와 관련된 시장은 쇠퇴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를 계기로 4차산업 혁명이 급진전되고, 각자도생과 양극화, 고립과 배제라는 질서가 심화될 것인가?

하지만, 이런 생난리 속에서도 희망은 4차산업 혁명이 아니라 사람들과 공동체로부터 나오고 있다. 코로나와 싸우는 현장에는 그 임무를 다하려는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헌신, 관과 민의 노력과 협력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현장에 들어가 봉사하는 이들이 있고, 이웃이 이웃을, 지역이 지역을, 공동체가 공동체를 돕는 연대와 협동, 나눔과 포용의 시민성도 돋보인다. 물론 이 와중에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류들이 꽤나 많긴 하지만, 전 세계적인 코로나 재난 속에서 대한민국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국민들이 보여주는 시민성이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고 희망의 원천이다.

4차산업 혁명은 이미 진행 중이지만, 그것이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일자리를 만드는 속도보다 기존 일자리를 줄이는 속도를 빠르게 할 것이고, 불완전한 일자리를 늘릴 것이다. 일부 선택된 개발 운영업자, 거대자본이 4차산업 혁명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고,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4차산업 혁명 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 권력과 자본이 개인과 대중을 통제하는 도구로 악용될 것은 불문가지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코로나 이후 4차산업 혁명과 시장 변화를 전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재난을 어떻게 함께 극복하고, 모두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고민 아닐까?

사실 코로나로 인한 인류적 재난과 불행은 인류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일상화된 전염병과 반복되는 재난은, 인류의 탐욕으로 자연과 생명을 파괴하고 성장만을 추구해온 데서 비롯된 인재다. 유한한 자원인 화석원료와 광물자원을 무분별하게 개발해 문명성장을 지속한 결과 기후환경위기, 자원고갈이 임계점을 넘어 인류의 총 멸망이 예고돼 있다.

코로나 이후에도 인류가 지속가능하려면 4차산업 혁명이라는, 시장주의, 성장주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게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고 모두가 공존하는 생태문명으로 대전환하는 길 밖에는 없다. 성장보다는 삶의 질, 소득보다는 행복, 경쟁보다는 공생이 중심 가치가 돼야 한다. 재난에 취약하고 삶과 환경을 파괴하는 세계화와 중앙 집중보다 지역과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자급, 자치, 협동의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농업도 세계화, 규모화, 기업화의 성장주의보다, 식량안보와 생태환경 등 다원적 가치와 가족농, 중소농을 중심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재편해 나가야 한다.

기후환경 위기와 자원고갈로 인한 인류 멸망은 예언이 아니라 과학이다. 하늘을 뒤 덮은 뿌연 미세먼지, 일상을 앗아간 코로나 앞에서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은 멈췄고, 대공황에 접어들 수도 있다. 성장주의로 인해 불러온 재난을 성장주의로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단견이다. 지금 문명을 바꾸지 않으면 내 자식과 인류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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