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도매인제 문제 수면위로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김관태 기자]

▲ 강형윤 씨(왼쪽 두 번째)가 주위 농가들과 A농산에 제기한 소장을 살펴보며 이야길 나누고 있다.

“서울시가 관리하는 공영도매시장 내 시장도매인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거래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위탁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경북 안동시 녹전면에서 영농조합을 운영하는 강형윤(45) 씨는 7년 전 꿈을 안고 고향인 안동으로 내려왔다. 고향 땅에서 사과 등 직접 농사를 지으며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동네 어르신들의 판로도 같이 구축해 주겠다는 소박하지만 가치 있는 꿈이었다. 그런데 그의 바람은 시장도매인과 거래 이후 무너져 내려갔고, 결국 올해엔 빚만 안은 채 농사를 짓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판로 문제 해결 기쁨에
주변 농가 물량도 같이 출하
대출 등 끌어와 겨우 정산
“빚만 떠안고 농사 못 질 지경”

농안법에 ‘즉시결제’ 규정 불구
개인간 거래로 취약점 노출
“결국 법적 공방 불가피”


지난 20일 안동시 녹전면 북안동영농조합에서 만난 강형윤 씨는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판로를 찾다, 지인으로부터 강서시장의 한 시장도매인과 청량리 시장을 소개받았다”며 “아무래도 제도권 도매시장이자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공영도매시장인 강서시장이 안전하고 투명하다고 판단해 강서시장의 한 시장도매인과 거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판로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 등 이웃 농가의 물량도 같이 출하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강 씨는 “그 시장도매인에서 알게 된 한 직원이 다른 시장도매인인 A농산으로 옮긴 뒤 나에게 그쪽으로 출하를 유도, 2017년 봄부터는 A농산과 거래를 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바로 정산을 해줬지만 몇 달 지나고부터는 정산이 늦어졌고, 그 해 대목인 추석에 많은 물량을 보냈지만 거의 받지 못했다. 이후에도 조금씩만 정산을 해주고 결국 제가 더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정산이 늦어지기 시작할 때 즉시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강 씨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이라도 일대일(개인 간) 거래를 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판매업체에서 결제가 늦어지니 물량을 먼저 보내 달라고 하면 안 보낼 수 있겠느냐. 더욱이 농가는 항상 을이지 않느냐”고 되물어 답했다. 

결국 3억원이 넘는 대금 결제가 이뤄지지 못하자 강 씨는 대출과 형제, 지인으로부터 자금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힘들더라도 가족과도 같은 농가들의 결제는 해줘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농가들도 최근까지 강 씨가 이렇게 힘든 상황까지 몰린 줄은 대부분 몰랐다. 

사과 농가 석국종(63) 씨는 “3000평(9900㎡) 사과 재배를 하는데 강 씨가 내려온 뒤 거의 전량을 강 씨를 통해 출하하고 있다. 기존엔 직접 판로까지 맡아서 해야 해 어려움이 컸는데 강 씨를 통하고 난 뒤엔 농사만 지을 수 있어 너무 편했다”며 “강 씨가 이렇게 힘든 상황이었는지는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고 밝혔다.

석 씨는 “처음엔 결제가 바로 이뤄졌는데 지난해엔 몇 개월 동안 결제 자금이 안 들어와 의문스러웠지만 항상 성실하게 일하고 진심으로 팔아주던 강 씨를 믿었고, 몇 달이 지난 다음이지만 출하 대금은 다 받아 여전히 강 씨를 신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농가 강윤석(53) 씨는 “동네 후배이기도 한 강형윤 씨의 사연을 듣고 같이 울분을 토했다”며 “강 씨는 이제 마흔다섯으로 자신은 물론 어르신들 판로까지 책임지는 농촌에선 귀한 인재이자 자산이다. 그런 인재가 무너지면 어르신들도 같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우려했다.

강형윤 씨는 “아직도 제도권 공영도매시장 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과 관리공사에서 관련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충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씨로부터 출하 대금을 다 받았지만 농가들도 강 씨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이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와 상급 기관인 서울시에 보내는 탄원서에 직접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농가들의 탄원서까지 올라갔지만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강 씨는 “결국 법정 공방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재판 과정 중에서라도 서울시공사가 차량이 이동한 CCTV나 물건을 나른 하역 노조들을 조사해보면 실제 물량 거래가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데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서울시공사에서 그것만 해줬어도 (이미 농가 대금 결제는 했기에) 농번기로 바쁜 농가들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매시장 종사자들 사이에선 시장도매인 대금 문제가 이번 한 사례만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우선 농안법에선 ‘도매시장법인 또는 시장도매인은 매수하거나 위탁받은 농산물이 매매됐을 때 특약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출하자에게 대금을 즉시 결제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지만 강 씨가 A농산 이외 시장도매인과 거래했을 때도 즉시 결제를 한 적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더욱이 강 씨 외에도 이번 문제가 얽혀 있는 농가가 더 있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강형윤 씨는 “개인 간 거래에서 오래 거래하다 보면 즉시 결제가 이뤄지지 않아도 이해하는 경우가 있고, 즉시 결제가 안 된 적은 A농산 이외에도 겪었다”고 밝힌 뒤 “대금 미지급과 관련해선 시장에서 나 이외에 다른 피해 농가 이야기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강 씨는 “이제 다시는 시장도매인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 물론 투명하고 안전하게 거래를 하는 선의의 시장도매인도 많겠지만 개인 간 거래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김경욱·김관태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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