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모든 행정·마을 정보 이장에게 집중
정보 독점·권한 남용사례 드러나
농촌사회 정보접근성 개선 급선무


코로나19로 전국이 ‘잠시 멈춤’ 상태이다. 우수와 경칩도 지나고 농촌도 한 해 농사 준비로 분주할 때이지만, 한산하다 못해 적막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가끔 시골길을 지나가는 촌로 대부분도 마스크를 착용하여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농촌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코로나19의 영향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코로나19로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지자 도시에서는 약국을 통해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 특히 농어촌지역에서는 이·통장이 직접 세대별로 마스크 공급을 추진 중이다. 이렇듯 농촌지역 대소사는 마을이장을 통하지 않고는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각 마을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장이고, 각 마을로 내려오는 크고 작은 정책사업은 이장을 통하지 않고는 주민들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지역농협은 각 마을이장들을 영농회장으로 하여 마을별 조합원들을 관리하고 지도하는 통로로 활용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행정과 마을의 정보가 이장에게 집중되고, 주민과 행정 모두에게 이장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이장들에게 지역의 정보와 권한이 집중되면서 이장을 둘러싼 크고 작은 문제들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하기도 한다. 몇 년 전 한 농촌마을을 지나가던 영구차를 마을이장과 일부 주민들이 가로막고, 마을발전기금 명목으로 통행세를 요구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이 마을이장의 위세에 다시금 놀라기도 했다. 일부 이장들의 이러한 ‘이장 갑질’이 도마에 오르면서, 주민과 행정 사이에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다수의 이장이 선의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도시와는 달리 주민 대부분이 고령화된 농촌마을에서 주민 대다수는 온라인을 통한 정책정보 습득보다 이장을 통한 행정의 정보전달이 관행화되어 있다. 시군에서 읍면으로 정보가 전달되면, 읍면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번 이장단회의를 열어 정보를 전달한다. 마을이장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당연히 각 마을주민에게 정보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마을이장들에게 전달된 정보가 주민들에게 전파되는 과정에서 종종 (정보)배달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사업은 여타 사업과 마찬가지로 A군에서 읍면을 거쳐 이장단회의를 통해 신청공문이 전달됐지만, 해당지역 B면 몇 개 마을에서 여성농업인들의 신청이 한 건도 없이 마감되었다. 해당마을 여성농업인들은 신청마감 며칠 뒤 이웃마을 여성농업인들을 통해 행복바우처사업을 알게 됐지만, 이미 신청기간이 지난 상태였다. 농번기 마을공동급식 도우미 지원사업도 유사한 사례를 전국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일손이 부족한 농번기에 여성농업인들을 돕기 위해 지원하는 사업이지만, 한 해 동안 한 건도 신청되지 않은 지자체도 발생했다. 그 원인을 파악해 보니, 대부분 남성들로 구성된 읍면 이장단회의에 사업관련 정보를 전달했지만, 이장들이 개인적인 판단으로 주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고, 사업관련 정보를 알지 못하는 주민들은 사업을 신청하지 못한 것이다.


주민들의 동의없이 이장의 판단으로 사업이 신청되기도 한다. 최근 여건이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농촌마을에서 이장들이 마을주민들의 도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농자재와 비료 등 해마다 반복적으로 주민들에게 지급되는 각종 보조사업 등 행정편의를 위해 주민들의 동의하에 이장들이 주민들의 도장을 가지고 대신 처리하는 것이다. 심지어 주민등록번호까지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이장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민들의 개인정보가 신규 사업이나 보조금과 관련된 각종 이권사업에 주민들이 동의한 것처럼 활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일부 이장들의 정보 독점과 권한 남용 사례들이 발생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 내부에서도 농림사업정보의 전달체계 다변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여성농업인과 영·유아, 아동·청소년 등과 관련된 정책사업은 여성농업인단체와 부녀회 등을 통해 직접 정보를 전달하도록 지자체에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귀농귀촌인구와 청년들의 농촌 유입이 증가하면서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는 농촌지역 신인류(?) 그룹이 등장, 시군과 읍면 행정에 본인들과 직접 관련되어 있거나 관심 있는 정책사업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읍면별 이장단을 통한 정보전달체계에 익숙한 행정은 관리의 편리성 등을 이유로 여전히 이장을 통한 단일 정보전달체계를 고집한다. 이장들에 의존해 수동적으로 정보를 얻던 선주민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정보 전달을 요구하는 후주민들이 증가하면서 주민 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농촌 사회혁신이 시대적 화두이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추상적인 해법들이 난무한다. 개인적으로는 농촌사회의 정보접근성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역주민들과 관련된 모든 정책과 행정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될 때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일어난다. 아주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원리가 농촌사회에서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지? 주민들에게 직접 정보를 공유하고 주민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지 않고, 익숙한 방식으로 결정된 사항을 주민들에게 통보하고 동원하려 한 것은 아닌지? 기존 정보전달체계에 문제는 없었는지 행정혁신이 수반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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