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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 어떻게 메울 것인가?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정보·권한 집중 ‘이장제도’ 폐단 개선
시군 지자체 권한, 읍면으로 이관해야
하드웨어 대신 ‘사람·조직’에 투자를

농촌 현실이 어렵다고 모두들 이구동성이다. 초고령화, 인구감소, 소득격차 등 여러 가지 지표들이 근거로 등장한다. 지방소멸이니 한계마을이니 위기감을 부추기는 언론기사도 적지 않다. 농촌의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근거는 잘 보이지 않고, 전국의 좋다는 선진사례도 쉽게 확산되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사업은 가짓수도 많고, 정말 많이 투자되고 있는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오래된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논 팔고, 소 팔아 도시로 잘난 자식을 유학까지 보냈던 근대화 과정의 애환이 숨어 있다. 농촌에는 못난 사람만 남아 있다는 자조적인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 농촌 어르신을 만나보면 다른 말씀도 하신다. ‘내가 잘나지 못했기에 고향을 지킬 수 있었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임종까지 지켰다. 도시로 나간 형제, 친척들 이제는 하나도 부럽지 않다. 불편해도 나는 고향이 좋고, 마을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 이런 말 속에는 은근히 고향을 지킨 자부심이 묻어난다. 또 못났지만 누구한테 손 벌리지 말고 우리끼리라도 열심히 해보자며 마을 만들기에 뛰어든 지도자도 있다.

농촌 주민들은 모두 하나같이 나름대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마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한다. 기회가 되면 작목반도 만들어보고 봉사단체도 참여한다. 마을 대청소나 쓰레기 수거, 제초 등 공동체 활동에 가장 열심히 참석하는 사람도 이런 어르신들이다. 수시로 좌절하고 상처입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 밭으로 일 나가고, 마을회의도 참가한다. 밤낮으로 땀 흘리는데 왜 현실은 고달프고 힘들까? 과연 어르신들이 게으르고 못나서 그러한가?

자조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정책과 제도는 현장 실정을 언제나 뒤쫓아 가기만 한다. 잘 되지 않는 이유, 핑계를 대자면 정말 많다. 좋은 사례를 만들자면 많은 변수들이 통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좋은 공무원도 만나야 하고, 사업지침도 잘 마련되어야 하고, 시간적 여유도 있어야 한다.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합의도 잘 지키는 풍토도 있어야 한다. 사실 마을만들기나 귀농귀촌, 로컬푸드, 농촌복지, 대안교육 등 전국에 성공적이라 불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한때 잘 나가던 그런 성공사례도 지속되기는 정말 어렵다. 많은 정책보고서에서 이런 사례들이 소개되고, 또 선진지견학도 많지만 확산되는 경우도 찾기 힘들다. 왜 그럴까?

결국 정책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미스매칭)이 너무 깊고 넓다. 주민들의 꿈과 희망을 채워주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이제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행정과 연구자가 반성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우문현답)는 말이 슬로건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주민들의 꿈은 아주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단순소박하다. ‘축산 악취 없는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 남는 농산물이 조금이라도 안정되게 팔리면 좋겠다, 인심이 살아있는 마을공동체를 바란다, 나이 들어 요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 등. 당연하다 할 정도로 보편타당한 꿈이고, 농촌이 원래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런 것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정책이라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셈이다.

물론 대부분 혼자서 꿈을 꾸는 것이 현실이고, 주변 사람과 함께 실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예전에 함께 해봤던 실패의 아픈 경험, 함께 하기 싫은 개인적 관계, 농촌의 전통적인 편가르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또 이런 꿈을 드러내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기회도 적고, 꺼내자니 마을 주민 누군가를 욕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함께 실천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갈등을 극복할 자신감도 많이 잃어버렸다.

농촌 현장과 정책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바꾸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먼저 행정리 이장 제도가 문제다. 이장 개개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자체가 마을자치를 가로막는 측면이 강하다. 정보와 권한이 집중되는 폐단이 크다. 오랜 관행처럼 굳어져 당연하다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행정에서 수당을 받는 사람(이장)이 마을의 대표자(회장) 역할을 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 유산이다. 세계적으로 이런 이장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오히려 적다. 개발위원회도 새마을조직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제도가 풀뿌리 민주주의 역량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둘째, 읍면이란 행정 단위에 대한 관점도 바꾸어야 한다. 농촌 주민들의 기초생활권이고, 한때는 자치단체였으며, 정책의 융복합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단위가 읍면이다. 시군 자치단체 권한 중에 주민생활에 밀접한 분야는 읍면으로 이관하고, 또 주민자치(위원)회로 이양하여 정책이 현장 중심으로 결정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최근에 주민 주도로 읍면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를 통해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필요한 예산은 주민세 증액분이나 주민참여예산제 등으로 결합하는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읍면장을 주민추천제로 선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런 방향의 정책 전환이 주민들의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셋째, 정책사업은 현장의 ‘사람과 조직’을 중시해야 한다. 하드웨어 시설사업이나 시혜적 보조사업보다 농촌 현장에 살면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 사회적경제조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장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조직’이 현장 가까이에 있어야 수많은 정책사업도 실효성이 있다. 사업 아이템 찾듯이 특색있는 주제만 강조하는 정책사업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농촌 문제가 너무 잘 보이고 주민들이 희망하는 꿈도 명쾌한데 정책사업이 여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정책 설계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농촌 주민의 ‘꿈과 희망’은 더욱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책과 제도’는 근본적으로 개선하면서, 정책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행정리 마을자치, 읍면 주민자치회, 시군 자치단체 차원의 민관협치형 정책 시스템, 이런 층위를 구분하면서 정책사업은 잘 연계되어야 한다. 중앙정부 사무가 지방으로 이양되고, 농촌협약제도가 새로 도입되는 등 농촌정책의 과도기에 이런 방향으로 과감한 전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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