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내가 사는 장수는 주요 사과 재배지다. 일주일 전쯤 친하게 지내는 사과 농부님과 오래간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판매루트가 다양하지만 이 농부님 역시 학교급식에 사과를 납품한다. 만나기 전에는 ‘아이쿠 개학이 연기되어 걱정이 크시겠다’ 싶었는데 사람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쇼핑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지난해에 비해 저장 사과 주문이 두 배 정도 많다고 하셨다. 수출 물량도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했다. 다른 품목 농사를 짓고 있는 학교급식 생산자들에게 미안할 만큼 사과가 잘 나가고 있어서 조만간 모든 물량이 동이 날 것 같다고 하셨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태, 택배 지연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람들은 저장성 높고 배송과정에서 손상이 적은 과일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인 막내의 친구가 한마을에 산다. 어제 한참을 우리 집에서 놀다가 귀가했는데 집으로 돌아간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급하게 문을 열었더니 “엄마가 이거 드시래요”하고 봉지를 내밀었다. 느타리버섯이 들어 있었다. 아이에게 맛있게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에게도 친구인 아이엄마에게도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 느타리버섯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학교급식 생산자인데 팔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한 느타리버섯”이라는 답장이 왔다. 나도 마당 작은 텃밭에 겨울을 잘 이겨낸 푸릇푸릇한 움파가 있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학교급식 생산자가 팔지 못하고 있는 대파를 며칠 전 구입했었다. 학교급식 채소들을 모아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 쇼핑의 확산, 과일 구매는 하고 신선채소는 구입하지 않는 것처럼 코로나19는 식품 구입 형태를 재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인 가구의 증가, HMR(Home meal Replcement) 소비의 증가, 과일육가공식품의 온라인 쇼핑 증가는 식품 구입 행태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대형 쇼핑몰들은 이런 흐름에 발목을 잡히지 않으려고 오프라인 매장을 대규모 구조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런 재편을 단기간에 증폭하여 보여주었다. 코로나19는 주지하다시피 사회적 재난이다. 이 사회적 재난은 의료재난, 경제악화로만 귀결 되지 않는다. 이 같은 사회적 재난의 국면에서 먹거리 수급은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지 정책적 대안을 공론화하고 마련할 때가 온 것이다.

농업은 기후에 매우 민감한 산업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농사의 가장 큰 위협을 기후변화로 예측한다. 가뭄, 태풍, 폭우를 걱정했던 것에 이제는 여름은 무조건 폭염이라는 걱정도 꼬리를 물은 지 이미 오래다. 누가 목소리 높여 강조하지 않아도 기후변화는 큰 문제로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회용품 덜 쓰기, 제로 웨이스트, 플라스틱 프리, 생활 곳곳에서 우리가 기후변화의 주범이니 생활을 바꾸어보자는 캠페인이 일어나지만 먹거리를 기후변화와 연관시키는 흐름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코로나19와 먹거리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웬 기후변화? 하시겠지만 기후변화는 심각한 사회적 재난이고, 앞으로 1인 가구 증가보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력 높은 질병 보다, 더 강력한 소비 재편을 불러올 수 있다. 코로나19는 통제와 예방, 공공의료의 작동으로 온라인 소비를 더 강화하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생산자들을 만들어내고, 먹거리 빈곤층의 식품 접근 등의 문제를 더욱 두드러지게 했지만 농산물의 풍흉에 관계되는 일도 아니고, 먹거리 사재기와 같은 현상을 불러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다르다.

논밭 과수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축산과 바다까지 먹거리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수온이 달라져 명태가 사라지고 고등어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먹거리 위기는 변화된 기후에 맞춰 동남아시아 과채를 기르는 것처럼 다른 품종을 심거나 식물공장을 만들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닌 전지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할 때 지금부터 빠른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기후변화 위기 시대는 그야말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전쟁인 시대가 될 수 있다.

먹거리 생산부터 공급까지 공적 구조를 튼튼하게 만들어놓아야 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은 물론이고, 기후변화와 같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재난에 맞선 국민 먹거리 공급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 만약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더라도 각 지자체별 공공(학교)급식지원센터를 통해 학생들에게 채소꾸러미가 공급될 수 있는 구조였다면 어땠을까? 먹거리 빈곤층에게 푸드바우처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말해주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먹거리 공적 시스템이 일상적으로 작동되어 이제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말해주는 시대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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