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연 ‘지방분권을 위한 농정 추진체제 개편방안’ 보고서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 푸드플랜패키지지원사업은 5년간 약 63억원의 재정이 투입되는 국고보조사업으로, 농식품부는 지원사업 대상지로 선정되기 전에 지자체가 푸드플랜을 수립하도록 1년간 1억원의 연구용역 비용을 지원 중이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 사업 중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4387억여원)과 농업기반정비사업(1788억원) 등 총 7737억원 규모의 사업이 지방으로 이양된다. 그러나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이전되는 재원이 농정 사업에 사용되리라는 보장이 없어, 오히려 지방농정 예산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분권이 지방소비세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추진돼 부가가치세 세입 규모가 적은 농촌 지자체의 재정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양되는 일반농산어촌개발 사업은 대부분 농촌지역에서 추진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고 재정분권의 효과를 제고하려면 재정이 이양되지 않는 국고보조 농정사업의 추진체계를 개선, 지자체의 권한과 재량을 확대하되 농촌 지역주민의 실질적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지방분권을 위한 농정 추진 체제 개편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제안했다.


2000년대 초 농촌개발 공모제
2009년 포괄보조 방식 거쳐
최근 ‘계획협약 제도’ 논의 진화
‘보조→계획 중심’ 전환 의미 커

지자체 국고보조사업 과정
농민·시민단체 활동 많은 지역
주민 참여 촉진 등 긍정적 효과
‘용역’ 의존 시 주민 소외 초래

관련 사업 지방 재량권 높이고
단체·조직 논의 공간 만들어야


◆국고보조 농정사업 추진방식의 전환=농촌개발 정책에서 주민 참여를 확대하려는 노력은 2000년대 초반 공모제 방식의 마을단위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본격화됐다. 공모제 방식의 정책사업은 지자체 입장에서 국고 재원을 추가적으로 확보할 기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지자체간 경쟁을 통해 사업대상지를 선정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개별 사업 수준에서는 지역의 여건과 정책 수요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됐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여러 농촌개발 정책사업이 균특회계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등으로 재편되면서 ‘포괄보조 방식’이 도입됐다. 포괄보조 방식은 중앙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한도 안에서 지자체가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사업을 기획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모제보다 진일보한 사업추진 방식이다. 최근에는 중앙-지방간 협약(계약)이라는 형식으로 재원을 중앙정부가 일괄 지원하는 ‘계획협약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계획협약 제도는 ‘보조사업 중심’에서 ‘계획 중심’으로 농촌정책 방향을 전환한다는 의미도 있다.

◆지자체 국고보조사업 추진과정 들여다보니=이번 보고서에서는 국고보조사업이 지방분권의 관점에서 추진되려면 지역 내부에 어떤 조건들이 충족돼야 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6개 시·군을 대상으로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 푸드플랜패키지지원사업 등 4종의 국고보조사업 추진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평소에 농민단체나 시민사회단체, 사회적 경제조직 등이 왕성하게 활동하거나 마을만들기지원센터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지역, 지방자치단체 농정 분야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전문 연구자나 활동가를 고용한 곳에서는 주민 참여를 촉진하거나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그렇지 못한 지역의 경우는 군청 담당부서 공무원들이 국가보조금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단독으로 정책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공모를 위한 예비계획 수립시 민관 협력 관행이 두텁지 못한 지역에서는 주민과 협의 없이 지자체가 외부의 사업체에 용역을 발주했다. 이럴 경우 주민 참여는 보장되기 어렵다. 이 같은 양상은 국고보조 농정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이후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사실 기본계획에 따라 사업이 시행된다는 점에서 기본계획 수립 과정은 주민 참여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국면이다. 그러나 사업예산 규모가 크고 상당한 문서 작성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자체 담당자들은 용역을 발주하는 일이 관행화되어 있었다. 이렇게 외부의 사업체에 의한 연구용역이 진행되면서부터는 준비단계에서 상당한 주민 참여가 이뤄졌던 지자체에서도 주민들의 참여가 사실상 배제돼 갈등과 잡음이 커지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성공적인 지방분권화를 위한 조건=보고서는 국고보조 농정사업 추진체계 개선방향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계획협약 제도’와 관련 다음 세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통합메뉴 방식에서 포괄보조 방식에 이르기까지 지방분권을 지향한 국고보조 농정 사업의 추진 경험을 면밀하게 분석, 지방에 재량권을 더욱 부여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정책사업 계획의 재량권을 지자체에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지자체가 지역사회 주민들로부터 지역의 의제를 수렴해 사업계획에 반영하게끔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계획협약 제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셋째, 평소에 농정관련 의제를 지역의 민간 부문이 형성하고 정리해 둘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제도 설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방분권을 위한 지자체의 역할도 제안했다. 우선, 지방농정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이자인 지역 내 민간부문 단체·조직들이 수시로 모여 ‘지방농정 의제’를 논의할 공간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둘째, 지방농정과 관련해 주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논의할 대의기구도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법률로 규정된 지방농정심의회의 현행 권한과 사무 범위는 대의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없게 제약돼 있고, 실제로 잘 작동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농업회의소, 또는 자치농정위원회 등과 같은 기구를 실험적으로 설치·운영하면서, 확고한 법제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주민 참여와 자치에 기반한 지방농정은 구체적인 정책 사업 계획, 실행, 평가 과정을 통해 실현되는 것으로 그 모든 과정에 조력할 ‘활동가 직능’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문도 덧붙였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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