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의사들이 말하는 해법

[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에 위치한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에서 서울대 수의대학 학생들이 실습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의 전문가들은 이처럼 대동물 임상실습을 할 수 있는 곳이 확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수의사들도 고령화되면서 대동물 수의사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행복을 찾는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이한경 수의사는 “지난해 12월 김제의 80대 수의사가 폐업하는 등 70세 이상 고령의 대동물 수의사가 많다”며 “은퇴하는 고령 수의사의 빈자리를 채워줄 젊은 수의사들이 현장에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현장 여건은 어렵지만 대동물 수의사로서의 사명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한경 수의사는 “얼마 전 밤 12시에 난산을 겪는 소를 치료한 적이 있다. 다행히 어미와 새끼 모두 건강했다”며 “그날 휴대폰 사용이 서툰 농장주가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마음이 벅찼다. 나의 활동이 소에게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 같은 사명감은 물론 대동물 진료는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시간 활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경제적인 수익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예비 수의사들이 대동물 수의사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대규모 실습교육 가능한 곳
사실상 서울대 평창캠퍼스 뿐

학교 별 목장 활성화 통해
교육과정에 대동물 실습 넣고
정부는 거점병원 운영 나서야

“여건은 어렵지만 사명감 충분
고령 수의사 빈자리 채워줄
젊은 수의사들 현장에 필요” 


▲수의대학 교육과정의 변화 필요=김단일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대동물 수의사의 부족현상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상황”이라며 “상당수 수의대 입학생들은 성장과정에서 대동물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동물 수의사를 꿈꾸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즉, 수의대학 교육과정에서 대동물병원 의무실습 반영, 학교 목장 활성화 등을 통해 예비 수의사들이 대동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 학생들은 그나마 교내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을 통해 3학년이 돼서야 소라도 만져본다”며 “수의대학 소속 목장이 있다면 학생들이 자유롭게 실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경 수의사는 “매년 대동물 수의사 트레이닝을 요청해 찾아오는 예비·공중수의사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이들이 수의대학을 다니는 동안 소동물만 하고 대동물에 대한 경험을 못했기 때문에 졸업 후에 찾아오는 것”이라며 “이 같은 현상은 전적으로 대학에 책임이 있다. 임상하는 수의사들이 대학에 가서 강의하는 등 학생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보는 눈이 넓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의대학에서 학생 모집 시 지역별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한경 수의사는 “전북대에서 신입생 50명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50명 중 20명을 전북지역 학생으로 뽑는다면 이들이 졸업 후에 전북에서 뿌리를 내릴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대동물 실습교육의 장 확대 절실=전국에서 대동물 실습교육을 할 수 있는 곳은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에 위치한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이 사실상 유일하다. 현장 수의사들은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에 대한 지원 확대는 물론 이 같은 실습교육기관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단일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수의대학에서는 시설과 인력 확보 등의 문제로 대가축 실습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에서 지자체 소속 공중방역수의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기 수용 가능한 인원은 60~80명 수준인데 150명이 참여하니 실습의 효율성 등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지원 확대를 언급했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인식 변화 절실=수의 전문가들은 정부가 거점별 동물병원을 건립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한경 수의사는 “만약 주요 지역마다 거점동물병원이 설치된다면 다른 농장에서 진료를 보거나 휴무인 수의사를 찾지 않아도 된다”며 “일본은 공제조합병원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을 치료하는 종합병원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는 거점동물병원을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수의사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대동물 관련 박사과정 밟고 있는 노영혜 씨는 “현장 치료를 위해 농장을 방문해보면 생각만큼은 아니지만 여성 수의사에 대한 편견이 조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단일 교수는 “대동물 수의사를 원하는 여학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고 일본 북해도에서는 대동물 수의사 중 여성 비율이 많다고 한다”며 “대동물 수의사는 남성만 하는 것이 아닌 시대가 다가올 만큼 여자라서 대동물 수의사를 못한다는 인식이 차츰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동물 실습의 장, 서울대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
전국 유일 대규모 실습장, 작년 700명 참여

실습 위한 젖소 15두 보유 
여성 수의사도 눈에 띄어


지난 2월 14일 찾은 강원 평창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임신한 젖소를 대상으로 실습에 나섰다. 직장검사용 장갑을 착용한 학생들이 틀에 고정된 소들을 꼼꼼하게 검사하며 현장실습을 진행했다.

사실 수의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한우·젖소 같은 대가축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수의대학 소속 농장을 갖고 있는 대학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서울대학교의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이다. 이곳에서는 전국 수의대학 학생들에게 대가축 관련 실습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연수원의 주요 사업은 산업동물임상 실습교육으로 전국의 유일한 대가축 실습장이다. 연수원에는 학생들의 실습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15두 가량의 젖소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 실습에 참여한 학생과 공중방역수의사는 약 700명에 달할 만큼 대가축 실습현장으로 인기가 좋다.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의 김단일 서울대 교수는 “전국에서 대규모로 실습할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실습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대가축의 경우 보정매듭, 직장 검사, 채혈 및 주사, 부검 등 대학별 기본과정이 진행된다. 심화과정도 운영된다. 기본과정과 함께 개복술, 유방염, 인공수정, X-레이 또는 초음파를 이용한 영상진단, 골절 처치법, 소의 분만 등 심화과정이 진행된다. 지자체에 소속된 공중방역수의사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운영됐다. 김단일 교수는 “심화교육은 희망 학생들의 지원을 통해 30명씩 2주 동안 여름방학에 운영한다”며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서는 보기 어려운 소의 분만 등을 돕는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의 프로그램을 통해 육성되는 여성 수의사도 적지 않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대가축 수의분야에 여성 수의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에서 서울대 대학원 코스를 밟고 있는 노영혜 씨도 주목받는 주인공 중 한 명. 노영혜 씨는 “대가축은 여자가 하는 것이 힘들고 농장에서 (여성 수의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지만 체계적으로 배운 지식과 실습과정에서 배운 것을 활용하니 농장에서도 반응이 괜찮았다”며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박사 2년차 때 송아지 설사가 발생한 농장을 찾아 치료를 해준 적이 있는데 결과가 좋았고 농장주께서도 고마워했다. 아주 뿌듯했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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