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전수조사 가능한가 <1> 제주의 실험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제주특별자치도가 2015년 4월 ‘농지 기능관리 강화 방침’을 발표한 이후 도내 농지 이용실태를 파악하는 등 농지 관리에 행정력을 투입한 지 5년을 맞고 있다. 투기 및 무분별한 개발로 잠식되고 있는 농지를 보전하고 농지 기능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투기 목적의 농지 소유를 억제하는 등의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동안 농지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비농업인이 받았던 자금 혜택 등의 고리를 끊는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물론 인력과 조직, 예산 등 행정 비용 문제는 과제로 남았다. 무엇보다 제주도 사례가 최근 농업계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는 중앙 단위의 농지 실태 전수조사 추진 가능성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시사점이 크다.

 

추진 배경은

2010년 투기광풍·난개발에 도외거주자 농지소유 증가
3년 사이 갑절이나 늘어…
중국인 등에 농지 잠식 ‘경고등’

제주도는 2010년 들어 투기 광풍과 난개발에 따른 농지 잠식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지 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자리 잡았다. 제주도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제주지역 토지는 82만5000필지 1849㎢로, 이 중 농지는 전체 28.8%(26만7000필지 533㎢)를 차지했다. 제주도 면적은 서울(605㎢)의 3배를 조금 넘는다.

문제는 전체 농지 중 거주자 소유 면적이 79.3%인 422.7㎢인데 반해 나머지 20.7%(110.3㎢)를 도외 거주자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도외 거주자의 농지 소유가 불과 3년 사이(2012~2014년) 갑절이나 증가할 정도로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기획부동산’, ‘타운하우스’ 등의 개발 투기 광풍이 도내 토지를 휩쓸었고, 이는 부적절한 이용 실태로 나타났다. 제주도가 2015년 3월 발표한 도외 거주자 소유 농지에 대해 이용실태 표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표본의 36%가 위탁경영과 휴경 등 농지법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농지를 펜션이나 관광숙박시설 등 타용도로 전용한 사례도 2012년 1718건·237만9000㎡에서 2014년 2431건·259만7000㎡로 해마다 증가했다. 중국 자본 등 외국인이 소유한 농지를 비롯한 토지들이 개발 사업에 이용되며 농지 잠식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추진 내용은

2008년 이후 취득농지 대상 투기수요 등 비농업인 가려내
모든 농지조사서 한 발 후퇴농지이용실태 관리단 운영도


이에 따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2015년 4월 ‘농지 기능관리 방침’을 통해 농지법 제정(1996년) 이후 모든 농지를 대상으로 자경 여부를 조사해 헌법과 농지법을 근거로 농지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게 된 것이다. 방침의 핵심 내용은 △농지 이용실태 특별조사 △농지취득자격증명 및 농지전용 심사 강화 △농지 기능 및 사후관리 기능 강화 △농지의 정당한 이용과 공급 활성화 등이다.

방침 발표 직후 곧바로 세부실행 계획이 수립됐고, 2015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농지이용실태 특별조사가 대대적으로 추진됐다. 조사 대상은 원희룡 도지사가 밝힌 것과 달리 2008년 이후 취득한 모든 농지(7만8915필지 1만2750ha)로, 애초보다 축소됐다. 이에 대해 제주도청 친환경농업정책과 관계자는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농지 등의 처분관련 업무처리요령’에 있는 ‘취득 후 8년 이상 농업경영에 이용된 농지’, ‘농지법’에서 규정한 ‘자경 8년 이상일 경우 양도소득세 감면’ 등에 따라 2015년 기준으로 8년 전인 2008년 이후 취득 농지를 대상으로 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농지법 제정 이후 모든 농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최소한 투기 수요 등의 비농업인 농지를 가려내기 위한 ‘차선책’을 택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제주도는 농지기능 관리강화를 위한 운영지침을 마련, 시행했다. 이용실태 특별조사는 단계별 로드맵에 따라 현황 파악, 실태조사, 행정처분 등으로 진행됐고, 210개 마을 단위의 ‘농지이용실태 관리단’도 운영했다.

 

추진 성과는

도외 거주자 농지취득 63.7%나 줄여

강력한 농지 처분 조치로 경각심 고취
급격한 농지전용면적 확대에 ‘제동’
‘농지=투기·소유’ 인식도 벗어나
조례 개정…농지 보호·관리 강화


투기 목적의 농지 소유를 억제하는 효과가 눈에 띈다. 제주도에 따르면 도내 농지취득면적이 2015년 3427ha에서 2019년 1431ha로 감소했고, 특히 도외 거주자의 농지 취득이 2015년 596ha 대비 63.7% 감소한 216ha로 파악됐다. 농지취득자격증명 심사 강화가 가장 큰 요인으로, 건설 및 부동산 경기 침체 영향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강력한 농지처분 조치를 통해 농지 소유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별조사 실시 결과 총 6207명 7587필지(799ha)의 위법사항이 발견돼 농지처분의무를 부과했고, 이중 6개월간의 농지처분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농지소유자 332명(382필지)에 대해 이행강제금 15억9700만원을 부과했다. 농지처분 절차는 현지 조사→청문→처분의무부과(1년)→처분명령(6개월)→이행강제금 부과(공시지가의 20%, 처분 시까지 매년) 순이다.

급격한 농지전용 면적의 안정화도 성과 중 하나다. 농지전용 면적은 2016년 907ha로 최대치를 보이다 ‘농지기능관리 강화 방침 세부 실행계획’에 따라 농지취득 후 1년 이상 자경하지 않은 경우 농지전용을 불허해 2017년부터는 400ha 내외로 전용되고 있다. 주거용 전용 면적도 2016년 738ha에서 2019년 117ha로 84% 감소했다.

농지를 바라보는 인식이 크게 변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종훈 제주도청 친환경농업정책과 주무관은 “이전과 달리 농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며 “투기 또는 소유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이용실태 조사를 통해 처분명령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일반인뿐만 아니라 부동산업계, 외지인들까지 인지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실태조사 결과가 농지 제도의 허점을 틈타 ‘가짜농사꾼’이 편취해 온 혜택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기반을 제도화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도에서는 귀농귀촌 인구 유입에 따른 지원 자금 흐름이 부동산 재테크에 활용되는 등의 사례들이 있었는데, 이를 정상화하는 움직임들이 ‘제주도 농지관리 조례개정안’ 등을 통해 구체화됐다. 이 개정 조례는 해당 농지의 전용으로 인근 농지의 연쇄적인 전용 가능성이 클 경우 전용을 불허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과제는

농지문제 이해관계 첨예
법적소송 등 담당자 애로
인사이동에 업무 연속성 단절
지속적 관리 인력·조직 필요


예상대로 현실적으로 인력과 시간, 예산 등 행정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큰 과제다. 행정에서 꼽는 어려움은 행정력 또는 행정의 의지와 별개로 기존 업무와 농지 전반의 실태조사를 병행 추진해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실무적인 고충이 크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또한 농지 문제가 이해관계가 첨예한 데다 법적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들도 많아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는 것. 담당 공무원들의 인사이동에 따라 업무 연속성이 단절된다는 점도 애로점이다. 실태조사 이후에도 행정처분 이행 등 지속적인 관리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담 인력 및 조직을 보강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게 제주도 행정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일선에서 실태조사에 참여한 제주도 읍면 단위의 한 공무원에 따르면 공무원 1명이 업무병행 시 현장 확인할 수 있는 농지는 1일 10필지 내외 정도다. 1필지당 30분 정도 예상해도 5시간이 걸린다. 대상 농지들이 붙어있지 않거나 이동 시간, 업무 숙련도 등을 감안하면 물리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양은 더 줄어든다. 3달 동안 주말 등을 포함해 실태조사만 전담했을 경우 2만2000필지 정도 조사가 가능했다는 경험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실제 소요 예산은 연평균 5억원 수준에서 집행됐다. 도에 따르면 농지이용실태조사에 활용된 예산은 2015~2018년까지 국비는 6900만원, 도비는 2015년 4억7300만원·2016년 8억4100만원·2017년 3억7400만원·2018년 4억9900만원 집행됐다. 2019년은 국비 1억1700만원·도비 4억4800만원이 쓰였다. 농지 실태조사 요원 인건비가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지속적인 예산 확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마을 단위의 후속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읍면동 자생단체에서 추천한 이들을 활용해 210개 마을에서 주 1회 활동을 하는 ‘농지이용실태 관리단’이 운영됐는데, 2016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데 그쳤다. 전문 인력 부재 및 예산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사후관리 방안을 제도화하는 측면이 어려운 과제임을 확인시켜줬다.
 


홍충효 제주특별자치도 친환경농업정책과장
“‘농지는 농업인 소유’ 인식변화 불러와”

농지취득 자격증명·심사 강화
투기성 취득 억제 큰 효과

“농지 기능관리 방안을 강화해 투기성 농지취득 방지는 물론 무분별한 난개발 방지를 통해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관리해 나가겠습니다. 농지의 효율적 이용으로 농업인의 경영안정과 농업 생산성 향상을 통한 농업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친환경농업정책과 홍충효 과장은 지난 2015년 4월부터 추진된 ‘농지 기능관리 강화 방침’에 따른 성과를 설명하며, 향후 계획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도는 2015년 농지 기능관리 강화 방침을 발표하고 현재 농지의 제 역할을 위해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농지 기능관리 방침 이후 투기성 농지 소유가 2015년 3427ha에서 지난해 1431ha로 58% 감소했으며, 제주 비거주자의 농지 취득이 2015년 596ha에서 216ha로 63.7%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개발을 위한 농지전용도 2015년 579ha에서 지난해 421ha로 27% 감소했다.

홍충효 과장은 “농지 기능관리 강화 방침 시행 이후 2017년까지 농지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현재 매년 9월부터 11월까지 최근 3년 내 취득 농지에 대한 정기 조사를 실시하면서 투기 목적의 농지 소유가 억제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투기성 농지 취득이 줄어든 것은 농지 취득 시 제출해야 하는 농지취득자격증명과 심사 강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 과장은 “농지 이용실태 전수조사로 2015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6207명·7587필지에 대해 농지처분의무를 부과해 단계별로 이행을 확인 중”이라며 “농지 이용실태 조사로 농지 소유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홍 과장은 “제주도 농지관리 조례와 농지기능관리 강화 방침 세부 실행 계획으로 제주만의 농지관리 체계를 구축, 농지는 농업인이 소유하고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큰 변화이자 성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농지 전수조사를 하면서 조사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있어 제도적·조직적 개선을 통해 농지 기능관리 강화 방침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원칙적인 제주 농지기능 강화 방침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아닌 농업경영 목적대로 이용될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성진·제주=강재남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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