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동물 수의사 왜 기피하나?

[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대동물 수의사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한우와 젖소 등 대가축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이한경 수의사가 젖소농장에서 진료하고 동물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전북 김제에서 한·육우와 젖소 같은 대동물을 진료할 수 있는 임상 수의사는 3명뿐이다. 수의사 1명이 담당해야 하는 소는 1만5000두 이상으로 추정된다. 업무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의사들의 업무 가중에 따른 피해는 가축과 농가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제시기에 진료 및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의사 면허를 소지한 사람은 2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농촌 현장에는 대동물 수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에 본보는 ‘대동물 수의사가 사라졌다’를 주제로 2회에 걸쳐 대가축 수의사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향후 개선방향을 제시한다.


수의사 면허 소지자 2만88명 중
대동물 진료는 1600명 남짓 
김제 지역은 단 3명 뿐
“3군데서 한 번에 연락 온 적도”

출산 등 휴일·야간 근무 많고
날씨에 상관없이 현장 나가야
장거리 운전 등 안전문제 피해
잘 갖춰진 도시 동물병원 선호 

소동물 중심 수의대 교육과정
대동물 접촉 기회 너무 적고
남성 수의사 선호도 진입장벽
외상 등 진료비 문제도 발목


▲현장에서 찾기 힘든 대동물 수의사=전북 김제에서 ‘행복을 찾는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한경 수의사는 최근 난감한 일을 겪었다. 이미 A농장에서 소를 진료하고 있는 상황에서 “난산이니 와 달라”는 다른 농가의 급박한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한경 원장은 “여러 농장에서 동시에 방문을 요청하면 난감하다. 한 번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응급한 곳, 연락 온 순서, 거리 등을 감안해 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동물을 전문적으로 진료 및 치료할 수 있는 수의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북 김제에도 3명밖에 없다. 하지만 전체 수의사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이한경 원장에 따르면 전국에 수의사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2만88명(2019년 2월 기준)이다. 이중 동물 진료 및 치료하는 임상 수의사로 활동하는 인원은 7099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면허 소지자의 35.3%에 불과하다. 여기에 임상 수의사 중 약 5500명이 반려동물 또는 소동물 수의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임상 수의사 중 22.5%, 전체 수의사 면허 소지자 중 7.95%만이 대동물 수의사로 활동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대동물 수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대동물 수의사의 부족현상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들에게 돌아간다. 농촌 특성상 가축은 수의사가 직접 농장을 방문해야 하는 만큼 대동물 수의사 부족 현상은 가축의 치료시기를 놓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동물 수의사들의 업무가 가중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축산관측 3월호에 따르면 한·육우 사육두수는 321만1000두(2019년 12월 기준), 젖소는 40만8000두다. 소 전체 사육두수는 약 361만9000두로 단순 계산하면 대동물 수의사 한 명당 2263마리의 소를 맡아야 한다. 이와 관련 이한경 원장은 “3곳에서 한꺼번에 연락이 온 적도 있다”며 “수의사가 많았다면 (수의사들이) 나눠서 진료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대동물 수의사, 왜 기피하나=강원대, 건국대, 경상대, 경북대, 서울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이상 가나다순) 등 전국 10개 대학에 수의대학이 있다. 그리고 수의사 면허시험을 통해 매년 약 500명의 수의사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이 대동물을 기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진료환경의 열악함이다. 임신우의 출산이 새벽에 이뤄지는 등 가축 특성상 휴일과 야간 근무가 불가피하다. 또 농촌에서 활동하는 만큼 도시민들보다 교육·의료·문화 등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일부 수의사들이 주거지역을 도시로 옮기는 이유다.

이한경 수의사는 “날씨에 상관없이 진료 현장에 가야 한다. 그리고 소에 한 번 차이면 부상을 당하는 등 큰 사고 위험도 있다”며 “나는 하루에 200㎞ 이상 운전한다. 운전거리가 많다는 것은 교통사고 확률이 높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도시의 반려동물병원은 여러 명의 수의사가 일하기 때문에 휴일도 있고 야간에 교대근무도 가능하지만 대가축 동물병원은 휴일과 야간에도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 같은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시설을 잘 갖추고 휴일이 보장된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을 수의사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는 대학교육의 문제점이 꼽힌다. 대동물 수의사들은 수의대학의 교육과정이 대부분 반려동물 같은 소동물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대동물 관련 실습장을 갖춘 대학을 찾는 것도 어렵다. 일부 대학은 농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 축산학과 소속 농장이다. 수의대학이 소유한 농장이 없다보니 예비 수의사들의 대가축 관련 실습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김단일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학교 농장은 대부분 축산학과 소속이기 때문에 수의대 학생들이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며 “대동물 임상 관련 교원의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농장이 없는 학교에서는 그 대안으로 목장 실습을 추진하지만 질병 발생 등을 우려한 농장주들이 꺼리는 상황이다. 학교와 축산농가 모두 이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한경 원장도 “수의사라면 대동물을 전반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반려동물 담당 교수가 대동물을 가르칠 수 없지 않느냐. 대학에서 대동물 수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의대 학생들이 대동물에 대한 접촉기회가 너무 늦게 이뤄지는 것은 물론 접촉회수도 턱없이 부족한 부분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이한경 수의사는 “수의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어 소를 만져보기는커녕 본 적도 거의 없다.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동물 수의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예를 들어 전북대 수의대 입학생 중 수도권에서 온 학생들은 졸업 후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농촌에 남는 수의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단일 교수는 “아버지가 대동물 수의사인 자식의 경우 어릴 때부터 대가축에 노출되기 때문에 대동물 수의사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수의학도들은 대동물 수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대학에 와서 알게 된다”며 “노출시기가 너무 늦기 때문에 대동물을 선택할 확률이 낮다”고 말했다.

적잖은 외상거래와 처방전 없이 동물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부분도 문제다. 이한경 원장은 “예전보다 그런 사례가 줄긴 했지만 나도 진료비로 쌀과 고추를 받은 적이 있다. 외상 진료 때문에 문 닫는 수의사가 있을 정도”라며 “대가축의 진료와 수술에 대한 의료비를 충분히 받을 수 없는 여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동물약품상들이 농가들에게 필요한 약을 먼저 준 후 그들이 고용한 수의사들이 처방전을 쓰고 있다”며 “과연 그 수의사가 가축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전을 쓰겠느냐. 수의사들이 대동물에 발붙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농촌 특성상 농가들이 전담 수의사를 원하고 여성 수의사 보다는 남성 수의사를 선호한다는 점도 새로운 수의사의 진입장벽으로 여겨진다. 이한경 원장은 “농가들은 진료 받던 수의사가 아닌 수의사가 오는 것을 기피한다”며 “직접 농장을 방문해 진료 및 치료해야 하는 만큼 농촌 지리는 물론 농장 상황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단일 교수는 “대동물 수의사를 희망하는 여학생들은 꾸준히 있지만 소를 다루려면 힘이 세야 한다는 등의 생각 때문에 여성 수의사가 병원을 개원하는 것은 아직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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