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강용 학사농장 대표

‘코로나19’ 수준의 중국 ‘사스’ 창궐 때
예방 효과 앞세워 베이징서 김치 나눔
반찬이었던 김치, 건강식품으로 탈바꿈


코로나19가 세상의 모습을 바꾸어 버린다. 개인이 조심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고, 세계 최고의 방역 모범국가에서 하루아침에 입국금지 국가로까지 된 이 상황의 원인에 대해 각자가 보는 관점이 있겠지만 참 안타깝고 화가 난다. 외식업체는 초비상이고 가정소비의 증가로 인터넷 쇼핑몰과 대형마트는 특수를 누린다. 특히 쌀과 면역력 강화 상품들의 판매량이 많이 늘었다. 지난달 칼럼에 언급한 ‘사스(SARS)’와 김치 홍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문의가 있어 기억나는 대로 다시 적어본다.

2003년 중국의 ‘사스(SARS)’가 가장 심하게 창궐 하던 때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에 가야 했다. 마스크와 소독제로 중무장을 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며칠간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일주일 정도 외진 곳에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로 줄이는 자율격리 후에야 다시 복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스’는 2002년 처음 광동성에서 발생해서 당시에 ‘광동 괴질’이라고 불렸다. 지금 코로나19처럼 심각한 수준으로 전염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에서는 쉬쉬하며 공개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SNS나 네트워크가 발달하지 않아서 신문이나 방송이 언론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2003년 1월에 외국 언론들이 보도가 시작되고 사망자들이 속출하자 어쩔 수없이 2003년 4월21일에야 중국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정 한 것으로 기억 된다.

지금의 코로나19와 거의 비슷한 과정으로 데쟈뷰 되는 것이 참 안타깝다. 아무튼 중국 정부 발표 후 중국 현지에서는 농민공들의 귀향이 줄을 잇고, 일부 외교관이나 주재원 특파원들을 제외하고 외국인들이 탈출하는 액소더스 행렬이 이어졌다.

당시에 베이징에 남은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주재원은 우리는 김치를 자주 먹어서 사스에 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의 상징적 음식인 김치를 먹고 힘내자고 주변의 한국 외교관이나 특파원들에게 김치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베이징의 대형마트에서 사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500g짜리 김치를 나눠주는 행사를 시작했다. 나눠준 것이 김치여서였든 무료여서였든 그것을 받기 위해 중국 소비자들이 매우 길게 줄을 섰으며, 그렇게 긴 줄을 서는 것 자체가 뉴스 꺼리였고, 중국 현지의 모습과 사스와 김치가 우리나라의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한국 언론과 현지에서 벌어진 김치행사의 영향으로 얼마 뒤 중국의 주류 언론사에서 ‘한국의 김치와 한국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한국인들의 김치사랑을 다룬 사설이 1면을 장식했고, 뒤이어 일본 아사히신문이나 LA타임즈 등 세계의 언론들이 예방식품과 치유식품으로 김치에 대한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아울러 과학적으로 분석된 김치의 예방과 치유의 효능이 지속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결국 요구르트나 올리브오일들만의 자리라고 생각되던 ‘세계5대 건강식품’의 자리에 김치가 당당히 입성하였다.

이렇게 숨은 영웅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에 의해 우리에겐 흔하디 흔한 ‘반찬’일 뿐이던 김치는 세계에서는 ‘건강식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건강식품인 김치가 작년 한해 30만톤이 넘게 반찬으로 수입되어 외식시장의 80% 정도를 장악했고 수출은 1/10도 채 되지 않는다. 세계 5대 건강식품이 단순히 저렴한 반찬으로만 수입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내리는 것이 참 안타깝다. 비슷한 인삼일지라도 고려인삼이 효능효과에서 세계적인 것처럼, 우리 땅에서 자란 농산물이 꼭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원료 하나하나의 성분이나 특성에 대한 규격을 설정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원료를 사용하고 일정한 방식으로 제조한 건강식품으로서의 김치의 규격을 만들어서 반찬값만으로도 건강식품을 선택하는 한국과 세계의 소비자들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2003년 두려움을 넘어 공포스러운 마음으로 도착한 중국 베이징 공항은 너무나 평온 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마스크를 한 사람은 거의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도 마스크를 벗었다.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나 의견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현상’을 따라하는 ‘다수의 무지’ 함정에 빠진 것이라는 것은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한국의 김치가 그렇다고 하면 10년 뒤엔 그것만이 김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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