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진우 기자]

▲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힌 심포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육상으로 끌어올려진 어선에는 말라버린 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생계터전 잃은 김제 어민
‘농토 조성되면 우선 지원’
약속만 믿었지만 ‘헌신짝’
공개입찰 참여해야만 가능
임대요청 외면, 개인에 허가

바다 접하고 있어도 포구 없어
새만금 개발과 함께 사라진 탓
“건설중인 새만금 신항에
이용가능한 어항 만들어야”
김제 어민들 목소리 고조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으로 일컬어지면서 지난 2010년 세계 최장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한 새만금. 지난 해 8월 해양수산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각각 농생명·식품·물류·관광과 연계한 환황해권 거점항으로 새만금신항을 육성하겠다는 계획과 간척지의 농어업적 이용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개발에 적극적인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30여년의 개발공사 기간 동안 흙먼지를 마시면서 기다려 온 피해어민들은 여전히 바다로도 나가지 못하고, 농업용지로 조성된 간척지에 농사를 짓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취재해 오던 김제 새만금간척지를 지난 11일 다시 찾았다.


#바닷길 막힌 30년·삶의 터전 잃은 30년

새만금 간척지 개발 공사는 1989년 11월, 노태우 대통령 당시 정부차원의 새만금종합개발사업 기본계획 발표에 이어 1991년 11월 방조제 사업이 착공에 들어가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환경파괴 논란에 휩싸이면서 장기간 표류하던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2006년 4월 방조제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완료하면서 본격적으로 간척지도 드러났다. 이어 2007년 4월에는 새만금 내부토지개발 기본구상이 발표됐고, 이후 여러 차례의 내부토지개발계획 변경을 거치면서 총 2만8300ha의 새만금 내부면적 중 30%인 8570ha를 농업용지로 개발하기로 결정됐다. 

장장 15여년 간 진행된 군산의 비응도와 신시도, 부안의 변산을 잇는 33.9km의 새만금방조제공사는 팡파르와 함께 끝이 났지만, 이로 인해 김제 어민들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막히게 됐다. 

김제시는 위로는 만경강을 끼고 군산시와, 아래로는 동진강을 끼고 부안군과 경계가 맞닿아 있다. 새만금방조제 공사는 이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를 서쪽 바다에서 방조제로 넓게 둘러싸 육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보니 김제 어민들이 바다로 나가는 길을 막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또 만경강과 동진강이 바다와 만나면서 형성됐던 갯벌이 사라진 것도 당연지사였다.
 

▲ 2008년 8월과 9월에 각각 작성된 김제 시장 명의의 확약서와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의 협의서. 주요 내용은 피해어민을 대상으로 우선적 가경작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믿고 기다려 왔다

생계터전을 잃은 김제지역 어업인들은 개발 당시 일시 보상을 받은 후 30여년의 세월을 ‘이제나 저제나 드러난 농지에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기대해 왔다. 개발이 되면 우선적으로 농사를 짓도록 해 주겠다는 관과 기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피해어민들에 대한 약속은 당시 전북도가 농림수산부로 보낸 공문서와 김제시의 확약서, 그리고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의 협의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새만금간척사업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 1989년 6월 26일자, 전북도청이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에게 보낸 공문에는 어업인에 대한 피해보상 요구 내용이 들어있다. 의견서 형식으로 발송된 공문은 어업 및 피해적정 보상 △구역 내 어업면허·허가·신고 등의 피해어민 적정한 보상과 △방파제·선착장·물량장 등 어민 편의시설의 이용 제한에 따른 대책 △토착 어민의 직·간접 피해조치 △어장 상실에 따른 대체어장 개발 방안 △토지분배 시 피해 어민 우선 고려 등이 골자였다.

또 드러난 간척지를 대상으로 새만금개발계획이 본격화될 당시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새만금 일부지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새만금이 농업용부지 축소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가경작 및 내수면 사업 추진 시 어업인 대표와 협의 추진할 것을 확약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김제 시장 명의의 확약서(2008년 8월)가, 같은 해 9월에는 새만금사업 김제지구 내 노출 간척지에 대해 ‘어업인 대표를 협의회에 포함해 가경작이 이뤄지도록 적극 협력키로 한다’는 내용의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장 명의의 협의서가 작성됐었다.

이에 훨씬 앞서 환경파괴 논란으로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중단됐던 기간 중 2001년 4월에는 당시 한갑수 농림부 장관이 ‘새만금 사업,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는 주제로 열린 ‘MBC 100분 토론’에서 ‘앞으로 농토가 조성되어지면 어민들이 희망하면 그 농지에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었다.

#이젠 농사지을 수 있게 됐는데

하지만 개발된 간척지에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피해어민들의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피해어민들로만 구성된 3개의 피해어민조합은 피해어민과 일반인이 함께 구성한 법인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임선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감사는 “당초 피해어민으로 구성된 조합을 만들어 간척지 조사료 사업에 참여하려고 했는데, 구성원을 80명으로 줄이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50명으로 줄이라는 식으로 계속 줄이더니 급기야 법인 구성원 중 절반만 피해어민이면 사업참여가 가능하도록 했다”면서 “그러면서 100% 피해어민으로 구성된 법인과 일반이 절반 포함된 법인을 같이 취급해 공개입찰에 참여하라고 하니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김제지역 농생명부지 내 3개 국립대학의 시험포가 들어선 것에 대해서는 더 황당해 했었다. 지난 2013년 12월 새만금 간척지 농생명 부지에 대한 농학계 대학의 참여제안이 있은 후 불과 2달여 만에 3개 국립대학교의 신청이 이뤄지고, 농식품부는 2014년 말 ‘간척지 시험·연구·교육·훈련사업 추진계획’이란 것을 만들어 150ha의 간척지 땅을 3개 국립대학에 임대해 줬다. 30년을 기다려온 피해어민들에게는 새만금 관련 사업에 참여하려면 공개입찰을 통하라는 것과 대조된다.

결국 3개 국립대학에 빌려줬던 부지는 당초 목적과 달리 양파 등을 재배한다는 보도(새만금 대학 시험포에 ‘대규모 양파단지’3099호 1면, 새만금 대학 시험포에 또 3142호 3면 참조)로 해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새만금간척지 대규모 조사료 생산 일관화 시스템 현장실증 공모사업’으로 전환된 후 개인에게 사업허가가 나면서 다시 논란에 휩싸여 있다.

피해어민들로 구성된 ‘새만금사회적협동조합’은 “새만금 농생명 부지를 저희 조합에서 지속적으로 임대 요청했으나 2019년 6월에 새만금개발청으로 이관돼 최근 개인에게 허가를 해준 사실을 접했다”는 성명서를 내고 내용을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선 상황. 

임선구 감사는 “다른 것도 아니고 30여년간 삶의 터전을 잃고 살고 있는 피해어민들에게 우선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것인데 피해어민들에게는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들어 안된다고 하면서 대학이나 일반 개인에게는 어떻게 넓은 면적을 덜컥덜컥 줄 수 있느냐?”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보상을 받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몇 백 만원의 보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보상해줬으니 다 끝난 일’이라고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 김영주 김제수협 조합장이 새만금 개발계획구상도 상의 새만금신항을 가리키며 어선이 드나들 수 있는 어항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어선이 드나들 포구가 없다

바다를 경계선으로 접하고 있는 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포구(어항)이 없는 곳은 어딜까? 바로 김제다.

김영주 김제수협 조합장은 “바다를 경계로 접하고 있는 지자체 중 유일하게 어항이 없는 곳이 김제시”라면서 “지금은 그 많던 어선들도 감척이 되고 겨우 17척이 남았는데, 김제에 어항이 없다보니 이마저도 부안의 가력항과 군산 신시항 등에 분산해서 정박해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김제시 소관의 포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심포항을 비롯해 거전·청하·화포·석치 등 수많은 포구가 있었지만 현재는 심포항만 남고 새만금 개발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심포항도 소규모 어선 여러 척이 정박해 있긴 하지만 바다로 나갈 수는 없다. 새만금 방조제로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김 조합장은 “다행히 심포에서 새만금신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새롭게 개통되면 10여분이면 갈 수 있고 올 6월에 개통 예정”이라면서 “김제 어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어항을 현재 건설 중인 새만금신항에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새만금개발 이전에는 3000여명이던 조합원이 1000여명으로 줄었고, 이에 따른 조합의 경제사업도 크게 위축된 상황”이라면서 이에 따른 지원도 요청했다. 그는 “새만금사업과 관련된 사업비가 농협은행을 통해서만 집행되는데 수협은행을 통해 집행될 수 있도록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피해어민을 대상으로 1년에 2차례 추진되는 농생명부지의 풀베기와 배후도시용지에 대한 경비 등의 사업이 올해로 만료된다”며 연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김제지역 어업인들에게는 아마저도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

이 요구를 뒤로 하고, 남은 17척의 배가 정박해 있다는 부안의 가력항과 군산의 신시항으로 차를 몰았다. 그나마 어선이 남아 있는 김제 심포항에서 부안 가력항까지는 60km 남짓. 광활→성덕→죽산→동진→행안→하서를 거치고, 다시 부안 쪽 새만금방조제 입구를 지나 15km를 달려야 했다. 신시항은 가력항에서 다시 새만금방조제길을 타고 군산 쪽으로 13km가량을 더 가야 했다. 내륙을 둘어 1시간 넘게 차를 몰다보니 새만금신항에 김제시 관할의 어선이 드나들 수 있는 어항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왜 나오는 지’  마음에 와 닿았다.

하지만 풍요롭고 넓은 갯벌과 연안을 내주고 지금은 농생명부지 내 풀베기와 배후도시용지의 경비업무 기간 만료를 염려하는 피해어민들의 심정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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