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농정사’ 연재 마친 우농 최양부 박사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농정사를 정리하면서 새삼 나의 삶이 우연의 연속에서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 의해서 나의 인생의 길이 새롭게 정해진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김영삼대통령 문민정부 농림해양수석비서관을 지내고, 주 아르헨티나 대사(2003~2006년), 대한민국 농업통상대사를 역임한 우농(愚農) 최양부 박사는 농정사를 되돌아보며 이같이 말한다. 1945년 출생해 1964년 서울대 농업경제학과에 입학하며 농업과 인연을 맺고 연구자와 정책책임자로 평생을 농업에 몸담아 온 그는 우리나라 농업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특히 그는 1990년대 UR협상 등 농업의 격변기에 개방화와 세계화에 대응하며 새로운 농정좌표 구축에 열정을 쏟았다. 우리나라 농업역사와 함께해 온 최양부 박사가 지난 2018년 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우리나라 농정사를 회고한 ‘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를 집필해 한국농어민신문에 게재했다.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 UR농업협상 타결에 이르는 우리나라 농업과 농정의 역사를 매주 1편씩 100회에 달하는 대작이다. 우농 최양부 박사를 만나 우리나라 농정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1990년 시작 UR 농업무역협상
쌀시장개방협상에 모든 것 바쳐
농업 문제 정리·정책 구상 등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 만나
농수산수석비서관으로 활동
신농정 수립·농어촌특별세 신설
독도접안시설 설치 등 펼쳐

내년이면 농협 창립 60주년
책임·역할 다하는지 항상 의문
비효율적·방만 운영 비판도
40년 앞 내다보고 미래 설계를

농특위 중심 농정의 틀 전환
농식품부와 유리된 채 겉돌아
우리 농업 당면한 시급한 문제
문재인 정부, 해결에 나섰으면

▲‘자전적 농정사’를 집필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들이 있다면?
“1967년 김동희 박사를 만나 인생의 진로와 목표를 농경제학 연구로 정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유학 중 1974~1976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학문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 정처 없이 헤매다가 칼 포퍼(Karl Popper)의 인식철학과 과학철학을 만나 학문하는 자세를 깨닫고, 나의 가치관을 정립한 것, 그리고 1990년 UR 농업무역협상과 쌀시장개방협상이란 국가적 대사를 만나 1993년 UR 협상 타결 때까지 4년간 농림수산부장관 및 정부대표단의 자문관으로서 나의 모든 것을 바쳤던 일, 1993년 말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1998년 2월 말까지 UR 이후 개방화와 산업화 등 격변하는 사회에서 우리 농업이 당면한 문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좌표를 세우고 새로운 정책들을 구상하고 추진한 것 등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었는데, 당시 만나게 된 배경은?
“김영삼 대통령과 만남은 UR 농업협상이 맺어준 인연입니다. 1993년 12월 15일 UR 협상이 타결되자 김 대통령은 12월 18일 UR 협상 정부대표단을 청와대로 불러 노고를 치하했는데, 이 자리에서 나는 김 대통령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12월 23일 청와대에 신설된 ‘농수산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1998년 2월 24일 청와대를 나올 때까지 김 대통령을 모시고 농정과 임정, 그리고 해양수산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농수산수석비서관으로 있으면서 펼친 농어업정책은 무엇들인가?
“1990년대는 개방화와 세계화에 대응한 정책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애정을 갖고 추진한 정책을 꼽는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농정(6.14 농어촌발전 대책) 수립, 농어촌특별세 신설로 농림투융자 확대, 한국농업전문학교(현 한국농수산대학) 설립, 농림수산기술관리센터(ARPC) 설립, 신유통시스템 구축을 위한 유통개혁추진 및 농협 개혁, 환경농업육성법 제정 등 환경농업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구축, 농어촌학생 대학특례 입학제 도입, 농어민연금제 도입 등 농어민복지증진, 국립수목원 설립 및 광릉숲 보존대책 수립추진, 해양수산부 설립, 독도를 국민 생활 속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의 독도방문을 위한 독도접안시설 설치 등입니다.”


▲1990년대 UR/WTO 통상협상 중심에 계셨었는데 당시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1990년대 UR 협상 당시 우리의 가장 중요한 협상 목표의 하나가 ‘농업 개도국 지위 확보’였습니다. 30여 년 전 UR 협상장 분위기는 우리를 선진국으로 분류했습니다. 자동차를 수출하고 가전제품을 수출하는 나라를 개도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UR 농업협상 팀은 우리나라 일반 산업분야는 선진국에 진입했으나 농업 분야는 낙후되어 개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과 EU를 비롯한 협상 상대국들을 설득했습니다. 농림수산 분야만 분리해 개도국이라고 주장하는 우리의 논리는 시간이 가면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농업개도국이란 말이 처음 생겨났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WTO 개도국 지위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 앞으로 농업계 대응 방향은?
“개도국 지위 포기로 WTO에서 관세나 비관세장벽 인하 등의 책임과 의무가 커지는 부담이 생겨나지만 이는 우리가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 시장은 수많은 FTA 협정으로 그보다 높은 수준의 개방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도 WTO 내에서 시장 규칙이나 무역규범을 세우고 개선하는데 선진국으로서 책임 있는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농림수산 시장경제 질서를 더욱 선진화하고 세계화하며 능률을 높이는 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농협개혁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지난 1월 31일 이성희 신임 농협중앙회장이 당선된 상황에서 농협개혁에 대한 견해는?
“우선 이성희 회장의 당선과 농협중앙회의 새 출발을 축하드립니다. 더욱이 내년이면 농협이 창립 6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농협은 과연 농업인 조합원을 위한 농업인에 의한 진정한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항상 의문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특히 농협이 협동조합 기업으로서 효율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농협 60주년을 맞이해 구조적 과제들을 진솔하게 성찰하고, 세계 환경 변화를 전망하며 100년 조합 기업을 향한 40년 앞을 내다보고 새로운 농협발전의 미래를 설계하는 ‘농협 60년과 새 40년 비전’ 특별작업의 추진을 건의 드립니다.”


▲끝으로 농업·농촌 정책 방향에 대해 당부하실 말씀은?
“1995년 WTO 체제의 출범을 앞두고 김영삼 정부는 1994년 6월 ‘변화와 개혁의 신농정’을 수립하고 농정개혁 작업을 추진했고, 지난 25년간 신농정의 기본 틀은 유지돼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신농정 25년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3년 차가 되어서 농특위를 중심으로 농정의 틀을 전환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 농정 방안 수립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농정 수립과 추진의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농식품부와 유리된 채 겉돌면서 연구토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농특위와 농정당국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해결해야 할 우리 농업이 당면한 실질적이고 시급한 구체적인 농정문제 해결을 위한 작업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농정개혁에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적절한 때가 있는데 그 때(timing)를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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