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로컬푸드에 대한 지원이 늘면서 몇 달 전 순창 읍내에도 로컬푸드 직매장이 새로 생겼다. 농협 하나로마트 매장 가운데 나무 매대가 생기고 농가들이 직접 포장하고 가격을 매긴 농산물들이 하나 둘씩 진열되기 시작했다. 아는 농가들의 농산물이 많이 보여 반갑고 구경하는 즐거움도 크다. 지금까지는 순창 고추장마을 입구의 로컬푸드 매장이 유일한 순창 로컬푸드 매장이었는데, 이번에 농협 하나로마트에 로컬푸드 매대가 생기면서 순창 안에서도 로컬푸드 매장이 두 곳으로 늘어났다.

로컬푸드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 농산물을 뜻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동거리를 단축시켜 물류에 드는 자원 낭비를 막고,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대규모의 물량이 움직이는 일반적인 농산물 유통 경로가 아닌 만큼 판로 확보가 어려운 소농들을 위해 마련된 대안적인 유통 경로다. 국내의 경우 전북 완주군이 가장 최초로 로컬푸드를 정책으로 도입해 성공시켰고, 이제는 이 정책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번엔 순창 읍내에도 로컬푸드 매장이 생긴 것이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리 크지 않은 마트 안에서 일반농산물, 친환경농산물, 로컬푸드 매대가 상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과연 이곳의 로컬푸드 매대가 출하 농가에 얼마나 이익을 가져다줄지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2019년 기준 순창의 인구는 2만8382명, 그마저도 32%는 65세 이상인 현 상황에서 순창군민을 대상으로 얼마나 매출이 발생할 것이며, 또 얼마나 매출을 더 늘릴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한 생각도 들었다.

귀농 전 기자 생활을 할 때부터 완주의 로컬푸드 사례를 탐방하기도 하고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순창에 내려온 후에도 로컬푸드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완주에서 봤던 로컬푸드 매장과 순창에 내려와 4년간 관찰했던 로컬푸드 매장은 뭔가가 달랐다.

우선 순창의 로컬푸드 매장은 신선식품 비중이 매우 낮았다. 매일 신선 농산물을 포장해서 진열해도 팔리지 않으면 며칠 뒤 다시 농가가 회수해서 처리하는데, 이는 고스란히 농가의 손해로 남는다. 그러니 일반 유통에는 낼 수 없는 B급 상품들을 매우 싸게 내놓거나, 관광객에게 직거래로 팔릴 가능성이 높은 몇 개 품목만 조금 내게 된다. 매장에선 곡류, 말린 나물, 즙이나 과자 등등 장기판매가 가능한 식품군이 주류를 차지했다. 좋은 품질의 신선농산물은 잘 나오지 않았다. 농가가 원하는 가격으로 농산물을 포장해서 내고, 이것이 잘 팔리는 일이 거듭되면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는데, 농가가 노력해서 포장한 만큼의 매출이 나오지 않다보니 악순환이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순창과 상관이 없는 물품들이 많았다. 순창에서 나올 리 없는 건어물이라든지, 생필품 등이 들어와 있었는데, 지역에서 장을 본다고 생각할 때 최소한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지금까지 중간에 운영주체도 바뀌고 나름의 내실을 기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왔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이러한 운영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운영 주체만의 문제일까.

로컬푸드가 정착하기까지 완주에서는 여러 가지 시도와 노력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주라는 대도시를 기반으로 잡고 있으며, 완주 자체도 도시생활 인구가 적지 않다는 배경을 로컬푸드의 성공과 결코 분리시켜 봐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작은 군 단위인 순창의 소농들에게 완주처럼 지원해줄테니 로컬푸드를 통해 판로를 만들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다.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소규모 군에서는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결국 작은 군 단위 소농들이 기대할 수 있는 로컬푸드 판매처는 완주나 전주 등의 인근 대도시인데, 이미 로컬푸드의 성공사례로 자리매김한 이곳에서 순창의 농산물은 지역 밖에서 오는 일반농산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치열한 가격과 품질, 물량 경쟁을 뚫고 입점해야 하는 시장이지, 소농들의 판로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나는 최근 지원정책 등을 통해 로컬푸드가 가진 훌륭한 가치와 성과 등이 확산·공유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은 군 단위들이 받게 되는 차별과 판로 확보의 어려움 역시 함께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군 단위의 생산자들에게 있어 지역 내 로컬푸드 매장은 대안적인 판로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전국 단위의 로컬푸드 정책이 판로 마련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불편한 사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소농들의 판로 문제를 다룰 때 로컬푸드가 만능 해결사처럼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도시를 끼고 있지 않은 수많은 군 단위에서는 여전히 판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심도 있은 고민이 오히려 로컬푸드에 막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라북도 권역 단위의 푸드플랜 등 다양한 이야기가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 시나 군 단위의 행정구역으로 한정하고 있는 지금의 로컬푸드를 넘어 소규모 군에서도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순창에 내려와서 먹거리 문제, 소농을 위한 유통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예전에는 해결책인 것 같았던 방식들도 다시금 회의적으로 생각해보게 됐다. 이런 고민들이 이 지역에 맞는 더 좋은 대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깊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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