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정체성 확립 최우선…“협동조합의 정신 살려야”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 이성희 회장이 지난 1월 31일 1차 투표에 이어 진행된 결선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된 직후 양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성희 제24대 농협중앙회장이 ‘농업인 중심의 농협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농협이 역할을 해 나가겠다’며 4년의 임기에 들어갔다. 취임식을 대신해 강원도 홍천의 농촌현장에서 일손돕기와 농업인 대화로 공식 업무에 돌입한 이성희 회장은 후보로 뛰면서 내놓은 공약을 성실히 이행해 건강한 농업·농촌을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성희 신임 회장의 농협 운영 방향과 농업계 요구, 농협선거 개선 방안을 짚어봤다.   


◆이성희 회장의 운영방향

‘함께하는 농협’ 강조
조합장·지역조합 중심의
상향식 개혁 내걸어
농업인 월급제·퇴직금·수당 등
소득안정제도 약속도 눈길


이성희 신임 농협중앙회장은 ‘함께하는 농협’을 강조했다. ‘다함께 미래로! 농업인의 농협!’을 선거 슬로건으로 하며 △조합장과 함께 농협 정체성 확립 △농업인을 농협의 주인으로 △개혁을 넘어 유통의 대변화 추진 △중앙회 모든 사업을 농축협 중심으로 개편 △미래를 준비하는 ‘농협다운 농협’ 등 5대 공약도 제시했다. 이 같은 내용의 공약을 기반으로 한 취임사를 4일 발표했다.  

이성희 중앙회장은 지역조합장과 지역조합 중심의 상향식 개혁을 내걸고 중앙회장 직선제와 지역조합장 참여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회 이사에 조합장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으로 농협법 개정을 추진해 조합장 이사 비중을 현행 1/2에서 2/3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역본부 대표 기능을 조합장이 수행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농업인 소득 안정제도 구축에 대한 약속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농업·농촌 공익적 기능 수행에 대한 보상 방안 마련, 농업인 월급제·퇴직금·수당 등을 제시하고 제도 도입을 위한 관련 법률을 개정하거나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농축산물 유통 혁신도 공약 전면에 기록돼 있다. 취임 즉시 ‘(가칭)올바른 유통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10대 작물 수급예측 정보시스템 구축과 유통손실보전금 1000억원 조성을 약속했다. 안성농식품물류센터 운영 개선과 종합식품회사 인수 등도 공약이다. 

상호금융 특별회계 수익에서 5000억원을 매년 추가 정산하는 방안도 공약에 포함돼 있고, 디지털농협 구축에 1조원 투자, 청년농업인 육성과 여성조합원 지원 확대, 농협재단을 조합원 복지관으로 개편 등도 약속했다.

이성희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차입금 증가로 악화된 중앙회 재무구조를 정상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며 “농협에는 변화와 혁신이, 농촌에는 풍요가 가득하도록 최선을 다했을 때 ‘농협다운 농협’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농업이 대우받고 농촌이 희망이며 농업인이 존경받는 농토피아(農+Topia) 구현을 위해 모든 것을 쏟을 것”이라며 “농협은 농업인과 함께 성장하는 협동조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성희 회장은 지난 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를 공식 일정으로 중앙회장직 수행에 들어갔다. 또한 각종 현안을 고려해 취임식을 갖는 대신 4일 강원도 홍천 서면의 한 딸기재배 농가에서 일손돕기를 하며 현장경영을 전개했다.

이성희 회장은 이날 농업인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며 “12만 농협 임직원 모두는 농업인이 없는 농협은 존재의 이유가 없음을 명심하고, 함께 힘을 합쳐 건강한 농업·농촌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농축산물 유통구조를 선진화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 100년 기업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 이성희 회장(왼쪽)이 2월 4일 강원도 홍천에서 취임식을 대신해 농촌일손돕기와 농업인 간담회를 가졌다.


◆농업계 요구는

“농업인 위한 농협으로”
계통사업 지원 확대
판매농협 구현 대책 주문

농업인 대변자 역할 충실
중앙회장 직선제로 전환
중앙회-조합 경합사업 해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와 관련 농협 본연의 역할과 정체성을 강조했다.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 한다’라는 농협 설립 취지에 맞게 농업인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한농연은 이성희 중앙회장 당선이 확정된 직후 성명서를 통해 선거 공약을 충실히 이행해 줄 것을 촉구했다. 또한 농업인 권익 및 실익 증진을 위해 △농협 경제지주 재정 건전성 제고를 위한 비(非)사업부서 중앙회 편입 △지역 조합장 선거 문화 개선을 위한 위탁선거법 개정 △농업인 생산비 경감을 위한 계통사업 지원 확대 △판매 농협 구현을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 △경제지주 자회사 통폐합을 통한 수익구조 개선 등을 요구했다.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한국농축산연합회·농민의 길은 농협중앙회장 선거 하루 전인 1월 3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여전히 농협은 협동조합보다는 은행으로 기억되고 있고, 중앙회는 회원조합을 위한 연합체보다는 자기이익을 위한 조직으로 비판받고 있지 않은지 숙고해야 한다”며 “아주 오래된 농협에 대한 조합원의 불신과 지역농협과 중앙회 간의 갈등을 직시하고 ‘협동조합’의 정신을 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회원조합이 경쟁력 있는 조직체계 구축을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중앙회의 역량 집중 △농정에서 농업인의 대변자로서 역할 충실 △중앙회장 선출 방식을 조합장 직선제로 전환 △중앙회 계통구매사업 획기적 개선 △중앙회와 회원조합 간 사업 경합 원천 해소 △도시조합은 신용사업자산의 3% 이상을 농축협이 공급하는 농축산물 판매에 의무화 △지자체 금고 수익금을 지자체 협력사업비로 전액 지원해 농협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 △보험 및 카드 사업이 회원농협과 조합원의 혜택으로 돌아가도록 사업구조 재편 등 8가지 정책 요구를 제시했다. 

이 같은 요구안은 전국 지역농협 조합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됐다. 설문조사를 종합한 결과 중앙회의 비전 1순위 ‘회원조합 지원을 통한 조합원 소득 및 회원조합 실익 증대’, 2순위 ‘연합회체제로 중앙회 지배구조 개혁’, 3순위 ‘농민조합원의 대표조직으로서 대정부·대국회 농정활동 적극 전개’ 등이었다.  


◆지역갈등 해소해야

지역간 대결구도 양상
농협 내부 갈등 증폭 우려
중앙회장 출신 지역 따라
임직원들도 희비 엇갈려
갈등 해소·공정 운영 요구


선거 후유증도 우려되고 있다. 이번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전직 중앙회장과 지역간 대결 구도 양상을 보여 앞으로 농협의 내부 갈등이 증폭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농협 조직내부를 들여다보면 임직원들이 출신지역에 따라 분류되는 경향이다. 출생지에 따른 ‘족보’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중앙회장을 배출하느냐에 따라 농협의 임직원들 희비도 엇갈린다.

이런 가운데 경북이 기반인 최원병 전 회장을 추종하는 세력과 호남 기반의 김병원 전 회장을 추종하는 세력이 이번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미 선거기간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지역 간 연합과 대립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는 1차 투표 집계 결과에도 고스란히 표출됐다. 결선 투표에서 최원병 전 회장의 세력을 대표하는 이성희 후보가 당선되자 중앙회 힘의 중심이 이동했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농협 내부에서는 암묵적으로 “경기와 경북 패권이 시작됐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희 신임 회장의 농협중앙회 조직 운영과 인사 향방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역갈등 해소와 공정한 농협 운영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성희 회장이 지역 조합장의 중앙회 이사 참여 확대를 약속한 만큼 중앙회와 지역농협, 도시조합과 농촌조합의 상호 협력관계 강화도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농협 선거제도 개선’ 무엇이 필요한가
조합장 직선제로 전환 요구 여전

농협법·위탁선거법 개정
선거운동 규정도 바꿔야


중앙회장선거 직선제를 담은 농협법 개정안과 유권자 알권리 보장·선거운동의 자유 확대 등을 담은 위탁선거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서 추진됐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국 무산됐다. 따라서 21대 국회에서는 농업계가 요구하는 농협법과 위탁선거법을 개정해 전국동시조합장선거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협법 개정이 불발돼 이번에도 대의원 간선제로 치러진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전국의 조합장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환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후보들 또한 모두 공약으로 직선제를 약속했다. 전체 회원 조합장 의사가 반영된 직선제와 정책선거로 중앙회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운동 규정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 선거에 처음 도입된 예비후보자 제도 덕분에 선거운동 기간이 늘어 후보자와 공약 파악에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책선거를 위한 후보자 공개토론을 비롯해 본인과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 중 1인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무분별하게 토론회가 진행되지 않도록 토론회 주최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특정 단체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협중앙회장 후보등록 기탁금 신설도 검토돼야 한다. 지역조합장 선거에서 조차 정관에 따라 500~1000만원의 기탁금 제도를 적용하고 있지만, 중앙회장 선거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후보 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기탁금은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하는 제도이다.

회원조합장 50인 이상 100인 이하 추천을 받도록 하는 후보자 추천제도도 손질해야 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중복 추천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현실을 반영해 후보자를 복수 추천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 공보에 후보자 전과 기록 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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