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농촌개발 정책 1부-농촌개발, 이대로 좋은가?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농촌개발 정책의 변화와 내용

UN 원조로 1958년 도입된
‘지역사회 개발사업’이 최초
새마을운동·농촌종합개발 거쳐
2000년대 농촌정책으로 변화

우리나라의 농촌개발 정책은 개도국의 농촌개발을 위해 UN 원조로 1958년 도입된 ‘지역사회 개발사업’ 프로그램이 처음이다. 1970년대는 전국적인 새마을 운동으로 이른바 ‘잘살기 운동’이 추진된다. 1980년대에는 국토종합 개발전략에 따라 군단위 정주생활권 중심의 ‘농촌지역 종합개발’ 개념이 도입된다. 1990년대에는 UR 협상이후 농업 농촌 종합개발을 위한 종합대책으로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이 제정되고, 기존 군 단위 농촌지역 종합개발 정책이 면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농촌정주생활권 개발정책으로 바뀐다.

농촌정책은 2000년대부터 기존 방식과 다른 변화를 맞는다. 농산물 시장 개방과 농촌공동체 해체로 도농간 생활 격차가 더욱 확대되는 가운데 농정이 기존 농업정책으로부터 농촌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농촌정책으로 시야를 넓힌 것이다. 농촌개발에 ‘그린투어리즘’이 등장했고, 2002년 녹색농촌체험마을, 농촌전통테마마을 등 마을 단위 사업이 추진됐다. 2003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2004년에는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5년부터 권역단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본격화된다. 지역 주체 역시 기존 농민 중심에서 지역주민으로 확대된다. 농정 추진체계도 상향식 추진체계를 내세우게 된다. 2010년 기초생활권 포괄보조금제도가 시행되면서 현재의 정책 틀을 갖추게 된다. 2014년부터는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체계 개편을 통해 농촌주민 역량단계별 맞춤형 지원을 추진 중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자치분권 강화로 2020년부터 일반농산어촌사업에서 읍면 소재지 거점 개발은 중앙정부가, 배후마을 정주여건 개선은 지자체가 전담하게 됨에 따라 사업의 효과적 추진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농촌협약’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농촌정책의 이름으로 추진되는 사업은 2019년 농림사업 시행지침서 상으로만 봐도 농촌지역개발 및 도농교류 활성화, 농촌 복지증진 등의 분야에서 55개에 달한다.

◆ 계속되는 시설 위주 사업

매년 예산 1조2000억원대
지난해 1조3000억원 투입
농촌다움 해치는 개발 지적 속
대안 없으니 개선 목소리도
‘전면적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

농촌개발사업의 종류와 범위는 방대하고 시기별로 사업 내용도 변화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예전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그리고 현재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이다. 일반농산어촌사업은 국고 70%, 지방비 30%를 합쳐서 예산 규모가 매년 1조2000억원대이고, 2019년에는 1조3000억원을 넘었다.

이 사업은 규모만큼 잡음도 많고 평가도 엇갈린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시설과 토건 위주로 농촌다움을 해치는 개발을 중단하라는 지적이 있는 반면 농촌 활력을 위해 다른 대안이 없으니 개선해서 가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이 사업뿐만 아니라 농촌개발 정책이 농촌주민을 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4년에 시작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하다. 어째서 이런 평가가 나왔을까?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기초생활환경정비와 경관 개선, 소득기반시설 확충 등을 목적으로 생활권이 같은 3~5개 마을을 권역단위로 통합, 1개 사업권역에 약 40억~70억원의 예산을 지원한 사업이다.

2011년 11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촌지역 활성화정책의 평가와 발전방안’(김정섭 등)에 따르면 36개 권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권역당 평균 65억원의 예산 중 49억원의 예산이 하드웨어 성격의 시설에 투자됐다. 이 중 70%에 해당되는 34억원 정도가 농업생산기반시설, 농산물 가공·유통시설, 농촌관광시설 등 소득원 개발에 투입됐는데, 소득제고 효과는 상당히 미흡해서, 36개 권역의 사업 완료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권역 주민의 소득증가분은 6억6600만원에 불과했다. 이는 투입 대비 산출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미흡한 수준. 특히 36개 권역 가운데 10개 권역은 추가적인 농가소득을 전혀 보고하지 못했다. 소득증가를 보고한 26개 권역 중에서도 2억원 미만이 9개에 이르는 것도 문제였다.

이 사업의 성과가 투입에 못 미친 원인은 표방했던 것과 달리 진정한 의미의 상향식 접근이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소득원 개발에 치중했음에도 공공부문의 보조율이 지나치게 높아 주민들이 적절한 수준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참여동기를 강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또한 농촌 지역주민의 역사, 문화, 경제적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 범역으로 행정리 2~3개를 설정해 사업의 공간적 단위로 삼은 것도 문제였다. 농경연은 이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깊이 있게 재검토 할 정책사업이라는 의견을 냈다. 결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2010년 이후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의 권역단위 종합정비사업으로 변경됐다.

현재 농촌개발의 가장 큰 사업인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은 읍면소재지종합정비사업 및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권역단위 종합정비사업, 기초생활인프라정비 등 다양하다. 읍・면소재지종합정비사업이 2014년까지 추진됐고 2015년부터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으로 재편됐다. 2010년에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산촌생태마을조성사업, 어촌종합개발사업 등이 있었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권역단위종합정비사업으로 통합됐다가 2015년 이후 ‘창조적마을만들기’라는 범주 안에 권역 단위와 마을 단위의 구분이 생기고, 마을 단위 사업은 다시 여러 가지로 세분됐다.

◆방치된 시설, 사유화까지

3212개 지구 9505개 시설물 조성
활성화 된 곳은 절반수준 그쳐
50억 들인 테마공원 방문객 ‘0’
계획부터 부실·운영권 갈등 탓
전기료 등 관리비 감당 못하기도

그렇다면 농촌개발 사업의 현실은 과연 어떤가? 2019년 12월 감사원의 ‘농산촌 개발 등 농산촌 지원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농촌 지역개발 사업으로 2019년 현재 총 3212개 지구에 9505개 시설물이 조성돼 있다. 이 가운데 매년 전체의 30%에 대해 농식품부가 연 2회 세부운영실태를 점검한 결과 2019년 상반기 점검대상 2410개 시설 중에서 운영되는 곳은 2214곳이었는데, 이 중 활성화된 곳은 1241곳이고, 현상 유지는 864곳, 운영미흡은 109곳으로 확인됐다. 특히 운영하지 않고 방치된 곳은 153개소, 용도 외로 쓰이는 곳은 23개, 사유화된 곳 19개, 법을 위반한 곳 1개로 조사됐다.

실제 감사원이 이번 감사기간인 2019년 7월 중 4개 시·군 55개소를 대상으로 사후관리 실태를 현장 점검한 결과는 더욱 형편없다. 21개소는 운영중단, 7개소는 특정 개인 또는 법인이 사용 중, 2개소는 본래 지원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테마공원도 농촌개발 사업의 문제가 드러나는 단골메뉴다. 감사원에 따르면 총사업비 50억 원을 들여 2013년 조성된 한 농촌테마공원의 경우 2016년 이후 2019년 7월 현재까지 팜스테이, 약초체험 등을 위한 방문객 수용 실적이 없다. 조성된 농산물판매장 및 허브원・약초원 등의 시설은 미운영・방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인이 정자・팜스테이 시설 등 공원시설에 텐트 등을 설치해 무단 점유하고 있다. 또한 같은 시기 역시 50억원을 들여 만든 다른 지역의 농촌테마공원은 생태체험전시관과 온실이 전시물과 재배식물도 없이 방치되어 있고, 아로마체험관을 비롯 온실 및 언덕길, 전시실, 이벤트홀, 체험학습장 등 부속시설도 미운영 상태다. 이곳은 2017년 7월 이후부터 2019년 7월 현재까지 방문객 실적이 없었다.

이처럼 정부 지원 시설이 유휴화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4년 12월 강원발전연구원의 ‘강원도 농촌지역 정부지원 공동시설 활성화 방안’ 연구보고(이영길)를 통해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서 공동시설의 유휴화 원인을 보자.

첫째, 계획수립의 단계에서 시설의 용도, 규모, 운영주체, 프로그램이 적정하지 못한 경우 실제 사업이 추진될 때 공동시설 운영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마을의 특성과 형편, 추진역량을 잘 따져서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컨설팅 업체에 위탁, 정부 지원에 맞춰 타 지역을 모방하는 것도 이런 문제의 원인이 된다. 두 번째는 사업이 조성된 후 마을 내 운영권의 갈등으로 공동사업 운영이 지연되는 경우다. 몇 개 마을 권역 단위로 사업이 추진되다 보니 마을간 이해관계 때문에 시설물 배치 등을 놓고 갈등을 반복하면서 시설이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운영주체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웃간 고소고발 등 불신이 생기기도 한다. 세 번째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다. 큰 건물을 지어 놓고 소득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면 전기료와 난방비 등 관리비도 내지 못해서 유휴화된다. 할 수 없이 식당 숙박 등으로 시설의 용도를 변경하거나 위탁을 주려 해도 제도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공모라는 이름의 관주도 사업

관주도로 이뤄지는 농촌현장포럼 
‘증빙서류 제출용’ 비판 많아
퍼실리테이터 의무화도
의사결정방식 다양성 저해 지적

농림축산식품부는 2014년 주민역량 단계별 지원체계를 마련,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전역량강화를 의무화하고 있다. 상향식 추진의 본질적인 목적은 농촌사회 유지 발전을 위한 농촌주민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으로 내생적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방식의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설 토건 위주의 사업 내용은 바뀌지 않고 ‘주민과 지역이 주도하는 상향식 사업’, 그리고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사업추진체계’의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경제학 박사)은 “일반농산어촌사업 중 기본계획 수립분야에 수천억원이 집행됐지만, 주민 수요와는 무관하게 사업계획이 수립되고 있다”며 “행정과 컨설팅사, 소수의 지역리더들이 주도하는 사업계획은 주민 수요와 무관하게 지역별로 붕어빵 사업계획을 양산하고, 가장 많은 예산이 다목적회관 건립에 사용됐지만, 문화·여가, 복지, 운동 시설 등 모든 분야에서 농촌주민들의 활용도나 만족도는 여전히 높지 않다”고 말했다.

공모제, 주민참여 확대라는 취지도 형식으로 흐른다. 정부가 상향식 농촌개발사업의 근거로 내미는 농촌현장포럼은 그러나 관주도로 사업이 구상되고, 그 내용 또한 주민역량 강화보다는 사업계획을 정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농촌중심지활성사업 예비계획 수립단계에서 진행되는 농촌현장포럼은 주민들이 사업의 취지와 내용을 이해하고 마을의 자원과 과제는 무엇이고,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토론하기 보다는 결과 도출과 증빙서류 제출용이라는 비판이 많다. 또한 의견수렴 방안으로 도입한 퍼실리테이터 의무화도 의사결정방식의 다양성을 막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농촌개발 전문가는 “퍼실리테이션이 이전에 몇 명이 주도하던 의사결정 구조를 바꾼 것은 좋지만, 지금 너무 형식으로 흐르는 게 문제”라며 “마을 문제는 현장성, 전문성,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대안을 추출하는 게 필요한데, 국가가 자격증까지 만들어 다양한 의사결정 방식을 하나로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주민참여를 이끌어 내는 게 어려우니까 회의나 행사 때 플래카드를 갈아 사진을 찍고, 몇 차례 역량강화를 진행한 것처럼 형식적으로 서류를 작성한다는 말도 있다. 또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너무 저가입찰로 들어가다 보니까 업체들이 사업단가가 낮아 좋은 강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현장포럼을 주관하는 농촌활성화지원센터의 역량과 실효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의 지원으로 현재 9개도의 거점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설치된 농촌활성화지원센터는 주민주도형 사업을 위한 중간지원조직이어야 한다. 하지만, 교수가 운영하고 주로 대학원생들에 의해 업무가 진행되다 보니 현장성과 전문성도 떨어지고, 운영비도 부족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한 도청 소재지에서 일선 행정리 마을까지 찾아가다 보니 마을과 밀착될 수도 없고,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현장포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가 소득제고 효과는 ‘미미’…토건업체·컨설팅사만 배불려 

◆한국농어촌공사와 토건업체, 컨설팅업체를 위한 사업?

농어촌공사, 개발사업 독점
우후죽순 생긴 민간 컨설팅회사
농촌개발 관련 모든 영역 잠식
전문성 없이 토목사업만 양산

농촌개발사업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한국농어촌공사와 컨설팅업체가 주도한다는 점이다.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촌개발사업의 거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다. 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한국농어촌공사 등 전문기관에 위탁하여 시행하게 할 수 있다’고 한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 덕분이다. 이에 따라 한국농어촌공사는 중앙단위에서 농식품부의 위탁으로 신규사업 타당성 검토, 사업설명회, 사업 모니터링과 컨설팅, 중앙계획지원단 운영, 각종 교육을 운영한다. 또한 지역단위에서는 한국농어촌공사 시군지사들이 대다수 시군으로부터 현장 추진사업을 위탁받아 시행한다.

예를 들어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에 선정된 시군에서 한국농어촌공사 시군지사에 사업관리를 위탁하면, 한국농어촌공사 시군지사는 다시 이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본계획 수립 등으로 나눠 다시 수행기관(컨설팅)에게 맡긴다.

민간 컨설팅회사는 정부가 상향식 사업을 강조하면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농촌개발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참여하고 있다. 2010~17년까지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을 통해 예산이 투입된 내용을 살펴보면,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7년간 2965억원이, 농촌주민 역량강화를 위해 1641억원이 투입됐다. 이 분야가 바로 컨설팅업체의 주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컨설팅업체들이 과연 지역 실정에 맞춰 마을만들기를 컨설팅할 만한 전문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농어촌공사나 컨설팅업체들이 경영비나 소득 창출 계획을 고려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사업계획을 내고 시설과 토목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 결국 토건업자들의 돈 잔치가 되고, 사업이 끝나고 이들이 떠나면 지역 활성화는 커녕 시설운영의 부담이 주민들과 지역에 전가 된다”고 비판한다. 이런 실정에서 과연 공사가 하는 역할이 무엇이며, 사업을 관리하고 실행할 전문성과 능력이 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2017년 농어촌공사가 수탁한 사업은 221개 지구로 전체의 56%다. 이와 관련 한 지역개발 전문가는 “현장에서 많은 잡음이 있는데도 사업의 대부분을 위탁받고 있는 농어촌공사의 역할,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없다”면서 “이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복사업, 칸막이 업무

농식품부·해수부·행안부부터
기재부·교육부까지 제각각 추진
지방단위서 통합적 접근 안되고
중앙부처 지침근거 ‘연계 난색’

농촌개발사업의 또 다른 문제는, 그것이 중앙부처나 지방단위에서도 통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칸막이로 제 각각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농식품부만 해도 농촌정책국 소관으로 6차산업, 농촌관광, 공동체회사,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역량강화, 창조적마을, 권역, 중심지), 현장포럼이, 농촌진흥청에는 귀농귀촌, 교육농장이 있고, 해양수산부에는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의 어촌분야가 있다. 또 행정안전부에는 마을기업, 지역공동체, 기획재정부의 협동조합,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보건복지부의 자활기업,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환경부의 지속가능발전, 교육부의 마을교육공동체 등의 정책사업이 존재한다. 이들 사업은 결국 지역단위에서 지역에 맞게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모두 제 각각 추진된다.

예를 들어 인구 8000명 규모의 B읍에서는 2016년 중소기업청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10억원 규모의 재래시장현대화사업이 시장상인들을 중심으로 추진됐는데, 같은 시기에 농림축산식품부의 20억원 규모 지역창의아이디어사업이 읍 소재지 마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또 광역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지역농협로컬푸드직매장 건립이 60억원 규모로 추진됐다. 여기에 2018년부터는 농림축산식품부의 60억원 규모 농촌중심지활성사업 예비계획을 수립했다. 읍 소재지 2∼3개 마을 중심으로 사업이 집중되고, 각 사업별 지역주체 역시 대부분이 중복 참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업 간 연계가 되지 않는다. 각 사업별 지자체 담당부서와 담당자가 다르고, 개별 사업별로 하드웨어 시공업체와 역량강화 컨설팅기관을 개별 선정, 운영하고 있다.

각 부처에서 내려오는 사업이 여럿이라 하더라도 지역에서 필요에 따라 그것을 통합적으로 조정하고 추진하면 사업효과는 훨씬 더 높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별 사업별로 행정의 칸막이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지역주민 간 칸막이를 조장하고 있다. 개별 사업에 참여한 지역주민들이 사업 간 연계와 통합적 접근을 요구해도, 지자체에서는 중앙부처의 지침을 근거로 난색을 표시하는 실정이다.

“농촌다움 없는 농촌개발, 재검토를”
김광남 ‘농어촌네트워크 상생’ 대표

건물과 시설, 하드웨어보다
마을 사람 행복하게 사는데 초점
인위적 사람 유인정책은 한계
사람 몰리는 농어촌 중심으로
꼭 필요한 곳에 최소화해야

김광남 ‘농어촌네트워크 상생’ 대표(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 전 극동대 교수)는 농촌개발이나 도시재생에 관해 본질적인 문제부터 세세한 내용까지 때론 해학으로, 때론 촌철살인의 비판으로 공감을 얻는 전문가다. 오랫동안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직을 거친 뒤 대학 교수로, 지역개발 및 지역경제 전문가로 마을 만들기 현장에서 주민들을 도우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자문을 하고 있다.

그는 농촌정책의 방향은 건물과 시설, 하드웨어보다는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종전 농촌개발사업의 평가 지표를 보면 방문객이 얼마나 되냐, 매출이 얼마 되냐 이런 것인데, 그런 지표는 바꿔야 돼요. 전부 관광객 유치한다고 하면 전 국민이 놀러만 다닙니까? 무슨 마을마다 체험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래요? 농촌 고령화를 생각하면 그런 방식으론 소득 못 올려요, 방문객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되고, 목표는 마을 사람들이 소박하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데 둬야 합니다.”

농촌 인구 감소는 세계적으로 어쩔 수 없는 추세인데, 인위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정책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우리 같은 세대들, 농촌에서 태어났거나 방학 때 외할머니 댁에 가본 사람들은 향수 때문에 갔지만, 이제는 어려워요. 귀농귀촌이 쭉 늘다가 2016년부터 귀촌은 가는데, 귀농은 뚝 떨어지잖아요? 그 트렌드를 읽어야 해요.” 그는 “어느 나라나 농업 농촌에 사람을 다시 많게 한다는 건 불가능한 목표”라며 “지방소멸을 막는다고 지자체마다 돈을 주면서 사람들 끌어오는 것은 결국 서로 남의 동네에서 훔쳐오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오히려 농촌개발 정책이 하드웨어에 치우쳐 농촌다움을 파괴하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농어촌개발사업 때문에 농촌다움이 다 파괴되고 있어요. 새마을운동부터 지금까지. 개발해서 도로내고 복지센터 지은 곳 중에 일부는 모르지만 잘 된 데가 어디 있어요? 이런 농촌다움을 계속 파괴해 가는 지역개발사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근본적으로 생각해야합니다.” 따라서 이제 농촌개발은 농촌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네별로 시설을 다 지어놓을 필요 없어요. 웃음치료 한다고 어르신들이 중심지로 나올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봉고차나 버스 하나 가지고 생필품, 문화예술, 건강 관련 팀을 꾸려서 이 마을 저 마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해야 돼요. 그런 팀들에게 일정하게 보수를 지급하면 그것도 일자리가 됩니다.”

향후 개발사업은 꼭 필요한 곳에만 하고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어촌지역별로도 사람이 몰리는 데가 있어요. 지방 중심도시의 주변 읍면 같은 데는 집값이 싸고 출퇴근이 가능하니까 인구가 늘어나는데 생활기반은 취약한 곳이 있어요. 그런 곳에 집중해 줄 필요가 있어요. 소멸지역에 농촌개발을 한다고 살아나는 것은 아니예요. 소멸지역에는 소프트웨어, 복지, 안전 이런 것을 보강해줘야 합니다.”

김 대표는 농촌정책을 위해 만들어진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농촌개발, 역량강화 한다고 도마다 대학에 농촌활성화지원센터가 있고, 여기에 또 6차산업 한다고 별도로 지원센터를 만들었죠. 이런 사업들이 지역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하는 겁니다. 중복이니까 당연히 합쳐야 합니다. 농촌에 국한되는 조직은 아니지만, 창조경제혁신센터, 사회적경제센터도 검토해야 돼요."

특히 그는 농가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농식품부 산하기관의 기능을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농가인구가 줄고 사회트렌드가 1인가구로 변해 가는데, 농식품부 산하기관은 더 늘어났어요. 농식품부도, 농어촌공사도 장기적으로 정책 수요를 예측하고, 난상 토론을 거치면서 기능을 줄여야 될 부분, 강화해야 될 부분을 따져야 해요. 한국농어촌공사의 기능은 하드웨어의 경우 필요한 분야만 남기고 나머지는 농촌복지 서비스 기능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농어촌공사뿐 아니라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니, 유통이니 기술이니 유사한 곳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 농민은 한 명인데 여기저기서 똑같은 교육이나 시킨다고 하지요.”

그는 현재의 농촌소멸 위기를 역전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는 계기가 바로 주민자치라고 했다. “지금의 지방자치는 가짜입니다. 기존 중앙과 지방정치 구조, 그리고 중앙집중 경제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떠들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민자치를 신장하고 정부를 혁신해야 합니다. 기존 읍면동 사무소 체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면단위 주민자치회를 통해 주민들이 농촌개발을 비롯해서 마을의 일을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당장 안 된다면 시범사업이라도 해야 합니다. 주민 자치력의 신장을 통해 농촌소멸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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